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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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잣대는 참으로 제 맘대로라,
준 건 무척 커 보이고
받은 건 엄청나게 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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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커피와 동양 차 – 이야기거리와 잔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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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에서 커피가 큰 인기입니다. 심지어 절에서도 차 보다는 커피를 내온다고 할 정도로…
커피는 과연 어떤 매력이 있어 이렇게 널리 퍼지게 되었을까요?

먼저 우리 나라에 커피가 널리 퍼지게 된 과정을 살펴보자면 대충 이렇습니다.(물론 제 생각입니다.)
숭늉을 마시던 버릇이 있던 차에 간편한 인스턴트커피가 널리 퍼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때는 커피를 즐긴다기 보다는 그냥 뭐라도 마실 거리를 찾는 것이고 단 설탕 맛을 즐기는 것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사실 인스턴트커피는 진짜 커피 쪽에서 보자면 -거의 모든 인스턴트 먹거리가 그렇듯-그냥 흉내일 뿐 커피의 제 값어치는 결코 미치지 못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외국 여행을 하면서 커피를 맛 보게 되고 또 가끔은 외국 커피를 들여오거나 찾아서 마시는 매니아들이 생기게 됩니다. 매니아들이나 외국에서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시던 사람에게는 인스턴트 커피가 성에 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좀 더 좋은, 제대로 된 혹은 진짜 커피 맛에 가까운 커피 맛을 찾게 되고 또 몇몇 사람들은 스스로 커피를 내려서 마시게 됩니다.
손수 커피를 내려서 마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꽤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그렇게 내려 마시다 보면 좀 더 좋은, 좀 더 색다른 맛을 찾아서 여러가지 기구를 사거나 손수 볶아 보게도 됩니다.(흔히 여느 취미생활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그냥 결과를 즐기는 데에만 만족하다가 점점 그 과정을 즐기게 되면서 엄청난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과정을 즐기다 보면, 어떻게 갈고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그 과정 차체가 앞서의 인스턴트를 찾던 때의 귀찮음이 더이상 귀찮음이 아니라 재미가 되게 됩니다.
처음부터(커피 맛을 제대로 모를 때부터) 내려서 마시라고 했으면 귀찮아서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을 테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는 커피를 다루는 그 과정이 크나큰 재미요 즐거움이고 맛과 향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잠깐 딴 얘기를 하자면, 얼마 전까지는 뻑하면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가끔은 좋은 말이다 싶으면 마구 갖다 붙이는 버릇 때문에 좀 엉뚱하게 쓰이는 일도 있었지만, 우리가 흔히 쓰던 말로 쉽게 갈음하자면 ‘이야기거리를 만드는 것’일 겁니다.
저는 이 ‘이야기 거리를 만드는 일’에 가장 좋은 보기가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다시피 그리스, 로마에는 수많은 신이 있습니다. 말이 좋아 ‘신’이지 거기 나오는 존재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도 있지만 그냥 ‘귀신’, ‘잡신’ 들도 많습니다.
어떤 이는 그리스 로마의 신을 두고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이라고 젊잖게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거기에 나오는 ‘신’ 가운데는 말이 ‘신’이지 때로는 사람보다 더 찌질하고 밴댕이 소갈딱지-뻑하면 복수!-를 하고 또 ‘짐승에 가까운’, ‘짐승스러운’ 귀신, 잡신들도 많습니다.
이 땅별 위에 다신교를 믿고 다신 사상(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다신 사상은 좋게 말해서 다신 사상이지 오히려 ‘잡신 사상’. 물론 이 때의 ‘잡-‘은 ‘온갖’, ‘허다한’이란 뜻이지 나쁜 뜻은 결코 아닙니다. ‘잡상인’도 딱히 특정한 품목이 아니라 잡다한 물건을 파는 상인’이란 뜻인데 이게 어찌하다 ‘잡스러운 사람’을 뜻하는 느낌이 되어 버렸는지… ㅡ.ㅡ)을 가진 겨레나 그런 문화를 가진 곳은 숱하게 많은 데 어찌 하여 그리스, 로마의 잡신 사상만은 높게 처져서 그냥 ‘잡신’, 여느 ‘귀신’이 ‘신’과 같은 높이로 올라가고 그래서 세계 곳곳으로 퍼지게 되었을까요?(사실 이렇게 널리 퍼진 잡신 사상이 그리스 로마 잡신 이야기 뿐만은 아니고, 딴 보기를 들자면 인도의 잡신 이야기도 꽤 널리 퍼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잡신 사상’ 혹은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사상이라고 하면 우리도 결코 빠지지 않습니다.
위로는 옥황상제로 부터 가까이로는 집 터를 지키주는 귀신이 있고 집(채)을 지켜주는 귀신, 또 부엌을 지키는 신, 아궁이(불)를 지키는 신이 있는가 하면 하다 못해 부지깽이, 빗자루에도 귀신이 들고 제가 어릴 때 삐져서 구석에 웅크리고 있으면 할아버지께서는 ‘구석 할마이-할머니-가 잡아 간다’고 장난을 치시곤 했습니다. 또 옛 우리 신화, 설화에서 큰 역할을 하는 마고할미가 있는가 하면, 태어날 때는 삼신할미의 점지를 받아야 했고, 죽으면 저승사자가 데려가고, 무당들은 큰 인물의 귀신을 받아들여 신통력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세계 여러 곳에, 숱하게 많은 잡신 사상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가 우뚝 솟은 것은 바로 전체를 꿰뚫어 틀거리가 제대로 만들어 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 거리는 단지 모양새로써 뿐만이 아니라 재미와 흥미를 드높였다고 봅니다.

커피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리스, 로마 잡신 얘기를 꺼낸 것은, 마치 그리스, 로마 잡신 이야기가 틀거리를 이루고 그것이 흥미와 재미를 드높였듯이, 커피를 즐기게 된 과정이 바로 문화의 틀거리를 이루고 그것이 커피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드높이게 된 것과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요즘은 커피를 즐긴다 하는 왠만한 사람도 커피의 맛과 향, 질에 대해서 한 두 마디 씩은 다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받아들이기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즐기는 자리로 옮겨왔다고 봐야겠지요.)

그렇다면 동양의 차나 우리나라의 차는 과연 커피 만큼 맛이 안 될까요? 왜 그런 재미가 없을까요?
먼저 동양의 차는 상당히 정적이라고 볼 수 있고 이 정적인 면이 요즘 현대 생활과 거리감이 생기게 되는 까닭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저는 서양의 커피는 서양화 같고, 동양의 차는 동양화(수묵화?)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딱히 서양화와 동양화라고 값매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견주자면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커피는 좀 더 강렬한 색채와 자잘한 표현과 빈틈없는 색칠로 재미를 주는가 하면, 차는 가끔은 그린 듯 안 그린 듯한 채색과 군데군데 비어있는 여백, 하지만 깊이 보다보면 우러나오는 재미, 그리고 생각의 틈[여지]이 있습니다.

서양 커피를 두고는 이래서 좋다, 이래서 안 좋다 하는 연구들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동양 차는 인기가 높지 않은 만큼 그런 것이 덜 알려지고 그러다 보니 연구하는 이도 적고 그러니 더욱 숨겨진 부분이 많은 듯합니다. 동양 차 역시도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그런 약리 작용이 큽니다. 동양 차 역시도 어디서 난 차인지, 어떻게 다룬[법제] 것인지, 언제 딴 것인지, 어떤 차 갈래인지에 따라 맛이 다르고 몸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고 약리 작용 또한 다릅니다.
오히려 그냥 마실거리로서가 아니라 약이라는 점에서는 커피보다도 그 효용이 넓고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안타깝게도 알려진 바가 적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나 서양 커피보다 뛰어난 동양 차가 왜 서양 커피에 밀릴까요?
그것이 바로 이야기거리를 못 만들고 재미거리를 뒷받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차-흔히 보는 ‘현미녹차’ 같은 것은 ‘대용 차’라고 하지 ‘차’에 끼이지 못합니다. 마치 제대로 된 커피를 찾는 이들에게 ‘인스턴트 커피’는 ‘커피’가 아니듯이…-를 처음 접하는 이들은 흔히 (진짜배기)’차’라고 하면 ‘다도’를 떠올립니다.
뭔가 자세를 잡고 앉아서 어떤 절차와 예절을 따르고 차를 내리는 특별한 비법이나 방식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흔히 말하는 ‘다도’라고 하는 것은 차를 즐기는 수많은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 그것이 결코 정석도, 표준도 아닙니다.
커피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쉽게 차를 내려 마실 수 있지만,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차를 아는 사람과 함께 마시면 나름의 맛과 재를 느낄 수 있는 것 뿐입니다.

커피가 사실 ‘커피’라고 하기에도 뭣한, 좀 심하게 말하면 가짜 커피 ‘인스턴트 커피’, 흔히 말하는 ‘다방 커피’, ‘봉지 커피’에서 시작했듯, 차 역시도 흉내만 낸 차, 가짜 차 같은 것도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어떻던지 간에 널리, 많이 즐기다 보면 그 가운데서 제 맛, 제 값어치를 찾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대중화된 차와 좀 더 나은 차 문화가 서로 끌며 밀며 상승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 봅니다.
여튼 온갖가지로 즐기다 보면 좀더 나은, 좀더 제대로인 것을 찾게 될테고 그렇게 마당을 넓혀 가는 것이 이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차를 하시는 분들은 나름 고집이 있고 자존심이 있는 분들이라 이런 것을 싫어하는 편입니다. 헌데 모르긴 몰라도 제대로 된 커피를 하시는 분들이 보기에는 아마도 인스턴트 커피가 먼저 사람을 입맛을 길들이고 퍼져 나가는 것도 무척 못마땅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는 커피 역시도 그 세력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동양 차 역시도 제대로 된 동양 차의 맛을 지키고 개발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참말로 ‘어쩔 수 없이’입니다. 이는 결코 올바르다 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 제대로 된 고갱이가 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곁다리, 짜가들도 많을 수 밖에 없더라는 현실론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산이 높기 위해서는 그 봉우리만 우뚝 설 수는 없고 많은 곁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수많은 자락에 하많은 흙들을 딛어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 바탕 위에서 차의 효용과 효능이 더 많이, 더 깊이 연구된다면 단지 차가 널리 퍼지는 것 뿐만 아니라 마니아를 만들어 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확실히 서양 커피는 기를 치솟게 하고 정(情)을 치솟게 하는 현대 생활의 리듬에 맞는 면이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너무 들뜨게 되는 생활 리듬을 차분하게 해 주는 차도 큰 매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서양 커피는 동양화 같고 동양 차는 동양 수묵화 같습니다.
서양 커피는 기가 솟구치는 어린이 같고 동양 차는 원숙한 어른 같습니다.

기를 치받아 올리고자 할 때는 커피를 마시고, 기를 가라앉히고자 할 때는 차를 마십니다.(명상은 단지 결과를 통해서 만이 아니라 가부좌를 틀고 손을 모으고 앉는 그 과정을 통해서 이미 결과를 반쯤은 얻는 것입니다.

  • 어차피 저는 커피 전문가도 아니고 차 고수도 아닙니다. 논리야 저 나름이지만 논리를 폄에 있어 비약이 있거나, 근거가 약하거나, 잘 이해가 안 되는 데가 있다면 귀띔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우리는 왜 스스로 살아가지 못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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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서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조선 뒤로 우리 겨레는, 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눈여겨 보는 말글에서조차 우리 스스로 홀로 해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러면 당장 ‘훈민정음’을 들이밀며 대들 분이 계시겠는데, 나는 조선 뒤로 우리 역사에서 가장 생뚱맞은 일로 첫째가 세종임금이요, 둘째가 노무현 님이 나라마름이 된 일이라고 본다.
게다가, 훈민정음이야 그 빼어남이 비길 데가 없어 지금껏 살아남기는 했으나 기 훈민정음이 널리 쓰인 것은 오히려 나라를 잃은 일이 큰 디딤돌이 되었다고 본다.(나라가 어지러워지고 또 나라를 뺏기면서 그 동안의 권위가 흔들리고 또 나라 잃은 설움이 오히려 우리 것을 돌아보게 하는 까닭이 되었다는 것이다.) 훈민정음이 조선 때 겪은 일로 미루어 보자면, 조선이 지금껏 이어져 왔다면 지금 쯤은 훈민정음 사용 금지령이 내렸거나 기껏 무지랭이들이나 쓰고 잇지 않을까?  조선 때처럼…(어차피 지금도 조선시대 2부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새로운 말이 필요하면 마치 조선 때 새 왕이 지나에게 윤허를 받듯 지나 한자말을 가져오더니 가까운 때에 들어서는 일본 한자를 가져다 쓰다가 요즘은 서양말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것이 본디 우리 것이었는 양 서양말로 말을 지어가며 말글살이를 하고 있는 지경이다.(아주 옛날에도 한자로 말글을 지은 적이 있지만 그 때는 마땅히 우리 글자가 없어서라고 핑계라도 댈 수 있었지만,…)
모든 문화가 그렇지만 말글도 버릇인지라 쓰다보면 몸에 익고 또 스스로 더욱 나아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뛰어난 말글을 가지고도 애써 발전시키기는 커녕 널리 쓰지조차 않으면서 못 났네 불편하네 불평부터 늘어 놓으니…
그러면서 좀 낯선 우리말을 쓰거나 우리말 뿌리에서 뽑아 새 우리말이라도 만들라 치면, 온갖 핀잔과 공격을 해 댑니다.(요즘도 최현배 님이 ‘날틀’, ‘배꽃여자배움터’라고 내놓은 것을 두고 욕을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최현배 님은 내놓기만 했을 뿐 그걸 강제할 힘도 없거니와, 큰나라말 떠받들고 우리말 죽이는 국립국어원이 부리는 억지가 훨씬 큰 영향을 미침에도…)

어차피 뭇사람 피를 빨아먹고 사는 이들은 세상이 고르고 편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저 죽을 짓을 왜 하려 하겠는가!) 그렇다면 세상의 바탕을 이루는 사람들이 스스로 쉽고 고른 것을 찾아 써야 한다. 쉽고 편한 말글을 쓰고 쉬운 말을 만들고 어려운 것을 쉽게 고쳐 써야 한다.
갓 말글을 배운 아이나 나이 많은 어르신이나, 많이 배운 이나 배움이 짧은 이나, 심지어 새로 우리 말글을 배우는 이조차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글을 쓰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첫걸음이요 소통이다.

쉬운 말글이 민주주의입니다!

‘한반도 둘레길’을 잇는다는 일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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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사대강 아니냐는 비판에, 특히나 못 미더운 도둑정부가 발표를 더욱 못 믿게 만들었던 ‘한반도 둘레길'(이것도 정부 발표 때는 ‘코리아 둘레길’이라고 발표했었다. ‘코리아 트레일’이 안 된 게 다행… ㅡ.ㅡ)
이렇게 큰 일을 한 마디로 얘기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지만, 그 ‘한반도 둘레길’ 가운데 아주 큰 축인 동해 쪽 ‘해파랑길’ 구간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써 아마도 해파랑길이 가진 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걷나들이길’이란 것이, 이어놓기만 한다고 ‘걷나들이길’인가! 그건 길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몰라서 하는 얘기이거나 보기 싫은 것일 게다. 물론 걷나들이길을 팔어먹(!-이 땅에 그런 걷나들이길이 한둘인가!)으려면 이야기(이걸 잘난 척 ‘스토리텔링’이라 하더라…)가 담겨 있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길이 지나는 곳 문화를 어떻게 보여주는가(아마도 가장 중요!?!)와 곁들이 시설도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가장 쉽고 따지기 쉽게(좀 속물스럽기도 하지만) 얘기해 보자.
우리나라를 걸어 여행하려면 두 사람 기준으로 하루 두 끼만 먹는 쳐도(배 고파! ㅡ.ㅡ) 아무리 적게 쳐도 2만 4천원 정도에, 허름한 모텔에 묵어도 4-5만원 해서 적어도 하루 7만원, 한 달로 치면 210만원(이것 조차도 걷고 먹고 자고만 했을 때 얘기다. 여러 가지를 감안하면 아마도 두 사람 기준 300만원 정도는 들지 않을까? 이걸 또 한 사람으로 셈하면 밥값은 반이 되겠지만 묵는 삯은 별로 줄지 않는다.) 흔히 우스개 삼아 하는 말로, 이 돈이면 동남아 가서 귀족처럼 즐기다 오는 게 낫다.
그나마 제주 올레길이 성공했다고 매김받는 것은 다만 제주 풍경이 아름다워서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이 이름 떨칠 수 있는 것도 그냥 이미 이름 나 있기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이 글에서는 ‘한반도 둘레길’이 정부가 나서서 한 일이 아니라 민간이 나서서 한 일이라는 데에 점수를 주고 싶은 모양이나, 내가 가 본 어느 걷나들이길도 그 곳에서 뜻 있는 사람들이 손수 걸어보고 만들었다는데, 갓길도 없는 찻길이 길에 들어있는 곳도 있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여행에서도 ‘안전’이 으뜸 아닌가? 그것도 머리는 돌이요 양심은 사막인 공무원이 만든 길도 아니고 전문 여행자가 꾸몄다는 길이 그 모양이라니!(그 분들은 갓길도 없는, 포장된 길을 몇 킬로미터 씩이나 걷고 싶을까? 지금은 지자체가 나서 길 보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차라리 여는 때가 좀 늦어지더라도 때를 기다렸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껏 사고 소식이 안 들려 다행이지만 만약 사고가 났다면 누가 책임지려 했을까? 한 사람이라도 책임지려 하는 이나 있었을까?)

이 죄담회에서는, ‘앞으로 이야기[스토리]가 있는 길로 잇고 싶다’고 한 모양이지만, 그 때의 그 ‘이야기’라는 것이 그리 쉽게, 뚝딱 만들어 지는 것인가? 역사를 통해서, 삶을 통해서 생겨나야 하는 것 아닌가?(그렇지 못하다 보니 어거지 이야기를 지어낸다.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또 다른 보기로, ‘부산에서 서울을 잇는 옛길을 되살리고 싶다’는 분도 있다. 물론 길을 잇는 것은 어려울 것이 없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야 할 ‘이야기’가, 큰 역사 빼고는 거진 없어졌다. 옛스런 길이 다 없어져 찻길이 되어 버렸고 옛 마을이 다 없어져 버렸다.(행정단위로 ‘마을’은 있을지 모르지만 삶의 공동체로서의 ‘마을’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고 본다.) 안전이나 불편이나 돈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그냥 ‘옛 사람들도 이 길을 이렇게 걸었겠거니…’하는 위안 만으로 걸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걷는 길이 참말로 옛 사람들이 걷던 그 길 느낌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값어치가 적은 유적, 문화재는 제대로 관리도 않거나 없애고서 ‘무슨무슨 터’하는 푯말 하나로 해치우는 이 나라에서…)

게다가 정부가 발표할 때 유달리 그걸 강조했었는지, 언론마다 ‘한반도 둘레길'(그 때는 정부 발표 대로 ‘코리아 둘레길’이라고 했었다.)이 ‘산티아고 가는 길’보다 무려 3배나 길다는 걸 강조했었다.
무려 5천년 역사를 가졌다고 하는 우리 겨레가, 뻑하면 하는 소리가 고작 ‘숫자놀음’이다. ‘동양에서 가장 큰’, ‘누구보다 몇 배’, ‘세계 최단’… 얼찬 문화를 가지지 못한 이들이 이런 숫자 가지고 헛품을 잡는다.
모든 문화 상품은 역사를 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숫자는 쉽게 흉내 낼 수 있고 따라 잡을 수 있지만, 역사라는 건 함부로 흉내내기도 어렵고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아우디가 집채를 짓듯이 수십, 수백년을 두고 만드는 문화 상품 만이 제대로 값매김 받을 수 있고 빛이 날 것이다.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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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공구리들에게 ‘생태’란 무슨 뜻일까?

‘꼴 보기 싫은 놈들 때문에 미처 시멘트공구리를 다 못 친’이란 뜻?

온갖 살것들 다 쫓아내고 죽이고 손 대 놓고는 무슨 놈의 ‘생태’???

우리들 삶은 오롯이 우리들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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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 ‘구글사진’이란 도울매[서비스]가 있는데, 거기에 요즘 사람 얼굴을 찾아 모아 보여주는 꼭지가 생겼습니다.(‘구글사진’은 아주 약간 압축하는 대신에 용량을 한없이 주기 때문에 ‘구글시간줄’과 엮어 쓰면 추억을 정리하기에 좋습니다. 물론 개인정보가 밑자료로 쓰이는 걸 싫어하시는 분은 안 쓰시는 게 좋겠지만, 그런 분은 아마도 얼숲이나 인터넷도 안 쓰고 계시겠지요? ^^)
그런데 그 힘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 때 상황을 떠올리지 않으면 저조차도 누가 누구인지 모를 사진에서조차 누구 얼굴인지를 찾아냅니다.(물론 완벽하지는 않아 가끔 느낌이 비슷하면 엉뚱한 사람으로 모으기도 합니다만,…)
생각하면 참 재밌기도 하지만, 다시 한편으로는 참으로 무섭지요.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 또는 서양 사람을 보면서 누가 누군지 곧잘 헛갈린다는 걸 생각해 보면 참으로 엄청난 거지요.
저는 그 사람을 알기에 그 사람 앞 모습이나 옆 모습 가끔은 몸에 뭘 걸치거나 얼굴을 꾸미거나 해도 알아볼 수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은 이런 걸 다 같은 사람으로 알아챈다는 것이 쉬운 일 만은 아닙니다.(가끔 아주 눈썰미가 뛰어나다면 모를까…)

거기다 덧붙여서 그 사진의 뒷 배경을 보고 거기가 어떤 곳인지 까지도 알아냅니다.
내가 주로 어떤 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는지, 그에 따라 내가 어떤 곳을 좋아하는지 까지도 알아낼 수 있는 거지요…
이 나라는 왠 변태놈들이 국민들 성생활까지 들여보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만, 그런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맘만 먹으면 우리 생활을 왠만큼 들여볼 수 있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물론 이런 얘기를 하면 구글이 무슨 죽일 놈인 것처럼 얘기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예, 맞습니다. 구글, 참으로 무서운 놈들이지요.(사실 그에 비하면 개인정보 빼내 팔아먹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좀도둑 수준일 겁니다.)
(김상중 님 말투로)그런데, 말입니다. 참말로 그게 무섭다면 인터넷은 아예 안 쓰시고 있어야 맞습니다.
우리가 쓰는 ‘인터넷’이란 게 뭡니까?
거진은 여러가지 도울매[서비스]를 공짜로 쓰면서 나에게서 정보가 될 만한 거리를 가져가거나 온갖 광고를 봐 주는 댓가로 쓰고 있는 거지요.
적어도 문명 혜택을 누리고 있다면, 우리 삶은 오롯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뜻으로 여러분 삶을 살고 있습니까?
참말로 그렇다고 굳게 믿습니까? ^^;;;

제 삶은 언제 살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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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 땅에 골프가 처음 들어왔을 때 그걸 본 양반이 ‘힘든 건 아랫 것들이니 시키지…’했다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이 사는 걸 부럽게 지켜보고, 다른 사람이 먹는 걸 침 흘리며 보고, 다른 집 애를 보며 귀여워 하고,…

제 삶은 언제 살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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