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이’라는 분이 다른 분께 누리편지를 보낸 글을 옮겨 왔습니다.
내건말[제목]은 ‘우리 스스로 확실한 배달말 심의원이 되었으면’으로 되어 있고 알맹이는 서둘러 걷어내야 할 말쓰레기하고 얽힌 것입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저는 오늘 아침 ‘ KBS아침마당’을 보다가 이금희씨가 연사로 나온 하일성씨한테 “우리가 돈을 들이고 가서 들어야 할 말씀들을 이렇게 와주셔서 해주시니…….”란 말을 듣다가 벌떡 일어나 이 글을 씁니다.
<잘 돌봐 주십시요>라고 말 할 자리에서 <잘 부탁드립니다>다고 하면 일본 인사를 본받는 말이 되듯  <오셔서를 와주셔서> 로 말하면 윗사람한테 말 하는 우리 정서에도 맞지 않는 데다가 <하시니를 해주시니>…….로말하면 문장이 입음꼴로 되어 우리 말 틀이 바뀝니다.

저는 고등학교도 다녔지만 제 마음으로는 중학교 3학년을 끝으로 책과 담을 쌓고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칠십이 가까워서 문장 공부를 할 생각으로 책을 읽으려니 무슨 말인가 이해하기 어려워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읽어보면 그제사 그 말을 그렇게 어렵게 썼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오덕님의 <우리글 바로쓰기>를 읽고는 그 어려운 까닭을 알았어요. ‘그래요. 그 말씀이 맞아요.’하는 생각이 절로나서 하던 공부는 딴 사람 몫으로 넘기고, 아랫글 우리말에 끼어든 쓰레기를 줄여보겠다고 2007년 한 해동안 익산신문에 매달려보기도 했습니다만, 저 한 사람 힘으로는 턱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말살리는 겨레모임>에 거는 기대가 크답니다.
익산 신문에 글을 실을 때만 해도 의기가 앞서서 일본을 ‘저펜’이라 중국을 ‘차이나’라 썼습니다. ‘일본`중국’이란 말은 우리만 쓰는 말이라 언젠가 없어질 말이라 생각하고 국제 사회에서 쓰는 말을 쓰는 것이 말쓰레기를 줄이는 길이라 생각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앞서 보내신 <우리말 우리얼>에 ‘가배’ ‘배가’라는 말을 보면서 <이런 말도 막바로 쓰면 쓰레기말에 휩싸여 혼란스럽겠구나.> 해방되고 우리 말 세상이라는 기쁨에 들떠 비행기를 ‘날틀이’니 이화여대를 ‘배꽃계집아이배움집’이라 쓰려던 것이 뜻을 못 일웠던 아품을 되 살아나, 이런 말을 낯설게 막바로 쓸 일이 아니라 우리 말에 끼어든 쓰레기부터 모조리 걷어내고, 그리고 ‘겨레모임’ 회원의 동의가 있은 뒤에 쓸 일이다는 생각이 들어 ‘저펜’  ‘차이나’는 다시 중국  일본으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지금 정부에서는 헌법을 고쳐야 한다 국회의원 표시(벳지) 도안을 갈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겨모임은 이런 좋은 기회(우리 헌법이 말쓰레기에 휘감긴 것을 벗겨내야 하는)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아랫글은 제가 시급하게 걷어내야 할 ‘말쓰레기’를 간추린 글입니다.

학문 하는 사람조차 학문은 거룩한 것이어서 백성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때에 오직 한 분 주시경(1876~1914)님은 “입말이 글말이 되어야하고, 우리 말로 학문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리 말과 글을 연구하며 제자들을 길러 실낱같은 불빛을 남겼다.

일본이 우리를 점령하고 첫 번째 하는 일이 우리 말과 글을 없애는 일이었다. 그 일이 우리 행정구역 이름을 저네들이 잘 아는 한문으로 바꿨다. 1938년에는 우리 말 자리에 한자말을 넣고, 일본 가나글자로 토를 달아 쓰도록 하는 『국어상용』(國語常用)이란 말을 내세우니 자연히 학교 교육에서 우리 말과 글은 사라졌다. 여기서 ‘국어’란 한문투성이 일본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초등학생까지 우리 말을 빼앗겼으니, 옥고를 치룬 어른은 얼마였던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문은 순 우리 글로만’이라 법으로 못 박았다. 주시경님의 제자들이 주축이 되어 우리 말본을 세우며 우리 글을 연구하던 실낱 같던 일이 빛을 보게 되었다. 1960 년대 박정희정권이 들어서며 ‘가난을 벗게 하겠다.’고 친일 세력과 손을 잡으면서 주시경님의 제자들은 곳곳에서 밀려나고, 애써 일군 우리 말은 다시 일본한자말로 되돌아갔다. 지금 쓰는 한자말은 우리 나라에서 생긴 말도 있고, 중국에서 생긴 말도 있지만, 일본이 우리 말 씨를 말리려고 집어넣은 일본한자말이 거의이다. 일본한자말은 중국글자 탈을 쓰고 있어 일본말인 줄 모르고 쓰는 사람, 알아도 입에 익어서 망설임 없이 쓰는 사람이 많다. 멀쩡한 우리 말을 버리고 그런 치욕이 서린 남의 말을 쓰는 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짓밟는 일이다.

그런 틈에서도 뜻있는 분들의 피나는 노력이 이어져 글말살이에서 중국글자를 걷어내고 『순 한글만』쓰기로 법으로 정했다. 이때 한자를 걷어내면서 한자말에 빼았긴 우리 말을 찾아 한자말 자리에  되돌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우리 말에 끼어든 ‘말쓰레기’부터 모조리 없애고 그 자리에 참 우리 말을 심으면 된다.

때마침 컴퓨터가 나와 우리 글은 순풍에 돛을 달았다. 일본이나 중국은 컴퓨터에서 한자말 때문에 속도에서 우리에게 뒤진다. 일본은 일본한자말을 걸러내지 않은 우리 학계나 정치하는 사람에게 동양권 화합을 속삭이며 한자를 같이 쓰자고 하니 은근 슬쩍 한자가 고개를 들지만, 그 일은 우리 발전을 늦추게 발목을 잡히는  일이다.

쉬운 한글에다 어려운 한문을 섞어 쓰면 가난하고 힘겹게 사는 사람들은 한자를 배우지 못해 더욱 서러워질 뿐이다. 전통문화 계승차원 이라지만 우리 글에 중국글자 몇 천자를 섞어 써서는 전통문화를 계승할 수 없고, 그냥 먹고 자고 입고 살면서 쓰는 물 흐르듯 순탄하고 깨끗한 우리 말로 고전을 번역해 어른 아이가 훤히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그토록 오랫동안 중국글자를 썼지만 중국글자가 우리 것이 될 수 없었던 것은 중국글자는 우리 말 소리를 적을 수 없는 뜻글자이기 때문이다. 워낙 오랫동안 써왔기 때문에 귀로 들어서 곧 알 수 있는 말과, 한글로 써 놓았을 때 쉽게 알 수 있는 말은 본디 중국글자에서 나온 말이라도 우리말이라 보아야 하고, 아무리 많이 쓰고 있더라도 귀로 들어서 알기 어렵고, 한글로 적어서 모르는 말은 우리말로 보지 말아야 한다. 사전에 아무리 많이 올라 있어도 그런 말은 우리말이 될 자격이 없다. 그런 말을 우리말이라 생각해서 한글로 적어서 자꾸 쓰니까 우리말과 글이 어렵게 되고, 중국글자를 다시 섞어 쓰자는 말이 나온다.

시급히 걷어내야 할  ‘말쓰레기’

어떤 중국글자말의 앞이나 뒤에 중국글자 한 자를 덧 붙여서 우리말투를 바꾸고 있다. 우리말은 어느 것이나 선명한데 그런 말투는 선명하지 않아 마치 어지러운 속임수 놀이 같으면서 앞뒤에 또 다른 한자말을 끌어들인다.

보기

① <-적(的)>.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가 옵니다.” ‘아주 전국에가 아니고 전국에 가깝게’란 뜻이라면 {거의 전국에}라 할 분명한 우리 말이 있고, 또 {온 나라(전국)에 비가 옵니다.}로 쓰면, 말 그대로 ‘온 나라에 비가 온다.’는 분명한 우리 말이 있는데, ‘-적으로’를 뜻 없이 넣었다.

‘-적’의 근원을 더듬어보면, 우리나라가 중국글자를 많이 쓰던 봉건왕조 시대에도 ‘-的’은 어떤 글에서고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무슨 글이든지 ’-적’을 붙여 쓰고 말까지 그렇게 한다. 이것은 일본글의 탓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적’은 본래 ‘-의’의 뜻으로 쓰는 중국말 토씨다. ‘열린 마디만 있는 일본말’은 이런 ‘닫힘마디’로 나오는 중국글자를 써야 <말맛이 나고, 일본 발음 ‘테끼’가 서양말 ‘tic’발음 내기를 돕는다.>고 일부 ’-の‘의 자리에 넣어서 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불편한 곳 없이 알맞은 말과 글을 두고 엉뚱한 남의 나라 말을 따라 쓰는 것은 아직도 사대주의 사상에서 우리가 해어나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니 ‘-적’이 들어간 글은 본래 없었던 글이어서 빼버리면 되는 곳이거나, 단순한 우리 토씨가 들어갈 자리인 것이다.

그 밖에 ✔-화(化). ✔-성(性). ✔-하(下). ✔-상(上). ✔-감(感). ✔시(視) ✔-리(裡). ✔-등(等). ✔재(再)-. ✔제(諸)-. ✔미(未)-. ✔대(大)-. ✔소(小)-. ✔신(新)-. ✔고(古)-. ✔현(現)-. ✔초(超)-. ✔탈(脫)-. ✔불(不)-. ✔합(合)-. ✔대(對)-. ✔매(每)-. ✔무(無)-.  들도 같은 모양새로 쓰고 있는데, 글로 쓸 때는 구분된다 치고, 입으로 말할 때는 중국글자까지 떠올라오는 것이 아니어서 쓸모없이 우리 글만을 어지럽힌다. 또 이런 글자는 앞뒤로 한자말을 끓어들인다.

② <중국글자말+한다>. ㉠ ‘중국글자 움직씨+하다.’ {밥 먹는다}→‘✔식사 한다’. {걸어간다}→‘보행한다’……. ㉡ 중국글자(그림씨)+하다. {깨끗하다}→‘✔청결하다’ {가난하다}→‘✔빈궁하다’……… <아예 말이 되지 않는 말>.㉢ {바탕을 둔다.}→‘✔기초한다.’ {(어디에)있다.}→‘✔위치한다.’……. 이런 말들은 우리 말본에도 맞지 않으면서  우리 말을 잡아먹는다

③ <겹말>. 겹말은 거의 중국글자에서 온다. 중국글자 말이 얼른 그 뜻을 알아내지 못하는 말이어서, 저절로 다음에 알기 쉬운 말을 ‘더 붙이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오는 현상이다. {짧은 동안}→‘짧은 ✔기간동안’. {집집마다}→‘매호✔마다’. {역 앞}→‘역 ✔전 앞’. {지붕}→‘옥상 ✔위’. {살 날}→‘✔남은여생’.

④ <잘못 쓰는 하임움직씨> ‘-시킨다.’ 이것 역시 중국글자 말이 재빨리 그 뜻을 알 수 없는 말이어서, 그 다음에 쉬운 우리말을 덧 부쳐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잘못 쓰게 만들었다.

1929년 『우리말본』초판 406 쪽에서 최현배님은 “세상에는 흔히 ‘시키다’를 그릇 쓰는 수가 있나니, 그는 ‘하다’로 넉넉한 것을 공연히 ‘시키다’로 하는 것이다. 보기를 들면, ‘김 아무가 민중을 선동시켜서-.’ ‘술이란 것은 신경을 자극시킨다.’와 같은 따위니라. 제움직씨(自動詞)의 ‘하다 따위 움직씨’를 남움직씨 같이 만들어 쓰는 데에는 ‘시키’가 필요하지만은, 본대 남움직씨를 그저 단순한 남움직씨로 쓰는 데에는 조금도 하임의 뜻을 보이는 ‘시키’가 필요 없는 것이어늘, 흔히들 이것을 깨치지 못하고 조심 없이 ‘시키’를 붙여 씀은 우스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고 했다.

보기, 주의✔시킨, 파괴✔시켰다. 명중✔시켜. 이간질✔시키고. 구체화✔시키고.(『우리글 바로쓰기』[1] 97~8 쪽).

❰☹2❱ 글을 번역하는(뒤치는) 일은 그 나라말 뜻을 틀리지 않게 우리말로 나타내고, 그리고 그렇게 옮겨놓은 글에 ‘우리 말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일본 글을 옮겨놓은 글이 그 글의 뜻도 틀리고, 우리말은 아주 엉망인 경우가 많다. 그 가장 큰 까닭은

○첫째, 일본 말과 우리 말 해석법이 비슷해서 글을 따라 차례로 낱말만 우리말로 바꿔놓으면 뜻이 통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 같은 한자말을 쓰기 때문에 ‘한자말을 그대로 적어놓으면 된다.’는 쉬운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글자말’ 春陽, 屋上, 心中을 ‘봄볕’ ‘지붕’ ‘마음속’이라 읽지 않는데, 일본은 ‘春の陽’(はるのひ), ‘屋上’(やねのうえ), ‘心の中’(こころのなか)이렇게 자기나라 말로 읽는 말이 많다. 거기에 일본 사람들이 자기나라 글자 ‘カタカナ’로 적어놓은 글자까지 닥치는 대로 중국글자라면 모두 끌어 온다. 이래서 일본글을 번역한 책을 보면 중국글자말투성이가 되어 있으면서 작가의 뜻도 제대로 와 닿지 않는다. ○셋째. 일본 말과 우리 말의 짜임에서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우리 말의 토 ‘의’와 일본말의 토 ‘の’가 꼭 같이 보이면서도 크게 달리 쓰는 점과, 움직씨의 입음꼴을 달리 쓰는 점이다.

『1』토씨

① <의> 우리말에는 토 ‘의’를 잘 안 쓴다. 옛글에도 ‘의’는 좀처럼 잘 안 나오고, ‘의’자가 나와도 그것은 지금 쓰는 토 ‘에’의 뜻으로 쓴 것이다. 지금도 입으로 하는 말에는 ‘의’는 잘 안 쓴다. 너, 나, 저에는 매김자리토씨가 ‘l’ 뿐으로 {나→내, 너→네, 저→제, 누구→뉘}다.

우리말사전에서 ‘의’를 찾아보면 “체언에 붙어 그 체언이 다른 일이나 물건의 임자가 되게 하며, 그 일이나 물건의 뜻을 꾸미는 매김자리토씨”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해 놓았다. 이 토씨의 성격이 아주 단순하기 때문이다. 최현배의 『우리말본』에도 ‘의’의 성격은 “매김자리토(冠形格助詞)”라고 아주 단순하게 규정했고, “매김자리토 ‘의’를 우리말에서는 흔히 줄이고 쓴다.”고 밝혀 놓았다.

일본 말 사전에서 이 ‘の’를 찾아보면 “우선 말법만으로도 ‘격조사’로 7종(21가지의 다른 뜻), ‘형식체언’으로 4종, 병립조사(竝立助詞)로 1종, ‘간투조사(間投助詞)’로 6종, 그리고 또 다른 ‘격조사’ 1종으로 쓰여서”, 사전에 나오는 일본말 가운데 가장 많은 풀이를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말 ‘의’와 일본말 ‘の’가 얼마나 다른가를 알 수 있고, 따라서 우리말의 짜임과 일본말의 짜임이 그 바탕부터 다르다는 것을 환하게 알  수 있다.(『우리글 바로쓰기』<1>129쪽)

우리 말과 일본말에 같은 뜻으로 쓰는 매김자리토씨만을 보기로 들어 견주어 보자. {이건 아버지 모자다.}→‘이건 아버지✔의 모자다.’ 우리말에는 매김자리토 ‘의’가 없다. 그러니 일본말 ‘の’가 같은 매김자리토씨로서도 이렇게 다른데 일본글에 나오는 온갖 성격과 뜻을 나타내는 ‘の’를 모조리 ‘의’로 뒤칠 때 우리 글이 어찌되겠는가?  ‘서로의 신이 되자’ 하면, ‘서로’란 어찌씨에는 ‘의’나 ‘를’을 붙일 수 없고 순수한 어찌씨만 써야한다. ‘서로✔의’→{서로.} ‘의’를 없애야 이 말이 우리말로 살아난다. (스스로✔의/모두✔의 →스스로/모두)

「일본글의 본뜻이 잘못 옮겨지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말이 일본글을 따라 괴상하게 쓰이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니다.」

② <와의, 과의>. ‘과’나 ‘와’에 ‘의’를 또 넣는 경우다. ‘韓國との交涉’ 그대로 번역하면(뒤치면) ‘한국과의 교섭’이다. ‘✔-의’를 빼고 {한국과 교섭}이라 해야 맞다. ③ <에의> ‘自由への敎育’ 번역하면 ‘자유✔에의 교육’→{자유 교육/자유에 이르는 교육}. ④ <로의/의로의> 곳자리(處所格)을 나타내는 어찌자리토씨 다음에 매김자리토씨 ‘의’를 붙인 것인데, ‘에의’와 같이 ‘への’를 글에 따라 이렇게 옮겨 쓴 것이 버릇으로 되었다. ‘미국✔으로의 아기수출’→{미국에 아기수출}. ⑤ <에서의> ‘からの’를 그대로 옮겨, ‘일본✔에서의 생활’→{일본의 생활}.

⑥ <로서의/으로서의> ‘としての’를 그대로 뒤치면. ‘일본사람✔으로서의 심성은’→{일본사람의 마음씨는} ‘전사✔로서의’→{전사로서}. ⑦ <로부터의, 으로부터의> ‘からの’ ‘よりの’를 그대로. ‘억압✔으로부터의’→{억압에서} ‘노동현장✔으로부터의’→{노동현장의}. ⑧ <에로의> 이것도 ‘への’를 옮긴 것. ‘혈중✔에로의’→{피 속으로} ⑨ <그 밖에 쓸모없이 겹치는 토>. <에게서> ‘집단✔에게서는’→{집단에서는} ‘딸✔에게서’→{딸에서} ⑩ <에로까지>. ‘주부✔에로까지’→{주부까지} ⑪ ‘표정✔에까지도’→{표정까지도.} ‘문학관✔에서부터’→{문학관에서} ‘누구✔든지에게’→{누구에게나}. ‘아이들✔마다에서’→{아이들마다}, ‘단계마다✔에서’→{단계마다}. ‘사람✔에게마다’→{사람마다}. ‘100g✔까지마다’→{100g마다}. ‘서로✔를 격려하면서’→{서로 격려하면서>. ⑫ <보다> <앞산보다 뒷산이 더 높다.>하고 토씨로 쓴다. ‘✔보다 용기를 내어서’ 어찌씨로 쓰는 것은 일본말 ‘より’를 그대로 옮겨 쓴 버릇이 퍼진 때문이다. ‘✔보다’→{더, 더욱}. ⑬ <-에 다름 아니다> ‘다름 아니옵고···’나, ‘다름 아니고···’하는 것과, ‘풀이말’에서 ‘베품꼴’로 쓰는 ‘-에 다름 아니다’는 전혀 다른 말이며, 이 ‘-에 다름 아니다’는 일본말 사전에도 실린 (ほかならない) 그대로다.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없는 말이다. 자연환경의 오염은 인간의 ‘죄악에 ✔다름아니다.’→{죄악이다} ⑭ <주목에 값한다> 일본말 사전에 나와 있는 ‘注目に値する’를 그대로 옮긴 말이다. ‘✔주목에 값한다’→{주목 할만 하다.} ⑮ <의(依)하여>도 よって(依って,因って, 仍って)를 따라 쓴 것. ‘점진적 발육에 ✔의하여 대재벌로’→{점점 발육에 따라 큰 재벌로}. ‘✔의하여’→{따라} ⑯ <-에 있어서> ‘-에 있어서’란 말은 일본말 ‘-に於て’(-において)를 그대로 따라 옮겨 쓰고 있음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에 있어서’가 우리말이 아니라는 또 하나 증거는, 어떤 경우도 이 말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 하나도 없고, 이 말 대신에 우리가 보통으로 쓰고 있는 토씨를 그 자리에 넣으면 훨씬 부드럽고 자연스런 말이 되기 때문이다. ‘학교 경영에 ✔있어서의 자율성.’→{학교 경영의 자율성}.

『2』입음도움움직씨를 아무데나 함부로 쓰는 것은 일본 말글의 영향임에 틀림없다.

㉮ <진다>.  おとうさんのことをきかれるたびに. ‘아버지의 일을 ✔물어질 때마다’→{아버지 일을 물을 때마다}. ‘10日もかかつてやっとやけた炭 번역하면. ‘열흘이나 걸려서 겨우 ✔굽혀진 숯’→{열흘이나 걸려서 겨우 구운 숯>. 4時におこされた. ‘4시에 ✔깨워졌다’.→{4시에 깨었다}. ‘✔만들어진’→{만든}. ‘✔만들어지는’→{만드는}. ‘✔열려지지’→{열리지}. ‘✔보내지고’→{보내고}. ‘✔키워진다’→{키운다/키우게 된다}. ‘✔키워지는’→{키우는/키우게 되는}. ‘✔보여집니다’→{보입니다}. ‘✔뿌리 뽑혀져야’→{뿌리 뽑혀야/뿌리 뽑아야}. ‘✔돌려보내져야’→{돌려보내야}. ‘✔붙여져’→{붙여/붙어}. ‘✔써졌다는’→{썼다는}. ‘✔주어지는’→{(누가)주는}. ‘✔지켜져야’→{지켜야}. ‘✔밝혀져야’→{밝혀야}.

㉯ <된다> ‘✔시정돼야’→{시정해야/바로잡아야}. ㉰ <되어진다> ‘이러한 점이 ✔극복되어져야 합니다’.→{이런 점은 극복되어야 합니다}. ‘✔각인되어졌다’→{각인되었다/새겨졌다}. ‘✔매장되어진’→{매장된/파묻힌}. *남움직씨끼리는 포개 쓸 수 없다. ㉱ <불린다. 불리운다> ‘5공비리라 ✔불리는’→{5공비리라 부르는/말하는}.‘✔불리던 동네’→{부르던 동네}.

❰☹3❱<서양말이 우리말을 파괴하는 말법>. 때매김을 흉내 내어 쓰는 것으로, ‘-의지를 ✔불태웠었다’.→{불태웠다}. 우리말의 때매김은, 이적(현재) ‘-고 있다.’· 지난적(과거) ‘-고 있었다’· 올적(미레) ‘-고 있겠다’가 있을 뿐이지, 지난적끝남때(과거완료시)라 하여 ‘불태웠었다’고 쓰는 법이 없다. ‘가고 ✔있었었다.’라는 ‘지난적나아가기끝남때’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꼭 ‘✔냈었다’로 쓸 일이 있다면 {낸 일이 있다, 낸 바 있다}고 쓴다. 또  ‘하다’나 ‘있다’ 자리에 ‘가지다’를 쓰고 문장배열에서 낱말을 흩으러 놓는 것이다. 그 보기, ‘만남을 가지다’,  ‘모임을 가지다’, ‘가졌다 책을’ 들들이다. (<우리글 바로쓰기><1>223쪽)

이제는 남의 글을 끌어 쓰는 것도 한계를 넘었다. 방송·신문, 책을 보나, 거리의 간판을 보나, 남의 말투성이이다. 많은 국민은 글을 읽을 줄만 알고 뜻은 모르는 ‘글봉사’로, 들어도 뜻을 모르는 ‘귀머거리’로 만들어간다. 나라의 중요한 시책을 알리면서 그 시책의 정작 알맹이 말은 남의 말을 써서 많은 사람들은 제대로 된 뜻도 모른 체 대충 짐작하고 마는 웃지 못 할 일이 흔하다. 이렇게 백성을 눈멀고, 귀먹게 하는 현상은 조선 말기와 같은 꼴이다.

나는 선거철이 돌아오면 줄줄이 새로 생기는 말, ‘진검승부’ ‘읍참마속(泣斬馬謖)’ ‘씨물레이숀,’ ‘매니훼스토’, 들들 새로 생기는 남의 말이 겁난다. 어느 후보의 말을 들어도 남의 나라 말투에 남의 나라 글이다. 순수한 우리말 우리글을 쓰면 뜻이 분명해진다. 분명한 말을 쓰면 분명한 책임이 무서워서 신문 방송 정부기관까지 합세해서 구렁이 담 넘듯 어물쩍 넘어가는 걸까?  생활쓰레기는 쓰기에 따라서 다시 쓰는 재원이 될 수 있지만, 글자쓰레기는 우리 글과 우리 정서를 망칠 뿐이다.

☀ 우리는 지금까지 남의 말과 남의 말법으로, 얼마나 많이 우리 말과 말본이 죽어가나?  그 기본만을 보았다. 이 기본을 살리지 않고는 우리 말을 살릴 수 없다. 요즘 방송에서 “기쁘십니까?” 물어보면 “기쁜 것 같습니다.”고 대답하는 장면을 흔히 본다. 제 속을 말하면서 기쁜지 슬픈지 몰라 남의 속을 말하듯 하는 것은, 우리 ‘움직씨’를 남의 말투 따라  ‘진다.’ ‘된다.’ ‘되어진다.’ ‘불린다.’ ‘시킨다.’들들과 같은 ‘입음움직씨’로 잘못 쓰는데서 우리 말 ‘정서가 바뀐 것이다.’ 고 밖에 할 수 없다. 입음꼴로만 쓰는 까닭은, ‘행동의 주체를 드러내기 꺼리는 마음 때문이고, 우리말에 맞지도 않는 중국, 일본, 서양나라 문법을 본떠서 그것을 규범으로 글을 쓰는 일은 우리 말 뿌리가 죽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남의 말을 끌어 쓰는 것보다 더 큰 잘못이다.  이제는 ‘우리 힘이 새나가는 중국글자와 중국말투/일본말투/서양말과 서양말투는 확실하게 도려내야한다.’는 생각이다.

☀ 우리 말 글이 남의 나라 글에 파묻히지 않으면서, 남의 나라 글을 깊이 있게 공부해, 우리 문화 문명 발전에 남의 나라 글을 ‘도구’로 쓸 때라야 우리글이 바로 서고, 우리글이 바로 서야 남의 글도 바로 볼 수 있는 너그러움도 생긴다. 우리나라는 『한반도라는 국토와 우리 말이라는 영토』를 합해서 우리나라다. 다행이【우리 말의 순수함을 지켜나가는 것이 통일의 바탕이 된다는 인식에는 남북이 한 뜻이다.】고 “남북의 공동대표들이 뜻을 모았다.”는 소식이다.

우리는 이 말을 기회로 삼고 꼭 순수한 우리말과 글을 지켜내는 일이야 말로, 우리 아들딸에게 금덩이를 안겨주는 일보다 더 귀한 보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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