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과 한글날 – 우리말이 살아야 한글이 살아납니다.>

어김없이 한글날이 돌아오고, 그 동안 온갖 들온말[외래어]을 써 대던 언론들도 앞다투어 뭇사람들 말글살이를 꾸짖습니다.
그리고 방금, 인도네시아 찌아찌아겨레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던 세종학당이 모두 물러나왔다는 소식을 봤습니다.
‘한글’ 얘기만 나오면, 과학에 맞느니 우수하느니 하는 한글인데 왜 밖에서는 그리 인정받지 못 할까요?
그리고 한글이 우수한 것은 왜 거진 딴나라 학자들 말을 근거로 드는 걸까요? 우리는 딴나라 학자들만큼 우리 글자인 한글을 모르는 걸까요?
프랑스가 제 나라 말글을 지키고 빛내려 얼마나 힘을 쓰는지, 영국이 영어를 널리 퍼뜨리고 빛을 내려고 얼마나 힘을 쓰는지는 우리는 모르는 걸까요?
우리가 한글날을 쉬는 날로 만들어서 기리고, 한글이 아무리 우수하다고 말로만 떠든 들 그것을 밝혀내지 못하고 그것은 이루어내지 못하면 공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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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수 목판그림, 백성의 소리, 하늘의 소리, 1992, http://www.mokpan.com

우리가 이토록 한글을 칭찬하면서도 우리 말글이, 아니 한글 만이라도 빛을 보지 못하는 것에는 몇 가지 큰 흠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말글을 어렵게 쓰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 앞에서 편하게 얘기하던 사람도, 남 앞에 세우거나 글을 쓰게 하면 온갖 어려운 말투와 배배 꼬인 말투를 마구 씁니다.
게다가 행정에 쓰이는 말투나 법률 말투는 또 얼마나 어렵던지요.
어려운 낱말과 말투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없애려는 ‘쉬운 영어 쓰기 운동'(Plain English Campaign)처럼, 우리도 쉬운 한말글 쓰기 운동을 통해 말글이 어려워서 곤란을 겪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는, 우리말글 잣대가 너무 어렵고, 뭇사람들 말글살이를 옭아매고 있습니다.
아무리 온갖 짐승 가운데 왕이라 한듯, 철창 안에 갇히고 쇠사슬에 묶인 호랑이를 누구 두려워 하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우리말글이 온갖 잣대에 묶여 있으니 이것을 풀고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 말과 글을 늘상 쓰는 우리에게조차 우리말글 잣대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게 제대로 된 일일까요?
말글 잣대가 쉬워야 우리는 물론이고 다른나라 사람도 쉬이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는, 우리말글 교육에서도, 다만 시험을 보기 위한, 이론에 치우친 나라말 공부만 시키고 있습니다.
넷째로는, 우리말글(한말글)이 가진 좋은 점을 조금도 살리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제가 우리 말글을 없애려고 망쳐놓은 한글과 우리말 잣대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일제가 우리 말글을 없애려 망쳐놓은 한글로는 지금 우리가 쓰는 말소리조차 제대로 다 적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럴 듯한 우리말사전, 말뿌리사전, 사투리사전도 제대로 없습니다.
우리 글자 표준도 제대로 만들지 못해, 세벌식 글쇠를 버리고 두벌식을 아직 쓰고 있으며, 첨단기기에서 한글 표준화 작업은 그나마 중국에 첫손[선수]을 뺏길 판입니다.
우리 문학작품을 바깥에 알릴 변변한 기구 하나 없고, 딴겨레말을 우리말로 제대로 옮겨줄 기구 하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종큰임금께서 훈민정음을 만든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가지 뜻이 있을 수 있겠지만, 백성들이 편한 말글살이를 하고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겪지 않게 하려는 뜻이 크다 봅니다.
그런데,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지 오백육십해가 훨씬 지났지만, 한글은 오히려 훈민정음 때보다 더 꺾이고 우리말은 여전히 서로 뜻이 통하기 어렵고 온갖 들온말로 어지럽습니다.
옛날 뭇백성들이 관청 문서를 알아보기 어려웠던 것처럼 지금도 행정 말투는 여전히 우리가 흔히 쓰는 말투하고 다르고, 법률 말투는 일제 때 말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꽤 여러 차례 바뀐다고 바뀌었는데도…)
그리고 우리 말과 우리 글자를 빛내려는 이들이 가끔 있기는 하지만, 나라말글에서는 우리 말과 글자가 가진 장점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글자가 말을 제대로 드러내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처음 훈민정음을 만들 때 세종큰임금과 그 학자들이 겪던 턱[반대]을 지금도 고스란히 겪고 있습니다. 무려 5백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한글날만 되면 다들 한글을 칭찬하는 데도, 한글이 우수하다면서 그렇게 칭찬하는 데도 이처럼 옛 것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못한 것은 바로 글자의 뿌리, 바탕이 되는 ‘말’을 바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은 그 겨레가 가진 얼을 비추는 거울이자,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또 ‘글자’가 줄기라면 ‘말’은 뿌리입니다.(그런 뜻에서, 한글날을, 우리말과 한글을 함께 기리는 한말글날로 할 것을 제안해 봅니다.)
권위스런 말투를 쓰는 사회는 권위에 찌들어 있다는 것이고, 험한 말투를 쓰는 사회는 그 만큼 사람들이 살기가 팍팍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 사람이 쓰는 말투와 저 사람이 쓰는 말투가 다르다는 것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는 뜻일 테고(말투가 그렇다는 것이지 사투리를 말함이 아닙니다.), 편하게 말할 때 말투와 글을 쓰거나 남 앞에서 말할 때 말투가 다르다는 것은 마음가짐에 겉치레가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한글날이 되어 세종큰임금의 뜻을 기리고 한글을 칭찬하는 것은 좋지만, 그 한글이 가진 장점을 우리 스스로 키우지 못하고, 또 그 뿌리, 바탕이 되는 말을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입으로만 하는 공염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는 바야흐로, 한글이 가진 장점을 키우고 또 나아가 말을 바로 세움으로써 뭇사람들 말글살이를 편하게 하고, 말을 통해 사회도 바꾸고, 나아가 우리 말글이 이 땅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애써야 할 때라고 봅니다.

* 편집자 분께 드리는 말씀 : 이 글 가운데 좀 낯설 수도 있는 낱말이나 말투도 있습니다만, 그런 낱말에는 꺽쇠를 쳐서 풀어놓았으니 뜻을 헤아리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아울러 맞춤법에 맞지 않는 말도 있을 수 있으나 주로 일부러 그렇게 쓴 것이니 함부로 고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 덧붙임. 이 글은, 한글날을 맞아 안철수 선본 아래 ‘정책 네트워크 “내일”‘쪽에 보낸 글을 옮겨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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