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이라는 들쥐가 있었다.
그는 다른 들쥐들이 일할 때 놀기만 했다.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니?”
다른 들쥐들이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일하고 있어. 춥고 어두운 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
“프레드릭, 지금은 뭐해?”
“색깔을 모으고 있어. 겨울엔 온통 잿빛이잖아.”
“프레드릭, 너 꿈꾸고 있지?”
“아니야, 난 지금 이야기를 모으고 있어.
기나긴 겨울엔 얘깃거리가 동이 나잖아.”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자 들쥐들은 구멍으로 들어갔고
지루했던 그들은 그제야 프레드릭을 떠올렸고 그를 찾았다.
프레드릭은 그들에게 그동안 모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신기하게도 햇살의 따스함과 찬란한 색깔을 보게 되었다.
들쥐들은 감탄하며 프레드릭에게 말했다.
“프레드릭, 너는 시인이야.”

– 레오 리오니, ‘프레드릭’에서 –

옛날에 ‘개미와 베짱이’ 얘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쥐와 종달새'(?) 얘기를 들으면서-두 얘기 줄거리 얘기는 아래에…- 우리는 ‘개미’나 ‘쥐’가 되기를 바라면서 ‘베짱이’와 ‘종달새’를 욕하고만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핏 베짱이나 종달새는 게으르고 이 누리[세상]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메마른 때에 베짱이나 종달새가 없다면, 하다 못해 모든 것이 새롭게 피어나는 봄날이나 모든 것이 잠들려 하는 가을날에 새 소리, 풀벌레 소리가 없다면 얼마나 쓸쓸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 누리에서 시인[詩人]이나 예술가, 깨달음이나 마음에서 평화를 찾는 수행자가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메마르고 쓸쓸할지…
그것이 곧, 비록 보기에는 이 누리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놀고 먹는 것 같지만, 시인이나 예술가, 수행자를 많이 키워야 하는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 덧붙임.
우리가 흔히 아는 ‘개미와 베짱이’나, ‘쥐와 종달새’ 얘기는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줄거리 말미에, 한겨울이 되어 먹을것을 구하지 못한 베짱이가 굶어죽고 나자 꽉 찬 곡간을 가졌지만 메마르고 쓸쓸한 느낌에 개미가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덧붙는다.
‘쥐와 종달새’ 얘기도 비슷한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