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옛글자를 참조해 만든 단독창작물이다” 안에서…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세종이 언문청(諺文廳)을 설치하고 신숙주·성삼문에게 명해서 언문을 만들었다… (언문은) 우리나라와 여러 나라의 말에 대해 문자(文字:한자)로는 적지 못하는 것까지 다 통해서 막힘이 없었다”…

“이달에 임금이 직접 언문(諺文) 28자(字)를 만들었다. 그 글자는 옛 전자(篆字)를 본떴는데,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룬다. 무릇 문자(文字:한자)에 관한 것과 우리나라의 이어(俚語:이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다. 글자는 비록 간요(簡要)하지만 전환(轉換)이 무궁한데 이를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세종실록 25년 12월 30일)”

“이때 한림학사 황찬이 죄를 짓고 요동에 유배되었는데 을축년(세종 27년:1445) 봄에 공(신숙주)에게 북경에 가는 사신을 따라서 요동에 가서 황찬을 만나 질문하게 했다. 공이 언자(諺字:훈민정음)로 중국말을 번역하고(諺字<7FFB>華音) 질문을 쉽게 풀이해서 조금도 틀리지 않았으므로 황찬이 크게 기이하게 여겼다. 이때부터 요동에 갔다 온 것이 무릇 13번이다.(보한재집, 부록 묘지)”


## “일제의 식민지 언어정책이 한글을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안에서…

그러나 훈민정음의 이런 장점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크게 퇴보했다. 일제는 1912년에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諺文綴字法)을 만들었는데 이때 아래아(ㆍ)를 폐지하고 받침에서도 한 글자 받침 ‘ㄱ, ㄴ, ㄹ, ㅁ, ㅂ, ㅅ, ㅇ’과 두 글자 받침 ‘ㄺ, ㄻ, ㄼ’의 열 가지만 인정했으며, 설음 자모 ‘ㄷ, ㅌ’ 등과 ‘ㅑ, ㅕ, ㅛ, ㅠ’의 결합을 인정하지 않는 등 훈민정음의 발음체계를 크게 제한했다. 1930년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직접 언문철자법(諺文綴字法)을 만들었고, 이때도 표현 가능한 발음을 상당 부분 제한했다. 문제는 광복 후에도 이런 식민지 언어정책이 철저하게 극복되지 않은 결과 현행 한글은 특정 발음을 표기할 수 없는 절름발이 언어로 전락했다. ‘ㄹ·ㄴ’이 어두(語頭)에 오면 ‘o’으로 발음하게 한 두음법칙(頭音法則) 같은 것들은 수많은 일제 잔재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현재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은 영어의 B와 V, P와 F, R과 L 등을 구분해 표기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훈민정음 창제 원칙으로 돌아가면 해결될 수 있다. 한글연구회의 최성철 회장 같은 이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연서(連書)와 병서(竝書) 원칙을 사용하면 해결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B와 V, P와 F는 모두 순음(脣音:입술소리)인데, 훈민정음「해례본」은 “ㅇ를 순음(脣音:입술소리) 아래 연서(連書)하면 곧 순경음(脣輕音:입술 가벼운 소리)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많은 언어학자의 깊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순음 ‘ㅁ·ㅂ·ㅍ·ㅃ’ 아래에 ‘ㅇ’을 더하여 만든 ‘ㅱ·ㅸ·ㆄ·ㅹ’ 등이 순경음인데 이 중 B를 ‘ㅂ’로, V는 ‘ㅸ’으로 적고, P는 ‘ㅍ’로, F는 ‘ㆄ’으로 적는 식으로 정리하면 현행 한글맞춤법 통일안으로 적을 수 없는 발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장래에 국어학자는 물론 외국어 전문가, 역사학·언어학 등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종합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는 주제다.

훈민정음「해례본」에는 첫소리 두 자, 혹은 세 자를 합쳐서 사용하는 병서(竝書)에 관한 규정이 있는데, 이를 활용해 L은 ‘ㄹ’로 적고 R은 ‘ㄹㄹ’, 또는 ‘ㅇㄹ’ 등으로 적으면 이 역시 해결될 수 있다. 인간의 구강에서 나오는 모든 발음을 적을 수 있게 만든 훈민정음 창제 정신으로 돌아가면 우리 민족이 그토록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도 영어를 못하는 민족에 드는 현실을 타파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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