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커피와 동양 차 – 이야기거리와 잔재미

댓글 남기기

요즘 대한민국에서 커피가 큰 인기입니다. 심지어 절에서도 차 보다는 커피를 내온다고 할 정도로…
커피는 과연 어떤 매력이 있어 이렇게 널리 퍼지게 되었을까요?

먼저 우리 나라에 커피가 널리 퍼지게 된 과정을 살펴보자면 대충 이렇습니다.(물론 제 생각입니다.)
숭늉을 마시던 버릇이 있던 차에 간편한 인스턴트커피가 널리 퍼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때는 커피를 즐긴다기 보다는 그냥 뭐라도 마실 거리를 찾는 것이고 단 설탕 맛을 즐기는 것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사실 인스턴트커피는 진짜 커피 쪽에서 보자면 -거의 모든 인스턴트 먹거리가 그렇듯-그냥 흉내일 뿐 커피의 제 값어치는 결코 미치지 못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외국 여행을 하면서 커피를 맛 보게 되고 또 가끔은 외국 커피를 들여오거나 찾아서 마시는 매니아들이 생기게 됩니다. 매니아들이나 외국에서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시던 사람에게는 인스턴트 커피가 성에 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좀 더 좋은, 제대로 된 혹은 진짜 커피 맛에 가까운 커피 맛을 찾게 되고 또 몇몇 사람들은 스스로 커피를 내려서 마시게 됩니다.
손수 커피를 내려서 마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꽤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그렇게 내려 마시다 보면 좀 더 좋은, 좀 더 색다른 맛을 찾아서 여러가지 기구를 사거나 손수 볶아 보게도 됩니다.(흔히 여느 취미생활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그냥 결과를 즐기는 데에만 만족하다가 점점 그 과정을 즐기게 되면서 엄청난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과정을 즐기다 보면, 어떻게 갈고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그 과정 차체가 앞서의 인스턴트를 찾던 때의 귀찮음이 더이상 귀찮음이 아니라 재미가 되게 됩니다.
처음부터(커피 맛을 제대로 모를 때부터) 내려서 마시라고 했으면 귀찮아서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을 테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는 커피를 다루는 그 과정이 크나큰 재미요 즐거움이고 맛과 향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잠깐 딴 얘기를 하자면, 얼마 전까지는 뻑하면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가끔은 좋은 말이다 싶으면 마구 갖다 붙이는 버릇 때문에 좀 엉뚱하게 쓰이는 일도 있었지만, 우리가 흔히 쓰던 말로 쉽게 갈음하자면 ‘이야기거리를 만드는 것’일 겁니다.
저는 이 ‘이야기 거리를 만드는 일’에 가장 좋은 보기가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다시피 그리스, 로마에는 수많은 신이 있습니다. 말이 좋아 ‘신’이지 거기 나오는 존재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도 있지만 그냥 ‘귀신’, ‘잡신’ 들도 많습니다.
어떤 이는 그리스 로마의 신을 두고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이라고 젊잖게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거기에 나오는 ‘신’ 가운데는 말이 ‘신’이지 때로는 사람보다 더 찌질하고 밴댕이 소갈딱지-뻑하면 복수!-를 하고 또 ‘짐승에 가까운’, ‘짐승스러운’ 귀신, 잡신들도 많습니다.
이 땅별 위에 다신교를 믿고 다신 사상(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다신 사상은 좋게 말해서 다신 사상이지 오히려 ‘잡신 사상’. 물론 이 때의 ‘잡-‘은 ‘온갖’, ‘허다한’이란 뜻이지 나쁜 뜻은 결코 아닙니다. ‘잡상인’도 딱히 특정한 품목이 아니라 잡다한 물건을 파는 상인’이란 뜻인데 이게 어찌하다 ‘잡스러운 사람’을 뜻하는 느낌이 되어 버렸는지… ㅡ.ㅡ)을 가진 겨레나 그런 문화를 가진 곳은 숱하게 많은 데 어찌 하여 그리스, 로마의 잡신 사상만은 높게 처져서 그냥 ‘잡신’, 여느 ‘귀신’이 ‘신’과 같은 높이로 올라가고 그래서 세계 곳곳으로 퍼지게 되었을까요?(사실 이렇게 널리 퍼진 잡신 사상이 그리스 로마 잡신 이야기 뿐만은 아니고, 딴 보기를 들자면 인도의 잡신 이야기도 꽤 널리 퍼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잡신 사상’ 혹은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사상이라고 하면 우리도 결코 빠지지 않습니다.
위로는 옥황상제로 부터 가까이로는 집 터를 지키주는 귀신이 있고 집(채)을 지켜주는 귀신, 또 부엌을 지키는 신, 아궁이(불)를 지키는 신이 있는가 하면 하다 못해 부지깽이, 빗자루에도 귀신이 들고 제가 어릴 때 삐져서 구석에 웅크리고 있으면 할아버지께서는 ‘구석 할마이-할머니-가 잡아 간다’고 장난을 치시곤 했습니다. 또 옛 우리 신화, 설화에서 큰 역할을 하는 마고할미가 있는가 하면, 태어날 때는 삼신할미의 점지를 받아야 했고, 죽으면 저승사자가 데려가고, 무당들은 큰 인물의 귀신을 받아들여 신통력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세계 여러 곳에, 숱하게 많은 잡신 사상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가 우뚝 솟은 것은 바로 전체를 꿰뚫어 틀거리가 제대로 만들어 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 거리는 단지 모양새로써 뿐만이 아니라 재미와 흥미를 드높였다고 봅니다.

커피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리스, 로마 잡신 얘기를 꺼낸 것은, 마치 그리스, 로마 잡신 이야기가 틀거리를 이루고 그것이 흥미와 재미를 드높였듯이, 커피를 즐기게 된 과정이 바로 문화의 틀거리를 이루고 그것이 커피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드높이게 된 것과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요즘은 커피를 즐긴다 하는 왠만한 사람도 커피의 맛과 향, 질에 대해서 한 두 마디 씩은 다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받아들이기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즐기는 자리로 옮겨왔다고 봐야겠지요.)

그렇다면 동양의 차나 우리나라의 차는 과연 커피 만큼 맛이 안 될까요? 왜 그런 재미가 없을까요?
먼저 동양의 차는 상당히 정적이라고 볼 수 있고 이 정적인 면이 요즘 현대 생활과 거리감이 생기게 되는 까닭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저는 서양의 커피는 서양화 같고, 동양의 차는 동양화(수묵화?)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딱히 서양화와 동양화라고 값매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견주자면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커피는 좀 더 강렬한 색채와 자잘한 표현과 빈틈없는 색칠로 재미를 주는가 하면, 차는 가끔은 그린 듯 안 그린 듯한 채색과 군데군데 비어있는 여백, 하지만 깊이 보다보면 우러나오는 재미, 그리고 생각의 틈[여지]이 있습니다.

서양 커피를 두고는 이래서 좋다, 이래서 안 좋다 하는 연구들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동양 차는 인기가 높지 않은 만큼 그런 것이 덜 알려지고 그러다 보니 연구하는 이도 적고 그러니 더욱 숨겨진 부분이 많은 듯합니다. 동양 차 역시도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그런 약리 작용이 큽니다. 동양 차 역시도 어디서 난 차인지, 어떻게 다룬[법제] 것인지, 언제 딴 것인지, 어떤 차 갈래인지에 따라 맛이 다르고 몸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고 약리 작용 또한 다릅니다.
오히려 그냥 마실거리로서가 아니라 약이라는 점에서는 커피보다도 그 효용이 넓고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안타깝게도 알려진 바가 적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나 서양 커피보다 뛰어난 동양 차가 왜 서양 커피에 밀릴까요?
그것이 바로 이야기거리를 못 만들고 재미거리를 뒷받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차-흔히 보는 ‘현미녹차’ 같은 것은 ‘대용 차’라고 하지 ‘차’에 끼이지 못합니다. 마치 제대로 된 커피를 찾는 이들에게 ‘인스턴트 커피’는 ‘커피’가 아니듯이…-를 처음 접하는 이들은 흔히 (진짜배기)’차’라고 하면 ‘다도’를 떠올립니다.
뭔가 자세를 잡고 앉아서 어떤 절차와 예절을 따르고 차를 내리는 특별한 비법이나 방식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흔히 말하는 ‘다도’라고 하는 것은 차를 즐기는 수많은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 그것이 결코 정석도, 표준도 아닙니다.
커피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쉽게 차를 내려 마실 수 있지만,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차를 아는 사람과 함께 마시면 나름의 맛과 재를 느낄 수 있는 것 뿐입니다.

커피가 사실 ‘커피’라고 하기에도 뭣한, 좀 심하게 말하면 가짜 커피 ‘인스턴트 커피’, 흔히 말하는 ‘다방 커피’, ‘봉지 커피’에서 시작했듯, 차 역시도 흉내만 낸 차, 가짜 차 같은 것도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어떻던지 간에 널리, 많이 즐기다 보면 그 가운데서 제 맛, 제 값어치를 찾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대중화된 차와 좀 더 나은 차 문화가 서로 끌며 밀며 상승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 봅니다.
여튼 온갖가지로 즐기다 보면 좀더 나은, 좀더 제대로인 것을 찾게 될테고 그렇게 마당을 넓혀 가는 것이 이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차를 하시는 분들은 나름 고집이 있고 자존심이 있는 분들이라 이런 것을 싫어하는 편입니다. 헌데 모르긴 몰라도 제대로 된 커피를 하시는 분들이 보기에는 아마도 인스턴트 커피가 먼저 사람을 입맛을 길들이고 퍼져 나가는 것도 무척 못마땅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는 커피 역시도 그 세력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동양 차 역시도 제대로 된 동양 차의 맛을 지키고 개발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참말로 ‘어쩔 수 없이’입니다. 이는 결코 올바르다 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 제대로 된 고갱이가 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곁다리, 짜가들도 많을 수 밖에 없더라는 현실론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산이 높기 위해서는 그 봉우리만 우뚝 설 수는 없고 많은 곁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수많은 자락에 하많은 흙들을 딛어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 바탕 위에서 차의 효용과 효능이 더 많이, 더 깊이 연구된다면 단지 차가 널리 퍼지는 것 뿐만 아니라 마니아를 만들어 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확실히 서양 커피는 기를 치솟게 하고 정(情)을 치솟게 하는 현대 생활의 리듬에 맞는 면이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너무 들뜨게 되는 생활 리듬을 차분하게 해 주는 차도 큰 매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서양 커피는 동양화 같고 동양 차는 동양 수묵화 같습니다.
서양 커피는 기가 솟구치는 어린이 같고 동양 차는 원숙한 어른 같습니다.

기를 치받아 올리고자 할 때는 커피를 마시고, 기를 가라앉히고자 할 때는 차를 마십니다.(명상은 단지 결과를 통해서 만이 아니라 가부좌를 틀고 손을 모으고 앉는 그 과정을 통해서 이미 결과를 반쯤은 얻는 것입니다.

  • 어차피 저는 커피 전문가도 아니고 차 고수도 아닙니다. 논리야 저 나름이지만 논리를 폄에 있어 비약이 있거나, 근거가 약하거나, 잘 이해가 안 되는 데가 있다면 귀띔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광고

한국 사람에게 있어 웃돈문화

댓글 남기기

한국 사람들이 딴 나라에 가서 가끔 졸부 짓을 하는 것이 말밥에 오르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이를 두고 흔히 ‘거드름'[허세] 때문으로 얘기하곤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이 밖에도 문화와 그에 뿌리를 둔 인식 때문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그럼에도 ‘허세’가 큰 까닭일 것이라는 데에는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좀 좋은 쪽으로 얘기해서, 우리는 손님을 맞거나 하면 좀 거하게, 결코 흠 잡히지 않게 대접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좋은 뜻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가끔 지나쳐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돈을 주고 받을 때도 잔돈까지 셈하는 것을 좀 쪼잔하게 봅니다.
그래서 우수리-이도 참 많은 우리말이 있네요. 비슷하게 거스름돈이라고도 하고, 고장에 따라서 꼭다리, 끝다리, 주리, 나투리, 우사리 같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를 치지 않거나 떼고 주는 일도 흔합니다.
물론 거꾸로 우수리를 치지 않는 대신 물건으로 덤을 주는 일도 있고요…
이것은 서양에서 웃돈[팁]과 비슷한 것인데도 서양에서 흔히 있는 ‘웃돈’은 우리ㅔ게 이와는 다르게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보기를 들어서, 우리가 어떤 대가-예. 사이시읏은 안 썼습니다.^^-로 잔돈만 주면 참 쪼잔해 보입니다.
서양 웃돈문화에서는 일부러, 마치 우리가 우수리를 그냥 줘 버리듯 주는 것이 서양 웃돈문화라 보면 되는 것이고, 실제로 이런 셈으로 일부러 잔돈을 남겨 셈해 주기도 합니다.
여기서 셈하고 남은 거스름돈을 그냥 탁자에 올려놓으면 되는 것인데, 이것이 거든 사람에게 따로 간다고 생각하니 그 돈이 쪼잔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차마 잔돈을 주지 못하고 종이돈[지폐], 그것도 가장 낮은 낱치[단위]보다는 높은 종이돈을 내놓게 됩니다.

비슷한 보기가 또 있습니다.
바로 설에 어린이들에게 주는 ‘세배돈’-예. 여기서도 사이시읏은 뺐습니다.^^-인데, 흔히 듣기로는 옛날에는 세배를 하고는 세배상을 받았다는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 오래지 않은 때까지는 세배돈이 그야말로 푼돈 수준이었고 그저 좀 깨끗한 돈이면 되었는데, 이제는 돈머리수[액수]도 꽤 높아졌거니와 굳이 새 돈을 찾아서 난리가 나곤 합니다.돈을 주는 것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거니와, 푼돈을 주어 그것을 모아 용돈으로 쓰게 하면 교육에도 좋을 텐데 말입니다.

이처럼 모든 좋은 것은 쓰기에 따라 않 좋은 일이 되기도 합니다.
좋은 것은 지키되, 세상이 변한 만큼 새로운 흐름도 익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에게 아예 없던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길이름주소와 우리 문화, 우리 얼

댓글 3개

책 가운데 “빵은 길을 만들고 밥은 마을을 만든다”는 책이 있습니다.
서양은 길을 바탕으로 살아왔고 동양은 마을을 이루어 그걸 바탕으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하다 못해, 좀 좋지 않은 짓이기는 하지만 같은 터에 자리 잡은,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와 좀 못 사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가 길을 막고 서로 등지며 다른 길을 쓰며 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이는, 서양은 선을 바탕으로 생각하고(선 중심 사고), 동양은 거죽[면]을 바탕으로 생각한다(면 중심 사고)고도 했습니다.

여튼, 제가 서양사람들 생각이나 문화를 깊이있게 알지 못하기에 서양과 견줘서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요즘 새로 쓰고 있는 길이름주소가 우리에게는 어렵고 잘 맞지 않다는 것은 몸으로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나마 길이 잘 닦여있는 도시에 가서 그 길만 찾으면 그 다음에는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집을 찾기는 어렵지 않지만, 특히 시골 같은 데서는 그 길을 찾아가는 것부터가 무척 힘이 듭니다.(도시라도 길이 반듯하지 않는 곳은 거진 비슷합니다.)
우리는 마을 이름을 부르고 터 이름을 부르기에 ‘무슨 길’하면 그게 어딨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차라리 좀 헤매더라도 옛날처럼 ‘무슨 마을’하면 넓은 이름부터 좁은 이름으로 찾아가면 그 마을, 그 터 까지는 물어서 쉬이 찾아갈 수 있습니다.(요즘처럼 길라잡이기기를 쓰면 어차피 이런 실랑이하고는 얽히지도 않습니다만,…)
물론 옛날같은 마을이름 주소 틀에서는 그 마을, 그 터까지 가서 그 번지를 찾기가 좀 어렵습니다만, 이것은 오래 되면서 번지 틀이 많이 어지러워진 탓으로 이런 문제는 길이름 주소에서도 나중에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문제라 봅니다.

이렇듯, 서양 투를 빌려온 듯한 길이름 주소는 우리 생각틀, 우리 문화, 우리 얼과는 좀 어울리지 않으며, 참말로 우리 얼을 지키면서 요즘에도 맞게 고치자면 우리 만의 주소 틀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왜 우리는 꼭 우리 것을 버려야만 ‘현대에 맞’거나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 얼숲에 보낸 글 보기

이른 바 ‘한우’와 ‘누렁소’, 그리고 ‘칡소’

댓글 남기기

우리가 흔히 우리 겨레와 함께 살아온 전통소라는 뜻으로 ‘한우’라 하면 누런 소를 일컫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옛날에는 ‘누렁소’라 했습니다. 딱히 이 갈래를 언제부터 ‘한우’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요즘은 좀 장사속으로 무엇이건 앞에 ‘한-‘을 붙여서 친근한 척, 좋은 것인 척 하지요.(이른바 ‘애국심 팔이[마케팅]’라 합니다만,…)
여튼 우리가 흔히 일소로 키우던 누런 소는 ‘누렁소’라 하였는데, 옛날에 본 글에 따르면 아주 옛날에는 얼룩덜룩한 ‘칡소’도 아주 많았고 이것도 우리 전통소라고 했던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듣기로는 이 ‘칡소’는 일제 때 일본 때문에 맥이 끊어질 뻔 하다가 요즘 들어 다시 좀 퍼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글을 쓰려고 찾아보다 보니, 우리 전통 소 갈래를 일컫는 ‘한우’에는 ‘누렁소’, ‘칡소’와 제주에 ‘꺼멍소’가 있다고 합니다.(그러고 보니 제주에는 ‘꺼멍도야지’도 이름나 있지요.)
따라서 ‘누렁소’만을 일컬어 ‘한우’라고 하면 다른 갈래 소들은 무척 섭섭하겠지요…^^

칡소옛날에 우리가 부르던 어린이노래[동요]에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하는 노래가 있었는데, 그 때에 젖소인 홀스타인 갈래가 들어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얼룩소’가 바로 ‘칡소’였다는 말이 있습니다.(고리를 걸어둘까 했는데, 그림에는 모두 ‘홀스타인 젖소’가 그려져 있습니다. ㅡ.ㅡ;)
그런데 또 있습니다.
‘정지용’ 시인이 쓴 “향수”라는 시에 보면,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란 글마디가 있는데 그 ‘얼룩배기 황소’가 바로 ‘칡황소’라는 것입니다.(예, 노래도 있습니다.^^)
이 ‘칡소’는 그 무늬가 호랑이 무늬를 닮았다 해서 ‘범소’, ‘호랑무늬소'[虎斑牛]라고도 불렀다고 하네요.
아울러 수누렁소를 일컫는 ‘황소’는 한자하고는 얽혀있지 않고요, 아마도 암소보다 덩치가 더 크기에 ‘크다’는 뜻으로 ‘한소’라고 하던 말이 바뀐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용비어천가’에 ‘한쇼’라고 나온다고 합니다.)

따라서, 누렁소는 ‘한우’ 한 갈래이기는 하지만 결코 ‘한우’를 대표하지는 않습니다.(다른 갈래 소들이 섭섭해 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것들도 되살리고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도 조금 더 가졌으면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앞서 묵은 나그네집에서는 우리 옛날 개 갈래인 ‘삽살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 얼숲에 보낸 글 보기

* 덧붙임. 이 글을 쓰려고 찾아보다가 옛날에는 좀 더 여러 갈래 소가 있었다는 글을 알게 되어 고리 겁니다.  한우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조선우마의방

이름 때문에 생긴 일… 그리고 우리 문화

댓글 남기기

[조금 “19금” 이야기. 딴 데서는 이렇게만 해도 다 용서 되더라… 심지어 온 가족이 보는 바보상자에서도…]

<이름 때문에 생긴 일…>

제 사촌 가운데 이름이 ‘성기’인 이가 있습니다.(여러분도 딱 들으니 뭔가가 떠오르지요?)
예, 그것 때문에 탈이 생긴 얘기입니다.
어릴 때도 그것 때문에 놀림을 좀 받았다는데,…
사실 어릴 때는 어떻게든 갖다 붙여서 놀립니다.(심지어 어떤 이는 ‘주’씨 성에 다만 두세번째 이름자가 지읒으로 시작한다는 것 때문에 별로 비슷하지도 않은 ‘주전자’란 별명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친하자고 혹은 놀리자고 어떻게든 갖다 붙이는 데에는 뺄 재간이 없는 겁니다.)
하지만 애가 크고 보니, 아버지 이름이 ‘거시기’라고 좀 놀림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름을 잘도 바꿔 주겠다, 그 참에 바꿨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경상도에서는 제 사촌 이름은 높았다 낮아지는 소리새이고 남자 거시기는 낮다가 살짝 높아지는 소리새로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이게 경상도 소리 가락이 약해지다 보니 두드러져 들리는 것입니다.
다른 보기로, 우리는 요즘 종종,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구’ 다음에 ‘열’이라고 합니다.
‘십’이란 소리새가 여자 거시기 이르는 말하고 비슷하다는 거지요.
소리가락도 살짝 다를 뿐만 아니라 경상도 사람이 아니어도 ‘십’과 ‘씹’은 버젓이 다른데도 말이지요.(아, 물론… 요즘 말 뽄새가 좀 세지긴 했지요… 뭐든지 세게 세게…)
그러면서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예 남자 부끄리를 ‘페니스’라고 하지요. ‘페니스’는 예사 이름씨고 ‘자지’는 욕이 되는 세상… ㅜ.ㅜ
게다가 ‘뻑큐’나 가운데 손가락은 잘도 치켜 세우더만요…(아마 옛날 욕몸짓은 푸름이 가운데는 아는 이가 별로 없을 걸요…)
아, 그렇다고 걔들한테 뭐라 그러지 맙시다.
다 우리 세대가 가르쳐 준 거잖아요?(그대는 나는 아닌데 ‘우리’는 맞습니다.) 방송이나 여러 문화 매체를 통해서 말이지요…
어쩌면 요즘 푸름이들 가운데서는, 일본을 통일시킨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마도 ‘왕건’보다 훨씬 친숙한 이들도 있을 껄요?(‘왕건’이 뭐냐고 물으면 ‘왕건더기’라고 답하는 이도 있을 듯…^^)
혹시 요즘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뭘 보고 커는지 모르시는 분도 계신가요? 요즘 애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ㅎㅎㅎ

이렇게 우리말과, 그 밖에도 우리 것을 점점 멀리 하다 보면 어쩌면 저 아버지, 할아버지 보다 옆집 아저씨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날이 오겠지요?

* 얼숲에 올린 글 보기

우리말로 만들어보는 입춘맞이글[입춘방]

댓글 남기기

내일이 립춘이지요?
한자말인 ‘립춘'(立春)을 우리말로 하면 ‘봄맞이날’쯤 되려나요?^^

립춘이면 립춘방이라는 것을 많이 쓰는데요,…
이 ‘립춘방’도 쉽게 ‘립춘맞이글’ 정도로 쓰면 더 쉽겠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한자 립춘맞이글보다는 누구나 알 수 있게 쉬운 우리말로 립춘맞이글을 써 보면 어떨까 싶네요.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쉬운 우리말로 립춘맞이글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지요?
여러분이 한번 만들어 봐 주십시오.^^

우리말[한말] 한마당

* 얼숲에 올린 글 보기/ 얼숲 ‘한글빛내기모임’ 모둠에 올린 글 보기/ 얽힌 글 – 우리말로 써 보는 입춘맞이글 /

아주 훌륭한 우리 먹거리를 두고…

댓글 남기기

가끔 딴 나라를 나가게 되거나 딴 나라에 나갔다 온 사람들 얘기, 혹은 사진 같은 걸 보다 보면,…
예사 사람들이 우리나라 만큼 잘 먹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기서 또렷히 해 두자면, 흔히 먹거리하면 중국이나 프랑스를 얘기하지만, 그 때 얘기하는 먹거리는 예사 사람들이 늘, 흔히 먹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딴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신선로 얘기를 하듯… 여기서는 예사 사람들이 흔히 먹는 먹거리를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그네 먹거리를 깔보는 것이 아니라, 유럽 쪽은 빵에 뭐 찍어 먹거나 얹어 먹거나 그나마 좀 나으면 고기를 얹어서 먹는 정도, 중국도 밥에 비쩍마른 무말랭이 같은 거(이름은 까먹었습니다만…^^)나 땅콩을 얹어서 젖가락으로 그냥 입에 밀어 넣는 게 흔한 일이고, 일본도 우리로 보면 께작께작…
그리고 가장 크게 다른 것이 우리는 반찬이라 해서 곁들여 먹는 게 꽤나 많습니다.(안타깝게도 그래서 거꾸로 먹다 남은 쓰레기가 좀 많이 나오긴 합니다만… ^^;)
여튼, 이렇듯 썩 괜찮은 먹거리를 어찌 잘 하면 꽤 훌륭한 밥상이 되지 못 했을까?
게다가 옛 우리 밥상은 주로 풀로 만든 먹거리와 반찬이 많아서 건강에 좋기까지 한데…

저는 이것을,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고 사대주의자들이 권력을 쥐면서 우리 것을 깔본 탓이 크지 않을까 합니다.
게다가 남 것을 부러워만 할 줄 알았지 우리가 가진 보물 같은 것들을 미처 보지 못한 탓도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보물 같은 것들을 너무나 많이 잃어버렸습니다.(아니 심지어 우리 손으로 버리고 뭉개버리기까지 했다고 봅니다.)
그러고도 나라 마름 마누라까지 되는 작자는 우리 먹거리를 온누리에 널리 알린다면서 돈 빼먹을 궁리나 하고…
소중한 우리 것이 다 없어지고 나서야 그걸 알아볼 눈을 가진 이가 나서게 될까요…?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일… ㅡ.ㅡ

사대주의 파헤치기/ 사대주의 깨고 겨레얼 되찾기 모둠/ 참된 보수[누리쪽]/ 참된 보수 모둠/ 박정희 제대로 알기[모둠]/ 돌아온 닭카키 시대

* 얼숲에 올린 글 보기

* 얽힌낱말 : 한식세계화, 김윤옥,

Older Ent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