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에 생각해 보는 붇다께서 오신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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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부처님 오신 날에 즈음한 잡소리 하나… ^^;;

지금은 한순간에 폭삭 망했지만 혜민 스님이나, 그래도 여전히 말빨 살아 계시는 법륜 스님…
그 두 분께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그리고 그 분들이 참으로 좋은 말씀도 많이 하고 계시기는 하지만…
적어도 불교의, 법의 근본을 생각해 볼 때 그 두 분의 말씀은 그야말로 ‘요설'(饒舌:쓸데없이 말을 많이 함/妖說:요사스러운 짓)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두 분의 말씀에는 참으로 좋은 말씀도 많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많다.
하지만 불제자라면 ‘법'(法)을 알려주는 것이 근본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 법에서 요체, 핵심이라 할 ‘깨달음’을 전해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 두 분의 말씀은 마치 아픈 사람에게 단 것을 물려주어 아픔을 잊게 해 주고, 진통제를 놔서 아픔을 못 느끼게 해 주고, (다행히도)때로는 치료를 해 주어 아픔을 없애주는 것에 가깝지 않나 싶다.
이런 것은 불제자가 할 일이라기 보다는 의사, 심리상담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지금 여기서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이 무엇인지, 요체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부처님의 뜻이 그렇게 이 세상의 아픔을 잊게 하거나 단순히 없애주는 것에 있지는 않은 것 같다는 얘기다.
부처님 오신 날에 생각해 보는, 붇다께서 오신 뜻…

말과 글의 신중함 – ‘빼도 박도 못 하다’와 ‘옴짝달싹 못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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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침’을 뜻하던 “너무”가 이제는 ‘아주 많이’라는 뜻으로 쓰인 건 꽤 되었습니다만,
우리가 흔히 잘못 쓰는 말 가운데 ‘빼도 박도 못 하다’라는 게 있습니다.
이 말은 본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이 요즘은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뜻인 ‘옴짝달싹 못 하다’와 헛갈려 쓰는 일이 많은데, 예사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라 좀 배웠을 법한 방송에서 조차 그렇게 씁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말로는 ‘빼박캔트'(‘빼도 박도’의 앞 글자와 영어 can’t를 합친 말)라고 하는데 요즘은 방송에서도 이 말을 거리낌없이 쓰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앞선 어느 나라마름이 젊은이들이 쓰는 말을 따라 하면 다 젊어 보이는 줄 알고 ‘멘붕’이니 하는 젊은이들 입말을 따라한 뒤로 더한 것 같습니다.

여튼,
‘빼도 박도 못 하다’와 ‘옴짝달싹 못 하다’는 둘 다 난처한 상황이라는 비슷한 점이 있지만, ‘빼도 박도 못하다’는 이렇게 하려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하려 해도 안 되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고, ‘옴짝달싹 못 하다’는 어떻게 해 보기에는 힘이 딸리고 상황이 되지 못해 난처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비슷해 보이지만 ‘시간’과 ‘시각’이 다르고, ‘서둘러’와 ‘일찍’, ‘빨리’, ‘급하게’ 같은 말이 다 다른 것과 같습니다.
우리 나랏말 교육이 그러하다 보니 예사 사람들이 그런 거야 또 그러려니 하는데, 말을 잘 가려 써야 할 방송, 언론이나 좀 배웠을 법한 사람들까지 너무 말본새 없이 말을 써 대니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하다 못해 요즘은 기사들 마저 제목 낚시질에 마치 개인 블로그 글 같이, 감상문, 수필 같이 써 대는 글들이 흔합니다.)

물론 저 역시도 평소에 말은 (되도록)편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글을 쓸 때는 말보다는 조금 더 걸러서 쓰고, 게다가 그 글이 많은 사람 앞에 나갈 때는 더더욱 거르고 골라서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도 편하게 말하는 것과 가려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사회가 권위가 없어지는 건 좋은 일이나 진중하고 신중함은 지켜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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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동안이나 이어지던 지루~~~한 장마도 끝나고
잠깐이지만 뜨거웠던 무더위도 서서히 꺽이고…

우리 삶도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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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이지 않은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 것이 무지이고 오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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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이지 않은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 것이 무지이고 오류의 시작

‘상식’을 의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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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방안에 식물을 두면 밤새 이산화탄소를 내뿜어서 좋지 않다는 얘기가 떠돈 적이 있었습니다.(식물이 대체로 낮에는 산소를 더 많이 내뿜고 밤에는 이산화탄소를 조금 더 많이 내뿜는다는 얘기)
그런데 그와 비슷한 얘기가 요즘도 떠돌고 있습니다.
방 안 공기를 맑게 하려고 공기정화식물을 방 안에 둔다는 것인데,…
정말 그럴까? 그렇게나 공기정화식물이 효과가 큰 걸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공기정화식물로 방 안 공기를 맑게 하려면 평방미터(가로, 세로 1미터)마다 열에서 백 개 정도의 화분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좀 다른 보기로 이런 것도 있습니다.
옛날에 ‘대나무 북방한계선’이란 걸 배웠는데, 우리나라에서 대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경계가 남해안을 따라 비스듬하게 올라오다가 부산, 울산 쪽에서 조금 더 올라온 그런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중부지방에도 대나무가 있었고 강릉 오죽헌에는 우리가 잘 아는 ‘오죽'(검은 대)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상식은 (맹목적)믿음이 되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상식들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 여러가지 상황이나 조건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빠지거나 잘못 전해지면서 결과만 전해진 까닭입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상식’이 비단 자연과학 쪽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철학이나 사상이나 그 밖에 형이상학 쪽에도 이런 ‘잘못된 상식’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널리 알려진, 거의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는 ‘상식’도 가끔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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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에….
#종교 말고 #신성, #영성
#법구경
#숨겨진성서 #사탄의탄생 은 그냥 딸려 온 거…
#42장경‘은 어디로 갔나?
‘부처님오신날’에 성당, 회당에 가 보기…(그럼 예수님오신날에는 절에 가 보는 걸로…)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에 집돼지를 죽여없애는 일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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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때’라는 것과 ‘돌아가는 형편’이란 것이 있다.

한 때, 농사를 지으면서 모를 심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벼에 벌레가 들기 시작했다.
벌레 알이 생기기 시작한 넓이는 하루하루 눈에 띄게 넓어 졌고, 그 속도면 일주일 정도면 논 끝까지 다다를 것 같았고 그 애벌레가 다시 퍼지면 놀 농사는 그르겠다 싶었다.
하지만 농약을 안 치던 때여서 벌레약을 치기는 싫었고 게다가 이틀 뒤는 약속이 있어서 좀 오래 집을 비워야 할 상황이었다.
결국, 늘 기대던 ‘자연치유력’을 믿어 보기로 하고(혹은 올 한해 농사는 포기하기로 하고?) 일주일 넘게 집을 비웠다.
그리고 돌아와서 보니 벌레가 든 넓이는 거의 그대로였고 더 이상 벌레 피해도 눈에 띄게 있지는 않았다.(좀 덮붙이면, 농약과 비료를 안 하는 유기농을 하기로 한 뒤 한 두 해는 우연인지 참말로 그 영향인지 나락이 나는 량도 꽤 줄고 병충해도 좀 있더니 그 뒤로는 관행농을 하는 집이나 별 차이가 없더라.)

신기하게도 자연은 그렇다.
늘 뭔가 그리 될 ‘때’라는 게 있었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돌아가는 형편’이란 게 있었다.
또 다른 보기로는, 우리 마을에도 ‘황소개구리’라는 것이 엄청나게 퍼진 적이 있었는데, 심지어는 봄이면 동네에 있는 (농사용)못 가장자리가 꺼멓게 될 정도록 황소개구리 올챙이들이 몰려 있고는 했다. 동네 들이 그리 크지도 않았으니 그 올챙이들이 다 커서 들로 나가면 들판에는 온통 황소개구리로 덮힐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봄, 여름이면 그렇게 시끄럽게 울어대던 황소개구리는 어느 때부터는 점점 줄어들어서 봄에 연못에서 올챙이만 잔뜩 보게 되고는 더 이상 골치거리가 될 정도로 늘어나지는 않았다.

또 있다.
우리나라 남부 지방으로는 이른바 ‘소나무 에이즈’라 부르는 ‘소나무재선충’병이 널리 퍼진 적이 있는데, 특히 우리 지자체는 보이는 족족 나무를 베어 모아서 약품 처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새로 생기는 병든 나무는 별로 방제를 안 하는 지자체 쪽과 거의 비슷하게 퍼졌고 그렇게 퍼지다가는 곧 소나무는 다 없어지겠다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병은 좀 잠잠해 졌는데, 그게 방제를 열심히 하는 우리 지자체 쪽 뿐만 아니라 다른 곳들도 거의 비슷하게 잠잠하다.

지금 ‘아프리카돼지열병’이란 것이 퍼져서 병이 생긴 그 고장 돼지는 싸그리 죽이고 있다.
이미 병든 돼지를 어떻게든 손 쓰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앞서 내가 겪었던 일들로 보건대, 그게 과연 도움이 될까?
병이 생긴 고장 돼지는 몽땅 죽이기로 했다니 어디 견줄 데가 없기는 하겠으나, 실험으로나마 돼지를 키우는 환경이나 좀 좋게 해 주고는 그냥 방치해 보면 어떨까도 싶다.
심지어 그런 우스개도 있다. “감기는 약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7일’…
지금 병이 마구 퍼지는 것은 그럴 ‘때’가 되었기 때문이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돌아가는 형편’이있기 때문은 아닐까?
지나고 보면 오히려 돼지를 키우는 환경을 좋게 해 주는 것이나 그렇게 마구잡이로 죽여 없애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닐까?

사람 때문에 죽어가는 모든 뭇목숨들에게 명복을… …()…

#내가농사좀지어봐서아는데 #내가해봐서아는데 #이명박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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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무가 힘든 일이 있나 보다.
여행을 가겠다는 소리를 듣고 여기로 오라 했는데 그럴 마음 여유가 없는지 연락이 없다.
남의 인생을 내가 대신 살아 줄 수도 없고, 나 역시 그런 처지라면 별다를 수도 없을테고…
사는 게 그렇다.
별은 참 밝다……

위생이 가지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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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깨끗하게 자랐나” A형 간염 환자 6배 급증 ‘위생의 역설’>

‘감기는 모든 병의 뿌리’라는 생각은 철저히 서양의학의 시각이다.
그 말이 맞는 면도 있지만 감기 바이러스 덕분에(!) 사람 몸이 스스로 면역 체계를 발전시켜 가는 면도 있다.
‘위생’이란 것도 그런 양면성이 있다.
깨끗한 것이 늘 좋은 것 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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