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직 우리 글이 제대로 없을 때 한자를 빌어 썼습니다. 물론 다르게 적으려고 많은 애를 썼지만 크게 봐서 한자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 불편함이 한자를 쓸 때보다 뛰어나게 낫지 못했겠지요.
(여기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그렇지만 우리말은 그 이전부터도 계속 있었다는 것입니다. 굳이 이것을 밝히는 것은 가끔 말과 글을 헛갈려 주장하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꽤 오랫동안 한자를 빌어 글을 써 왔고, 모르긴 몰라도 그것이 우리말에도 꽤 끼친 바가 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실마리야 어찌되었건 드디어 우리 글을 가지게 되었으나 얼빠진 이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글을 얕보고 있으며 하물며 우리말은 말할 것조차 없습니다.
한자를 받드는 이들조차도 우리글이 뛰어나다는 것을 드러내놓고 손사래 치지는 못하지만 우리 말을 망가뜨려 놓고는 뒤로는 글조차도 한자를 쓰지 않으면 한글로는 완전하지 못하다고 우깁니다.

큰나라를 떠받드는 이들은 우선 우리말이 쌍스럽다(‘俗되다’-이 말은 ‘널리 쓰이다’, ‘쌍스럽다’ 같이 여러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말을 ‘널리 쓰이다’라는 뜻으로 보다는 ‘상스럽다’는 뜻으로 씁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우리 토박이말이나 사투리에 이렇게 씀으로써 우리 토박이말, 토박이말투는 쌍스럽다는 뜻으로 쓰고 있습니다.)고 우깁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그냥 보통말이며 ‘춘부장’이라 해야 높임말이라 합니다.
이렇게 우리말을 쌍스러운 말로 만들어놓고는 한자말을 씁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한자는 그 글자를 늘 쓰는 지나(중국) 사람들조차 어려워 하는 글입니다.
이 한자를 단지 글자로만 우리 글, 한글로 써 놓고는 이번에는 ‘한자로 써 놓으니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말이나 우리 한글 탓입니까?
제가 지금 딴 나라 말을 오로지 글자만 한글로 적어놓으면 무슨 뜻인지 또렷하겠습니까? ‘유어는 하우 씽킹하십니까’?
그들은 스스로가 남다르고 남보다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한자를 쓰고 싶어하지만, 한자를 즐겨 쓰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글자로써 한자와 말로써 중국말은 다르다는 것을 다시 되새겨 드립니다.)

바로 이 논리가 지금 우리가 쓰는 말에 영어가 넘쳐나게 하는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말에서 ‘외래어’라는 얼토당토않은 뜻말을 가져와서는 ‘외국에서 들여와 국어처럼 사용하는 말’이라고 흐르터분하게 못 박아두었습니다.
‘국어처럼 쓰이는 말’? 그렇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조금만 널리 쓰이면 다 ‘외래어’요 끝끝내는 ‘우리말’이란 것입니다.(이것은 마치 딴 나라 소도 우리나라에 들여와 여섯 달 이상 먹이고 키우면 우리 소-국내산-라거나, ‘우리소-한우-도 미국 사료를 먹고 컸으니 우리소-한우-가 아니‘라는 말하고 같습니다.)
좀 더 깊이 살펴보자면, 잣대는 이리 고무줄처럼 만들어 놓았으니 그 다음부터는 내 맘대로 정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또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중국 한자와 옛날 우리가 마땅히 글자가 없던 때에 쓰던 우리 한자에다가 일본 한자까지 되살려 놓는데에 뜻을 이루긴 했으나…
위에서 얘기했다시피 한자를 즐겨 쓰던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그들이 큰나라 글자인, 한자를 살리고 싶어 만들어놓은 잣대가 이제는 다른 큰나라 말인 영어를 살리고 키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긴 세월이 지나 또다른 나라가 우리에게 힘을 쓸 때가 되면, 큰나라 섬기는 이들은 또 그들 나라 말을 우리말로 받아들이겠지요… 그것이 일본이 될지, 프랑스나 다른 나라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또는 엉뚱하게도 지금은 사는 것이 어려운 나라가 갑자기 커서 큰 힘을 가지게 되면, 지금껏 깔보던 그 나라 말을 또 못 들여와 안달을 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일찌기 ‘전광용’ 님은 이런 자들을 소설 ‘꺼삐딴리’에서 그리기도 했었지요… 과연 세상은 변했는가요?)

이 즈음에서 ‘그럼 우리말은 오롯이 되어 온 것이냐’는 딴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말이란 것이 홀로 살아나갈 수는 없습니다. 말이란 것은 늘 다른 말들하고 부대끼면서 바뀌고 섞이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긴 세월을 두고 생긴 말들은 그 속에 그 겨레가 가진 얼이 들어있습니다.(이것을 ‘뿌리 내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터울이 짧아지면서 이제는 말이 얼을 바꿀 수도 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쓰는 들온말투, 엉터리 말투(주로 엉터리 번역투)가 우리 얼을 바꿀 처지가 되었고 또 그렇게 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보기를 들어, 우리 산과 들에 있는 풀들이 우리나라에서만 커 왔겠습니까? 긴 세월을 두고 이 땅에 뿌리내리면서 서로 함께 살아갈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갑자기 들어온 풀들은 이렇게 함께 살아갈 힘을 얻기 전에 다른 풀들을 밀어내면서 커 가기에 탈이 되는 것입니다.
말도 바로 이와 같을 것입니다.

우리 얼이 스민 우리말을 살리고 우리 얼을 살리려면 한자를 받드는 이들이 만든 우리말 잣대부터 없애고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빌려 쓴 돈은 결코 내 돈이 아니고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듯이, 빌려 쓴 한자는 결코 우리글이 아닙니다.
들온 말은 딴나라 말일 뿐이고 설령 우리가 지금 쓰게 되더라도 잠시 빌려쓰는 말일 뿐이고 우리 말 속에 뿌리 내리면 그때 우리말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렇듯 엉터리면서도 칼로 자르듯 한 잣대 때문에 ‘이것이 표준말이네 아니네’하는 쓸데없는 실랑이가 시도때도 없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말은 이미 말투조차도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지금도 깨끗이 되돌리려면 애를 많이 써야 겠지만, 더 늦어지면 영엉 되돌리기 어려워 질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지금 이지러진 말투에 더 익기 전에 우리말을 죽이는 엉터리 잣대를 없애고 말 살리는 새로운 잣대를 만드는 데에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