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에 생각해 보는 붇다께서 오신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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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부처님 오신 날에 즈음한 잡소리 하나… ^^;;

지금은 한순간에 폭삭 망했지만 혜민 스님이나, 그래도 여전히 말빨 살아 계시는 법륜 스님…
그 두 분께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그리고 그 분들이 참으로 좋은 말씀도 많이 하고 계시기는 하지만…
적어도 불교의, 법의 근본을 생각해 볼 때 그 두 분의 말씀은 그야말로 ‘요설'(饒舌:쓸데없이 말을 많이 함/妖說:요사스러운 짓)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두 분의 말씀에는 참으로 좋은 말씀도 많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많다.
하지만 불제자라면 ‘법'(法)을 알려주는 것이 근본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 법에서 요체, 핵심이라 할 ‘깨달음’을 전해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 두 분의 말씀은 마치 아픈 사람에게 단 것을 물려주어 아픔을 잊게 해 주고, 진통제를 놔서 아픔을 못 느끼게 해 주고, (다행히도)때로는 치료를 해 주어 아픔을 없애주는 것에 가깝지 않나 싶다.
이런 것은 불제자가 할 일이라기 보다는 의사, 심리상담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지금 여기서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이 무엇인지, 요체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부처님의 뜻이 그렇게 이 세상의 아픔을 잊게 하거나 단순히 없애주는 것에 있지는 않은 것 같다는 얘기다.
부처님 오신 날에 생각해 보는, 붇다께서 오신 뜻…

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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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이지 않은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 것이 무지이고 오류의 시작

편하게 ‘죽음’을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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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배 불러도 때가 되면 배 고플 것이고
잘 자고 일어났어도 때가 되면 또 졸릴 것은 뻔한 일이다.
지금 생생하다 해도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것 또한 뻔한 일인데,
이 뻔한 일을 미리 얘기하길 꺼리는 까닭이 무엇인가!
#죽음을이야기하자
#죽음잔치(#죽음축제)를 만들고 싶다.

같은 말, 다른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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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다음’에 대해 얘기한다.
그대도 ‘사람다움’을 얘기한다.
나는 ‘정의’를 얘기한다.
그대도 ‘정의’를 얘기한다.
나는 ‘양심’을 얘기한다.
그대도 ‘양심을 얘기한다.
나는 ‘바른 길’을 얘기한다.
그대도 ‘바른 길’을 얘기한다.

똑같은 걸 얘기하는데
어찌 이리 말이 다른가!
#뭣이중헌디

‘상식’을 의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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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방안에 식물을 두면 밤새 이산화탄소를 내뿜어서 좋지 않다는 얘기가 떠돈 적이 있었습니다.(식물이 대체로 낮에는 산소를 더 많이 내뿜고 밤에는 이산화탄소를 조금 더 많이 내뿜는다는 얘기)
그런데 그와 비슷한 얘기가 요즘도 떠돌고 있습니다.
방 안 공기를 맑게 하려고 공기정화식물을 방 안에 둔다는 것인데,…
정말 그럴까? 그렇게나 공기정화식물이 효과가 큰 걸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공기정화식물로 방 안 공기를 맑게 하려면 평방미터(가로, 세로 1미터)마다 열에서 백 개 정도의 화분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좀 다른 보기로 이런 것도 있습니다.
옛날에 ‘대나무 북방한계선’이란 걸 배웠는데, 우리나라에서 대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경계가 남해안을 따라 비스듬하게 올라오다가 부산, 울산 쪽에서 조금 더 올라온 그런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중부지방에도 대나무가 있었고 강릉 오죽헌에는 우리가 잘 아는 ‘오죽'(검은 대)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상식은 (맹목적)믿음이 되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상식들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 여러가지 상황이나 조건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빠지거나 잘못 전해지면서 결과만 전해진 까닭입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상식’이 비단 자연과학 쪽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철학이나 사상이나 그 밖에 형이상학 쪽에도 이런 ‘잘못된 상식’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널리 알려진, 거의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는 ‘상식’도 가끔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릇과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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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리에는 그에 걸맞는 그릇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 그릇은 다르게는 ‘감'(흔히 입말로는 ‘깜’이라고도…)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말쌤’ 사전에는 ‘일정한 자격이나 조건을 갖춤.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비단 ‘자격’이나 ‘조건’을 떠나서 즉 자격이나 조건은 갖추더라도 그 자리에 걸맞는 그릇인지는 좀 다른 얘기라고 봅니다.
흔히 선거 철이 되거나 정치적 한 대목에서는 어떤 데에 뛰어난 사람이 어떤 자리에 감으로 오르내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들 가운데 과연 그 자리에 걸맞을까 싶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기를 들면, 요리사업가인 어떤 분이 어느 당 대통령 후보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과 같은 상황인데, 사업가인 ‘도널드 트럼프’가 사업에서는 승승장구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수많은 입길에도 오르내릴 뿐만 아니라 여전히 지금도 대통령 자격이 되는지를 두고 말이 많은 모양입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 또한 얼마 앞서 어느 기업가 대통령을 두었는데 국토는 엉망으로 파헤치고 국고를 탕진하는 것도 모자라 가족들까지 낀 뇌물, 비리 사건으로 지금도 재판을 받고 있으며, 그에 이은 어느 옛 대통령은 그 아버지 후광으로 대통령까지 되었으나 나라 일을 일개 개인에게 맡겨 두었다가 큰 경을 치르고 나라도 혼란에 빠뜨린 일도 있습니다.

또 다른 보기를 들어, “삼국지”에서 뛰어난 영웅은 많지만 지도자로써 걸맞는 사람인지는 좀 다른 얘기입니다.
조자룡이나 관우가 싸움을 잘 한다 해서 그 사람이 지도자로써 알맞은지 또는, 제갈공명이 지략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지도자로써 알맞은지는 전혀 다른 문제인 것과 같습니다.
제공공명은 똑똑하고 지략도 뛰어나고 천문을 읽는 재주까지 있지만 그는 오히려 그래서 참모로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비는 비록 사람이 좀 무르고 정에 얽매이고 매섭게 자르지 못하지만 사람들을 아우르고 생각해 주는 마음이 있어 오히려 지도자로써 알맞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잘 나고 아무리 똑똑해도 그 그릇에 맞게 쓰여야 합니다.
그것은 비단 그 그릇이 크냐 작냐를 떠나서 담는 내용물에 알맞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음식인 찌개는 뜨겁게 끓여놓고 되도록 식는 걸 늦추면서 먹기에 온갖 그릇이 많이 생긴 지금도 여전히 뚝배기 같은 것에 담아 끓여 먹습니다.
사람 자체나 그 사람의 단순 업적이 아니라 그 사람의 그릇, 그 사람의 자질에 따라 써야 합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을 위한 길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쓸 때, 뭐 하나 잘 했다고 다른 일에 덥썩 데려다 써서는 안 됩니다.
연장도 하물며 그렇게 써서는 안 되는데 사람이라면 오죽하겠습니까!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 대룡마을을 보고 온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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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글은 제 예술과 얽힌 취향과도 얽힌 얘기라 굳이 여러분께 제 느낌을 강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 느낌에는 그랬다는 것이고, 예술가 마을이 예술가 마을 다우려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기 위한 글입니다.
보통 무조건 좋은 얘기만 할 때는 굳이 이런 변명을 안 해도 되는데, 글 내용이 그렇다 보니 이런 변명을 대고 있는 것도 좀 그렇다는 느낌이 드네요… ^^;;
여튼 단순히 풍경이나 보러 간 것이 아니고 예술가의 냄새, 예사 시골마을이 예술을 만났을 때 어떠한지, 어떠했으면 좋을지 하는 걸 생각하면서 가 본 뒤 쓴 글이란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장군에서 ‘대룡마을‘은 예술가마을로 꽤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대룡마을’을 갔을 때-몇해 전이라고 생각됩니다.-는 겨울(초겨울?)이라 더 그랬지만 꽤 휑한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예사 시골마을에 좀 도회스러운 예술작품도 낯설기도 했지만 뭔가 주변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는 느낌도 들었고, 이미 예술가들이 꽤 빠져나갔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예술작품들도 더 새로운 건 별로 없어 보였고 있는 것마저 내버려[방치]져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관에서 손을 댄 예술 쪽에 별로 좋은 감정이 없었기에 더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래 머물지 않고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2020년 6월 20일에 장터가 열린다기에 겸사겸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때 받았던 제 느낌이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어쩌다 잠깐 한때 느낌이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다시 갔습니다.
역시나 사람이 좀 복작거리니 그나마 마을이 좀 살아난 느낌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사람이 복작거리는 장터 근처만 그랬고, 여전히 휌하고 낯설고 여러 요소가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휑하다’는 것이 단지 인적이 드물다는 것만 뜻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안 보이더라도 사람 손길이 느껴지면 한적할 지언정 휑해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흩어지고 쓰러져 가는 시골마을을 예술마을이란 명분이 되살려 내기에는 너무 힘겨워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나마 예술가마을이라는 ‘대룡마을’을 채우고 있는 것은 장사하는 가게들이었습니다. 예술가들 혹은 예술가의 숨결은 많이 안 보여도 몇몇 (장사하는)가게들은 여전히 남아 자리를 메워주고 있습니다.
대룡마을이 비록 쓰러져가는 시골마을이기는 했지만 자연풍광이나 여러 요소들은 여전히 예술과 어울릴 만한 매력적인 요소들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더 슬펐습니다.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이나 그 숨결들은 별로 느껴지지 않고 그냥 어거지 예술작품만 몇 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기와를 올린 돌담 같은 것들 조차 어거지로 만들어 놓긴 했으나 그것이 그 마을에 생기를 주지는 못하고 그저 버거운 누낌이었습니다.

시골마을을 다니다 보면 어떤 마을은 정돈되지 않았지만 느낌-자연의 느낌 혹은 옛 느낌 같은-이 있는 경우도 있고, 건물도 새로 짓고 꽤 개발이 되었지만-새마을운동 덕을 본 듯한?- 지저분한 마을도 있습니다.
마을에 숲이 있어 그 마을에 정취를 더하고 역사의 깊이를 더해주는 데가 있는가 하면 어떤 마을은 그런 숲들이 오히려 그 마을을 더 정신사납게 만드는 데도 있습니다.
대룡마을은 자연풍광도 나쁘지 않고-아니 오히려 꽤 좋아보이고… 다만 지금은 그 곁으로 공단이 생기고 있고 고압철선이 여기저기 보여서 마을 풍광을 다 버려놓고 있기는 하지만…- 마을 안 여러 요소들도 잘 가꾸면 참으로 아기자기해 보일 수 있는 요소가 많아 보임에도 뭔가 억지로 분을 잔뜩 바르고 어거지로 판을 벌여 놓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이번에 갈 때는 되도록 옛 선입견에 영향을 안 받으려 기대를 접고 좀 다른 요소들을 보려고 애 쓴 덕분에 1941년에 지어진-昭和 16년에 지어진 것으로 올해로 일흔아홉해 된- 옛 집도 보았고 오래되고 굵은 대추나무도 보고 그 밖에도 아기자기한 요소들을 좀 보았기에 덜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덧붙여 방송이나 블로그 하시는 분들, 아무리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뭔가 재밌었으면 재밌었던 것만 좋았던 것이지 그 마을에 가서 재밌었다고 그 마을 자체가 좋은 건 아닙니다.
방송, 블로그로 밥벌이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좋았던 건 좋았던 것만 칭찬해 주시고 좀더 정확한 정보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람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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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딸을 일찍 보내주지 않는다고 사돈집을 나무라면서,
일찍 떠나고 싶어 하는 며느리를 타박한다.
그것도
평생을 살면서 그렇게나 당하며 살았던 같은 처지가…

‘공유경제’, 뜻을 바루어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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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공유경제’보다는 뜻을 바루어 ‘#나눔경제‘, 어떤가요? ^^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공유경제‘는 사실 ‘나눔경제'(sharing economy)!
#더분경제(공유경제;common economy) : 공동 이용을 기본으로 공동 소유 혹은 수익 공동 배분 그리고 공동 의사 결정
#나눔경제 또는 #빌림경제(공동이용경제;공동이용경제;공용경제;sharing economy) : 공동 이용
쉽게 말해서, ‘더분경제'(공유경제)는 함께 소유하거나 딱히 소유권이 없이 그 이익을 함께 나누는 것,
‘나눔경제(공동이용경제)는 소유자가 다른 사람을 위해 함께 쓸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
#한말글 #우리말

덧붙여, 일본에서는 ‘共有経済’라 쓰고 있으나 중국에서는 그 뜻을 바루어 ‘分享經濟'(함께 누리는 경제)라고 쓰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에 집돼지를 죽여없애는 일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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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때’라는 것과 ‘돌아가는 형편’이란 것이 있다.

한 때, 농사를 지으면서 모를 심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벼에 벌레가 들기 시작했다.
벌레 알이 생기기 시작한 넓이는 하루하루 눈에 띄게 넓어 졌고, 그 속도면 일주일 정도면 논 끝까지 다다를 것 같았고 그 애벌레가 다시 퍼지면 놀 농사는 그르겠다 싶었다.
하지만 농약을 안 치던 때여서 벌레약을 치기는 싫었고 게다가 이틀 뒤는 약속이 있어서 좀 오래 집을 비워야 할 상황이었다.
결국, 늘 기대던 ‘자연치유력’을 믿어 보기로 하고(혹은 올 한해 농사는 포기하기로 하고?) 일주일 넘게 집을 비웠다.
그리고 돌아와서 보니 벌레가 든 넓이는 거의 그대로였고 더 이상 벌레 피해도 눈에 띄게 있지는 않았다.(좀 덮붙이면, 농약과 비료를 안 하는 유기농을 하기로 한 뒤 한 두 해는 우연인지 참말로 그 영향인지 나락이 나는 량도 꽤 줄고 병충해도 좀 있더니 그 뒤로는 관행농을 하는 집이나 별 차이가 없더라.)

신기하게도 자연은 그렇다.
늘 뭔가 그리 될 ‘때’라는 게 있었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돌아가는 형편’이란 게 있었다.
또 다른 보기로는, 우리 마을에도 ‘황소개구리’라는 것이 엄청나게 퍼진 적이 있었는데, 심지어는 봄이면 동네에 있는 (농사용)못 가장자리가 꺼멓게 될 정도록 황소개구리 올챙이들이 몰려 있고는 했다. 동네 들이 그리 크지도 않았으니 그 올챙이들이 다 커서 들로 나가면 들판에는 온통 황소개구리로 덮힐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봄, 여름이면 그렇게 시끄럽게 울어대던 황소개구리는 어느 때부터는 점점 줄어들어서 봄에 연못에서 올챙이만 잔뜩 보게 되고는 더 이상 골치거리가 될 정도로 늘어나지는 않았다.

또 있다.
우리나라 남부 지방으로는 이른바 ‘소나무 에이즈’라 부르는 ‘소나무재선충’병이 널리 퍼진 적이 있는데, 특히 우리 지자체는 보이는 족족 나무를 베어 모아서 약품 처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새로 생기는 병든 나무는 별로 방제를 안 하는 지자체 쪽과 거의 비슷하게 퍼졌고 그렇게 퍼지다가는 곧 소나무는 다 없어지겠다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병은 좀 잠잠해 졌는데, 그게 방제를 열심히 하는 우리 지자체 쪽 뿐만 아니라 다른 곳들도 거의 비슷하게 잠잠하다.

지금 ‘아프리카돼지열병’이란 것이 퍼져서 병이 생긴 그 고장 돼지는 싸그리 죽이고 있다.
이미 병든 돼지를 어떻게든 손 쓰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앞서 내가 겪었던 일들로 보건대, 그게 과연 도움이 될까?
병이 생긴 고장 돼지는 몽땅 죽이기로 했다니 어디 견줄 데가 없기는 하겠으나, 실험으로나마 돼지를 키우는 환경이나 좀 좋게 해 주고는 그냥 방치해 보면 어떨까도 싶다.
심지어 그런 우스개도 있다. “감기는 약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7일’…
지금 병이 마구 퍼지는 것은 그럴 ‘때’가 되었기 때문이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돌아가는 형편’이있기 때문은 아닐까?
지나고 보면 오히려 돼지를 키우는 환경을 좋게 해 주는 것이나 그렇게 마구잡이로 죽여 없애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닐까?

사람 때문에 죽어가는 모든 뭇목숨들에게 명복을… …()…

#내가농사좀지어봐서아는데 #내가해봐서아는데 #이명박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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