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국어학자입니까? 아닙니다! 말을 만드는 이는 바로 그 말을 쓰는 뭇사람들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에 좀 앞선 이들이 길을 잡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도 말글사는 이[언어대중]들과 함께 갈 때 얘기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것이 좋으니 앞으로는 이것을 쓰시오’하듯이 말을 던져놓는 것은 뭇사람들을 깔보는 권위주의입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저는 결코 국립국어원을 적(敵)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이 일제 때 친일부역을 하고 사과조차 않는 동아일보와 늘 정권 편에 서는 줄서기를 했던 한국방송공사(KBS)가 함께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말 다듬기’에서는 뭇사람들이 말을 제안하고 뭇사람들이 투표로 정하는 틀을 쓰고 있습니다만, 말이란 것이 과연 다수결로 정할 수 있는 것이던가요?
저는 국어를 다듬는 ‘국립국어원’에서 왜이리 엉뚱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이란 사뭇 풀들이 자라나듯 서로 부대끼[경쟁]면서 커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말은 사는 힘[생명력]이 약해서 언젠가는 제껴[도태]질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멀리 볼 때 이것은 우리말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투표로 정한 그 결과는 또 어떻습니까?
잘못된 말글살이에 물들어 있는 이들이 정하는 말이다 보니 온통 한자말에 우리말이 조금 섞여있는 꼴입니다.
국립국어원이 실은 ‘국립한자원’인 걸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우리 말을 살려 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무조건 들온말을 제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 살려 쓸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고 우리말로 살리기 어려운 것은 우리말로 바꾸던지 이미 쓰고 있는 들온말을 잘 쓰자는 것입니다.
무릇 말이란 서로 부대껴야 합니다.
‘규칙’이란 것에 얽매어 이것만 쓰라고 할 것이 아니라 ‘큰 틀’(원칙)은 지키되 여러 말을 편한 대로 쓰다가 뜻에 맞고 입에 맞는 것이 널리 쓰이게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만든 꽃[造花]은 결코 열매 맺지 못하고, 박제[剝製]된 호랑이는 더 이상 호랑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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