우리말 깔보는 나라말 학자 – 나라말 연구에서도 사대주의를 몰아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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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된-2003년- 글 가운데, 인문학을 연구한다는 어느 박사가 ‘훈민정음에서 사라진 아래아 소리값을 되짚는 모[방법]‘를 두고 논문을 썼다고 한다. – 그 글 보기
웃기는 일이다.
아래아 소리값을 알고 싶다면 아직도 그 소리가 남아있는 제주말이나 경상도 사투리를 먼저 알아볼 일이지, 아래아가 오래 전에 없어졌다는 얘기를 책상머리에서 하고 앉아 있다니…ㅡ.ㅡ(그가 말하기는, 아래아 소리값은 아주 오래 전에 없어졌고 아래아 낱자는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내놓기 전까지 쓰였다’고 해 놨다.)
대체 이 나라 국문학자는 한자나 연구하고 앉았으니, 세종 큰임금이 훈민정음을 만든 뒤로 아직까지도 한글은 이 나라 나라말 자리를 얻지 못했단 말인가!(국어학자들 입으로 ‘우리말 만으로는 말글살이를 할 수 없다’는 헛소리나 하고 앉았으니…ㅡ.ㅡ)

이 나라 정치와 사회 곳곳에서만 친일, 친미 사대주의자를 몰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 연구하는 바닥[나라말 학계]에서도 사대주의를 몰아내야 우리가 제대로 우리말을 쓰면서 살 수 있다.

우리말을 살리려면 사투리부터 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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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터[웹, 인터넷]을 뒤져보니, 적지 않은 곳에서 우리 옛낱자인 가벼운 비읍(ㅸ), 아래아(ㆍ)가 이미 사라졌다고 해 놨습니다.
하지만, 제주 분들 말씀에 따르면 아직도 제주말에는 아래아가 살아있으며, 경상도 말에도 가벼운 비읍이 살아 있습니다.(심지어 경상도 말에도 아래아 자욱이 남아 있습니다. 경상도 옛어른들은 ‘팥’, ‘파리’를 ‘퐅’, ‘포리’에 가깝게 소리냅니다.)
경상도 사투리에서는 ‘더워라’를 ‘더ᄫᅥ라’고 소리내고 있고, 혜은이 씨가 부른 ‘감수꽝’에서도 보듯이 ‘어서’를 뜻하는 제주말 ‘ᄒᆞᆫ저’에 아래아가 또렷히 살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버젓이 살아있는 우리 낱자 소리값을 적지 않은 데서 이미 사라졌다고 하는 것은, 한자말을 떠받드는 이들이 국어학계를 꿰차고 있는 것과 얽혀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자를 받드는 이들이 꿰차고 있는, 큰나라말 떠받들고 우리말 죽이는 국립국어원이 죽여놓은 사투리 소리와 첫머리 리을 소리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제가 죽여놓은 우리 옛 글자와 훈민정음이 가진 돋은 것들을 모조리 살려야 우리말이 제대로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미 많이 사라진 사투리를 살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말[한말] 사랑방, 우리말 살려 쓰기, 사투리 되살려 쓰기, 우리 얼이룬 것[문화]을 지키는 모임

“뿌리깊은 나무”는 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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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기[TV, 우리말(투)로 갈음하면?]에서 하는 극(劇), “뿌리깊은 나무“…
요즘 이 극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주로 한글이 위대한 것을 새삼 되새겼다거나 훌륭한 극이라는 둥…
그런데 이 극이 끝나 가는 무렵인 이때, 이 극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요? 또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어느 신문은, 뼈대를 맡은 이들이 거의 죽는 이 극 마무리를 두고 ‘새드엔딩’이라고 또 다른 신문은 작가와 ‘엔딩’을 두고 얘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슬픈 결말’-'결말’조차도 한자말이지만,… 그나마…)
이 밖에도 많은 신문과 글에서 한자말은 두말할 것도 없고 평소 쓰던 들온말[외래어]를 그냥 쓰고 있습니다.(딱히 영어라서 쓰면 안 된다 할 수는 없다 봅니다. 영어냐 아니냐, 우리말이냐 한자가 아니라 한글, 훈민정음을 얘기할 때만이라도 우리말로 쓸 수 있는 말은 우리말로 바꿔쓰는 것이 좋다 봅니다. 제가 한자말과 다른 들온말을 두고 쓴 글은, ‘국립국어원이 내세우는 해괴한 논리-영어는 안 되고 중국 한자는 괜찮다?‘와 ‘일본말, 일본 한자말, 일본말투…‘를 봐 주시기 바랍니다.)
훈민정음, 한글을 치켜세우면서 들온말과 들온말투를 마구 쓰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요…?
훈민정음, 한글을 치켜세우면서 들온말을 마구 쓰는 것을 보면서, 그 겨레글로 적지 않고 한글로 적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요…^^;

이 극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렇듯 훌륭한-왜, 어떻게 훌륭한지는 여전히 모른 체- 글자를 가졌다는 제 만족?
이 극을 보고 나서 우리 말글을, 하다 못해 한글 만이라도 정말 아끼고 쓰게 될까요?
제가 보기엔, 이것도 우리가 3월 1일에 만세를 불러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봅니다.
3월 1일에 느낌에 겨워 만세를 부르지만,… 날이 지나면…흐흠…^^;

그래서 제가 보기에, 이 극이 끝난 즈음에 우리들 모습을 적어보자면 이렇습니다…

한글이 위대한 것은 위대한 것이고, 나는 오늘도 예사때 하던 대로 딴겨레말 쓴다. 한글로

덧 1. 글은 몸이요, 말은 넋입니다. / 말과 글은 힘입니다.
덧 2. 어쩌다 보니 우리는, 말만 아주 번드르르 자알 하게 되었습니다. 딱 ‘말’만, 온갖 ‘말’만…

쉬운 말이 가진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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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을 폐지하고서라도 한글을 반포하려는 세종은 한글이 가진 힘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글자를 알면 밥이 나오냐, 양반이 되는 것이냐”고 묻는 강채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글자를 알면 백성도 힘이 생긴다. 밥이 나오지는 않지만 밥을 더 많이 만드는 법을 알게 될 것이고 양반이 되지는 않지만 양반들에게 그렇게 힘없이 당하지만은 않는다.” 이것은 지식이 권력이던 시대에 글을 독점하던 양반들에게 한글 반포가 공포 그 자체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종, 무엇으로 반대파 쓸어버렸나” 글 안에서…

“글자를 알면 백성도 힘이 생긴다. 밥이 나오지는 않지만 밥을 더 많이 만드는 법을 알게 될 것이고 양반이 되지는 않지만 양반들에게 그렇게 힘없이 당하지만은 않는다.”…

물론 극이 현실과 같지는 않겠지만, 말과 글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도 이것을 미처 안 본다는 것!
말과 글이 곧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말과 글로 민주주의 문을 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이 그리 권위에 찌든 말을 하지는 않겠지…
쉬운 말과 쉬운 글을 쓴다면, 가진 이들이 어려운 말과 어려운 글로 버티고 있는 그 힘을 뺏을 수 있을텐데…
말글은 권력이고 말글은 민주주의다!
우리말[한말] 사랑방, 한글학회, 우리말 살려 쓰기, 원칙, 겨레, 사람을 생각하는 참된 보수, 한글빛내기모임쉬운 우리말 쓰기

우리말이 가지는 잇점 때문에 생기는 새로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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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들온말이 쉽게 끼어들 수 있는 까닭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 말(좀 더 정확히는 ‘우리말 소리값’, 즉 우리글)이 적지 못할 말이 적다는 잇점 때문이라고 봅니다.

보기를 들어 중국글은 외국말을 적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비슷한 f나 r 발음을 잘 살려 말을 만듧니다.
그 중에 으뜸은 역시 ‘Coca-Cola’를 적은 ‘可口可乐’일 것입니다.(소리는 ‘커,커우,커ㄹ,러’쯤 됩니다.) ‘으뜸’이라 하는 것은 소리로도 비슷하지만 뜻도 좋고 말소리가 흐름새가 좋습니다.
다른 보기로, ‘San Francisco’는 ‘圣弗朗西斯科’로 쓰고 ‘셩프랑시스커’ 정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사람 이름 같은 건 우리가 보기엔 좀 어이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본말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아니 일본말은 소리값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서양 이름을 비슷하게 소리낸다는 자체가 어렵다고 봅니다.
어쩌면 그래서 줄여서 적거나 자기들 식대로 소리내어 적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차피 못 적으니 우리 맘대로 적는다 뭐 이런…^^;
(여기서 잠깐! 물론 말이란 것이 아무리 잘 적어도 똑 같을 수는 없습니다. 말과 글이 가지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그에 비해 우리말은, 훈민정음에서 몇 가지 안 쓰게 된 낱자들 때문에 잇점을 많이 잃었지만 그래도 그나마 비슷하게 소리낼 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외국말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을 꺼리는 맘[거부감]이 적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국말에서 소리값이 바뀌면 또 그걸 따라 가고자 하는 욕심도 부리게 됩니다.(아예 다르면 그만 둘 법도 한데 말이죠.^^)
우리가 원칙만 잘 지키면 될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다 보니 우리말이 가지는 잇점이 오히려 외국말이 쉽게 파고드는 틈새가 되고 있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시는지요?

[펌]훈민정음이 가진 장점과 망가뜨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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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옛글자를 참조해 만든 단독창작물이다” 안에서…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세종이 언문청(諺文廳)을 설치하고 신숙주·성삼문에게 명해서 언문을 만들었다… (언문은) 우리나라와 여러 나라의 말에 대해 문자(文字:한자)로는 적지 못하는 것까지 다 통해서 막힘이 없었다”…

“이달에 임금이 직접 언문(諺文) 28자(字)를 만들었다. 그 글자는 옛 전자(篆字)를 본떴는데,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룬다. 무릇 문자(文字:한자)에 관한 것과 우리나라의 이어(俚語:이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다. 글자는 비록 간요(簡要)하지만 전환(轉換)이 무궁한데 이를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세종실록 25년 12월 30일)”

“이때 한림학사 황찬이 죄를 짓고 요동에 유배되었는데 을축년(세종 27년:1445) 봄에 공(신숙주)에게 북경에 가는 사신을 따라서 요동에 가서 황찬을 만나 질문하게 했다. 공이 언자(諺字:훈민정음)로 중국말을 번역하고(諺字<7FFB>華音) 질문을 쉽게 풀이해서 조금도 틀리지 않았으므로 황찬이 크게 기이하게 여겼다. 이때부터 요동에 갔다 온 것이 무릇 13번이다.(보한재집, 부록 묘지)”


## “일제의 식민지 언어정책이 한글을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안에서…

그러나 훈민정음의 이런 장점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크게 퇴보했다. 일제는 1912년에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諺文綴字法)을 만들었는데 이때 아래아(ㆍ)를 폐지하고 받침에서도 한 글자 받침 ‘ㄱ, ㄴ, ㄹ, ㅁ, ㅂ, ㅅ, ㅇ’과 두 글자 받침 ‘ㄺ, ㄻ, ㄼ’의 열 가지만 인정했으며, 설음 자모 ‘ㄷ, ㅌ’ 등과 ‘ㅑ, ㅕ, ㅛ, ㅠ’의 결합을 인정하지 않는 등 훈민정음의 발음체계를 크게 제한했다. 1930년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직접 언문철자법(諺文綴字法)을 만들었고, 이때도 표현 가능한 발음을 상당 부분 제한했다. 문제는 광복 후에도 이런 식민지 언어정책이 철저하게 극복되지 않은 결과 현행 한글은 특정 발음을 표기할 수 없는 절름발이 언어로 전락했다. ‘ㄹ·ㄴ’이 어두(語頭)에 오면 ‘o’으로 발음하게 한 두음법칙(頭音法則) 같은 것들은 수많은 일제 잔재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현재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은 영어의 B와 V, P와 F, R과 L 등을 구분해 표기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훈민정음 창제 원칙으로 돌아가면 해결될 수 있다. 한글연구회의 최성철 회장 같은 이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연서(連書)와 병서(竝書) 원칙을 사용하면 해결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B와 V, P와 F는 모두 순음(脣音:입술소리)인데, 훈민정음「해례본」은 “ㅇ를 순음(脣音:입술소리) 아래 연서(連書)하면 곧 순경음(脣輕音:입술 가벼운 소리)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많은 언어학자의 깊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순음 ‘ㅁ·ㅂ·ㅍ·ㅃ’ 아래에 ‘ㅇ’을 더하여 만든 ‘ㅱ·ㅸ·ㆄ·ㅹ’ 등이 순경음인데 이 중 B를 ‘ㅂ’로, V는 ‘ㅸ’으로 적고, P는 ‘ㅍ’로, F는 ‘ㆄ’으로 적는 식으로 정리하면 현행 한글맞춤법 통일안으로 적을 수 없는 발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장래에 국어학자는 물론 외국어 전문가, 역사학·언어학 등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종합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는 주제다.

훈민정음「해례본」에는 첫소리 두 자, 혹은 세 자를 합쳐서 사용하는 병서(竝書)에 관한 규정이 있는데, 이를 활용해 L은 ‘ㄹ’로 적고 R은 ‘ㄹㄹ’, 또는 ‘ㅇㄹ’ 등으로 적으면 이 역시 해결될 수 있다. 인간의 구강에서 나오는 모든 발음을 적을 수 있게 만든 훈민정음 창제 정신으로 돌아가면 우리 민족이 그토록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도 영어를 못하는 민족에 드는 현실을 타파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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