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 들어가기 앞서, 잠깐 하나만 여쭤 봅시다.
우리말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실제 있었던 얘기…
어떤 할머니가 서울에 가서 버스를 타고 ‘비닐하우스’ 앞에 내려달라고 했더랍니다.
기사가 ‘어디에 있는 비닐하우스요?’ 해도 그냥 ‘비닐하우스 앞’이라고만… 딸이 거기로 마중을 나올 거라고…
그 때는 서울 곳곳에 비닐하우스촌들이 꽤 있었고 지금처럼 전화도 흔치 않던 때라 기사와 한참을 실랑이를 했는데 다행히도 기사가 좋은 분이라 끝까지 이리저리 알아보고 경찰 도움까지 받아서 찾아낸 그 곳은… (서울 수유리에 있는)’아카데미하우스’였다고…

우리 사는 모습을 보면 철이 되면 으레히 하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한복을 안 입다가 명절 때가 되면 한복을 챙겨 입고, 평소에는 신경 안 쓰다가 때가 되면 순국선열에 대해 침을 튀기고, 평소에는 농촌에 관심도 없고 그보다 더 비싼 것들도 잘 소비하다가 김장철만 되면 간만에 찔끔 오른 배추값, 고추 값을 가지고 금치니 뭐니 하며 열 올리고…(그보다 더 비싼 빵, 커피는 잘도 마시더만…)
그런 것 가운데 우리글자(한글)와 우리말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들온말, 서양말 잘만 써 대다가 한글날 즈음만 되면 온통 ‘훈민정음’과 ‘세종큰임금’을 칭송하고, 스스로는 한번도 그런 적 없는 양 서양말을 쓰고 딴나라 글자를 써대는 세태를 꼬집기 바쁩니다.(그러면서 ‘한글’에 대해 떠올리는 건 천편일률 ‘나랏 말싸미 어쩌구 저쩌구…’ 왜? 배운 게 그것 밖에 없고 아는 게 그거 밖에 없으니까… ^^;;)

이쯤에서 앞서 했던 물음에 답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우리말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솔직히 아마도 ‘세종대왕’을 먼저 떠올리신 분들 계실 것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세종큰임금께서는 글자를 만들었지 말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한글날만 되면 서양 글자 쓰는 걸 탓하는 건 물론이고, 들온말, 서양말 하는 것까지도 ‘세종큰임금’을 끌어들여 꾸짖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그만큼 큰 목소리에 견줘 관심이 없다는 거지요.
사실 ‘훈민정음’ 얘기를 하면 뭔 거창한 이론들이 많이 따라 나옵니다만, 쉽게 말해서 ‘말'(그리고 ‘글’이나 ‘글자’도)은 생각을 서로 나누려는 뜻이 가장 큰 뜻입니다.
우리가 ‘훈민정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칭송하는 가장 큰 까닭도 쉽게 배우고 쉽게 쓸 수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제가 우리 글자와 우리말(저는 이것을 뭉쳐서 ‘한말글’-우리 글자는 ‘한글’, 우리 말은 ‘한말’-이라고 부릅니다.) 얘기를 하면서 그것이 우리 것이니 아껴야 한다는 맹목적인 칭송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글자만 봐서, 우리가 써 오던 글자가 많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자’는 아시다시피 너무 어렵습니다. 심지어 그 동네 사람들조차 너무 어려워 어떻게든 버려볼 궁리를 했고 그래서 요즘은 로마자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중국에서는 ‘평음’이라고 합니다.)
그 밖에 ‘이두’도 있고 ‘구결’도 있고… 여튼 조금이라도 쉽게 적어 보려 꽤 애를 썼지만 ‘훈민정음’만 한 게 없습니다.
‘말’로써 보자면, 조금 다른데…
사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에는 한자말도 꽤 있고 들온말[외래어], 딴겨레말[외국어]도 이미 꽤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잊혀져 가는 맨우리말보다 그런 말이 더 뜻이 쉬이 와 닿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되도록이면 우리 글자, 우리 말을 아껴 쓰자고 하면서도 실제 말글살이에서는 설령 들온말이 좀 섞이더라도 쉬운말을 쓰자고 주장하는 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말’의 가장 큰 쓰임새는 생각을 서로 나누고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가장 좋은 말은, 못 배운 사람이나 머리가 좀 모자라는 사람조차도 이해할 수 있는 말이 가장 좋은 말일 것입니다.
어떤 무리들이 끼리들만 쓰는 ‘곁말'[흔히 ‘은어’] 만큼이나 나쁜 것이 어떤 계층이나 배움 정도에 따라 무리들끼리만 쓰는 말입니다.
그런 말은 다른 무리 말고는 따돌리는 말이고 서로 격차를 두려는 행위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괜히 쉽게 말해도 될 말에 서양말이나 한자말 넣어 쓰는 건 ‘내가 그대들보다 뛰어나거나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흔히 범죄자나 혹은 새 세대끼리 쓰는 곁말은 나쁘다 하면서도, 실제로 우리는 한자말이나 서양말을 통해 이런 짓을 자주 하곤 합니다.(심지어 저 역시도 어떤 까닭으로 일부러 그렇게 쓰기도 합니다.)

가끔 공공장소에 가서 여러가지 알림판을 보다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Caution’과 ‘주의’ 가운데 어느 말이 더 많은 사람이 알아 들을까요?
‘Danger’와 ‘위험’ 가운데 어느 말이 더 많은 사람이 알아 볼까요?
그 뿐만 아니라 이 나라 행정을 보면 많은 지자체들이 MOU(업무협정양해각서-이건 바꿔도 뭔 말인지 모르겠…ㅡ.ㅡ)를 맺고, TF(특별전담조직)를 만들고 서류를 ‘게첨’하고 요금을 ‘징구’하고 있습니다.(사실 이미 ‘국어기본법’이란 것이 있음에도 앞서 법을 지켜야 할 정부 조직부터가 도무지 지킬 마음이 없는 모양입니다.)
특히나 위험표지 같은 것을 서양말이나 한자말을 써서 못 알아 듣고 피해를 보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그 주체들이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만약 위급시 안내방송을 딴겨레말을 먼저 쓴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항의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딴겨레말글로 써 놓은 위험 혹은 경고 글귀는 여전히 많고 항의하는 사람도 적습니다.

말글은 쉬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말과 한글이 가진 제 값어치이기도 하고 말글의 제 값어치이기도 합니다.
쉬운 말글을 쓰는 것은 가끔 우리의 권리를 지켜주기도 하고 우리의 목숨을 지켜주기도 하며 사람들이 좀더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쉬운말글은민주주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