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털어? 통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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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우리말글 얘기 한 마디

나는 지금껏 ‘#통털어‘라고 생각했는데 엉터리표준말에는 ‘#통틀어‘라고…
‘전부 다 털어 모으다’란 뜻으로 ‘통 털다’에서 온 말이 아닐까?
근데 또 북한에서는 나랑 같이 생각했는지 ‘통털어’라 쓰는 모양

어느 쪽이 옳은 적음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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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대체 뭘 먹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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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우리가 주식으로 먹고 있는, ‘쌀’에서 95% 영양분은 씨눈과 속껍질에 들어 있고 정작 우리가 먹는 속알맹이인 배젖에는 5% 밖에 들어 있지 않다.

이는 밀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밀은 주로 공장에서 가루를 내어 먹으면서 그 과정에서 또 여러가지 영양성분이 빠지게 된다.(수입밀일 때에 운송 과정에서 거치는 약품 처리는 제껴 두고…)

결국 농부가 쌔빠지게 농사를 지어 그 가운데 단 5% 만을 돈들여 사먹고 있는 것이다.(자연과 농부와 수 많은 사람이 애쓴 가운데 95%는 그냥 사라진 거다.) 장난 삼아, 그럼 쌀알의 영양분을 몽땅 돈으로 친다 치면 흰쌀 20kg에 5만원 정도니까 통쌀(현미;메조미쌀) 20kg에 약 4백7십5만원 어치 값어치가 되겠다….

과일 역시 거의 모든 영양분은 껍질과 씨방 쪽에 들어 있는데 이 역시 다 버리고 가장 영양분이 없는 과육만 먹고 있으며, 물고기 또한 가장 영양분이 적은 살만 발라 먹고 다 버린다.

고기 또한 그러한데, 우리는 옛부터 짐승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털만 빼고)다 먹는 문화였으나 요즘은 이 역시 살고기만 주로 먹게 되었다.

이렇게 보자면 앞서 장난 삼아 셈해봤던 것처럼, 그것을 일궈내려 애 쓴 것에 견줘 어마어마한 영양분과 영양 값어치를 그냥 버리고 있으며, 거꾸로 그런 것들을 통째로 먹는다 치면 훨씬 덜 먹더라도 모자랄 것 없는 영양을 섭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비단 먹는 것 뿐만 아니라 현대의 삶이란 것이 뭔가 바쁘고 애만 잔뜩 쓸 뿐 정작 우리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과도 닮아 있지 않을까…?

‘양갱’ 우리말은 ‘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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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와 ‘#양갱’이 뭐냐고 하다 찾아 보니…
‘서양에서 들어온 묵’ 정도로 생각했는데 본디는 지나[중국]에서 먹던 양고기 국이라네요. (못 믿겠는데…^^;)
이게 일본으로 넘어가서 불교 영향과 고기를 먹기 어려운 형편때문에 팥을 우려 팥양갱이 되었다고…

어떤 것을 고거나 우려서 진을 빼내어 굳힌 먹거리를 우리는 ‘묵’이라 합니다.
보통 묵이라 하면 도토리묵 정도만 생각하지만 바닷가 사람들은 바다풀이나 물고기 같은 것으로도 묵을 만들어 먹습니다. (특히 상어묵 같은 건 전혀 물고기 같지 않고 맛있습니다. 꿀꺽~^^;) 또한 고기를 끓였다 식혀 굳혀서 먹기도 했고요… 흔히 사전 같은 데서도 설탕이나 엿을 넣고 한천이나 녹말로 굳힌 것이라 풀고 있으나 (적어도)경상도에서는 녹말, 한천으로 굳힌 것 뿐만 아니라 쫄여서 굳힌 것은 거의 ‘묵’이라 합니다. (우뭇가사리 묵, 상어 묵 같이) 그렇게 보자면 일본말 ‘오뎅’을 갈음한 ‘어묵’이야말로 쫄이지도 않고 녹말 같은 것으로 굳힌 것도 아니니 참으로 어거지로 만든 낱말이라 하겠습니다.
이렇듯 아마도 양갱은 달게 만든 묵이니 ‘#단묵’ 정도가 될테고-엉터리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양갱’을 ‘단팥묵’으로 고쳐쓰라(이때도 꼭 ‘순화’라는 한자말로 모화사상을 드러내네요. ㅡ.ㅡ) 하고 있으나 양갱을 주로 팥으로 만들긴 하나 반드시 팥만 쓰는 것은 아니니 ‘양갱’을 ‘단팥묵’이라 한 건 잘못이라 봅니다. 게다가 ‘단+팥묵’이라 하면 달지도 않은 팥묵도 있을 수 있으니 더욱 꼬이는 셈이고…- 여러가지 묵 갈래가 있고 그 가운데 달게 만든 묵도 있고 또 그 가운데 팥으로 만든 것도 있을 수 있으니 ‘팥+단+묵’이 옳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면 밤으로 만든 단묵은 저절로 ‘#밤단묵’이 되겠네요. ‘단밤묵’이나 ‘밤단팥묵’이 아니라… 이건 마치 ‘고니’를 ‘백조라 하고 보니 검은 고니를 ‘흑백조’라 하게 되는 꼴과 비슷…^^)

* 오랫만에 쓰는 #우리말 이야기 ^^
#한말글 #우리말글

책읽기[독서]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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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가 좋은 점이 많기는 하지만 책만 읽는다고 지식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는 것은 아니며, 해롭다는 ‘바보상자 보기’나 ‘똑기기 쓰기’도 우리에게 지식과 지혜를 주기도 한다.
다른 쓸데없는 일에 쓰는 시간보다 책읽기 같은 일에 쓰는 시간이 적다거나,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영상 메체보다 그나마 생각할 틈을 주는 책읽기 시간을 더 늘리자고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마찬가지로 여행이 가져다 주는 좋은 점이 많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여행만 떠나면 지혜가 용솟음치고 깨달음이 밀려오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떤’이나 ‘어떻게’는 없거나 뒤로 밀려난 채 막무가내 책읽기를 억지부리고 여행이 마치 자격증이나 (없으면 찍 소리도 못 하는)학위처럼 떠벌이는 것을 보노라면, 아무 생각없이 끌려가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해서 하는 책읽기나 여행도 마침내는 무엇엔가 질질 끌려서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자기 줏대가 없다면 무엇이라도 똥이요, 쓰레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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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처음에 ‘말’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말’만 있다.

세상 처음의 ‘말’은 모든 것을 만들었지만
지금의 ‘말’은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

우리는 있는가?

사람의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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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잣대는 참으로 제 맘대로라,
준 건 무척 커 보이고
받은 건 엄청나게 작아 보인다.

서양 커피와 동양 차 – 이야기거리와 잔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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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에서 커피가 큰 인기입니다. 심지어 절에서도 차 보다는 커피를 내온다고 할 정도로…
커피는 과연 어떤 매력이 있어 이렇게 널리 퍼지게 되었을까요?

먼저 우리 나라에 커피가 널리 퍼지게 된 과정을 살펴보자면 대충 이렇습니다.(물론 제 생각입니다.)
숭늉을 마시던 버릇이 있던 차에 간편한 인스턴트커피가 널리 퍼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때는 커피를 즐긴다기 보다는 그냥 뭐라도 마실 거리를 찾는 것이고 단 설탕 맛을 즐기는 것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사실 인스턴트커피는 진짜 커피 쪽에서 보자면 -거의 모든 인스턴트 먹거리가 그렇듯-그냥 흉내일 뿐 커피의 제 값어치는 결코 미치지 못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외국 여행을 하면서 커피를 맛 보게 되고 또 가끔은 외국 커피를 들여오거나 찾아서 마시는 매니아들이 생기게 됩니다. 매니아들이나 외국에서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시던 사람에게는 인스턴트 커피가 성에 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좀 더 좋은, 제대로 된 혹은 진짜 커피 맛에 가까운 커피 맛을 찾게 되고 또 몇몇 사람들은 스스로 커피를 내려서 마시게 됩니다.
손수 커피를 내려서 마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꽤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그렇게 내려 마시다 보면 좀 더 좋은, 좀 더 색다른 맛을 찾아서 여러가지 기구를 사거나 손수 볶아 보게도 됩니다.(흔히 여느 취미생활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그냥 결과를 즐기는 데에만 만족하다가 점점 그 과정을 즐기게 되면서 엄청난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과정을 즐기다 보면, 어떻게 갈고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그 과정 차체가 앞서의 인스턴트를 찾던 때의 귀찮음이 더이상 귀찮음이 아니라 재미가 되게 됩니다.
처음부터(커피 맛을 제대로 모를 때부터) 내려서 마시라고 했으면 귀찮아서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을 테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는 커피를 다루는 그 과정이 크나큰 재미요 즐거움이고 맛과 향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잠깐 딴 얘기를 하자면, 얼마 전까지는 뻑하면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가끔은 좋은 말이다 싶으면 마구 갖다 붙이는 버릇 때문에 좀 엉뚱하게 쓰이는 일도 있었지만, 우리가 흔히 쓰던 말로 쉽게 갈음하자면 ‘이야기거리를 만드는 것’일 겁니다.
저는 이 ‘이야기 거리를 만드는 일’에 가장 좋은 보기가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다시피 그리스, 로마에는 수많은 신이 있습니다. 말이 좋아 ‘신’이지 거기 나오는 존재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도 있지만 그냥 ‘귀신’, ‘잡신’ 들도 많습니다.
어떤 이는 그리스 로마의 신을 두고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이라고 젊잖게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거기에 나오는 ‘신’ 가운데는 말이 ‘신’이지 때로는 사람보다 더 찌질하고 밴댕이 소갈딱지-뻑하면 복수!-를 하고 또 ‘짐승에 가까운’, ‘짐승스러운’ 귀신, 잡신들도 많습니다.
이 땅별 위에 다신교를 믿고 다신 사상(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다신 사상은 좋게 말해서 다신 사상이지 오히려 ‘잡신 사상’. 물론 이 때의 ‘잡-‘은 ‘온갖’, ‘허다한’이란 뜻이지 나쁜 뜻은 결코 아닙니다. ‘잡상인’도 딱히 특정한 품목이 아니라 잡다한 물건을 파는 상인’이란 뜻인데 이게 어찌하다 ‘잡스러운 사람’을 뜻하는 느낌이 되어 버렸는지… ㅡ.ㅡ)을 가진 겨레나 그런 문화를 가진 곳은 숱하게 많은 데 어찌 하여 그리스, 로마의 잡신 사상만은 높게 처져서 그냥 ‘잡신’, 여느 ‘귀신’이 ‘신’과 같은 높이로 올라가고 그래서 세계 곳곳으로 퍼지게 되었을까요?(사실 이렇게 널리 퍼진 잡신 사상이 그리스 로마 잡신 이야기 뿐만은 아니고, 딴 보기를 들자면 인도의 잡신 이야기도 꽤 널리 퍼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잡신 사상’ 혹은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사상이라고 하면 우리도 결코 빠지지 않습니다.
위로는 옥황상제로 부터 가까이로는 집 터를 지키주는 귀신이 있고 집(채)을 지켜주는 귀신, 또 부엌을 지키는 신, 아궁이(불)를 지키는 신이 있는가 하면 하다 못해 부지깽이, 빗자루에도 귀신이 들고 제가 어릴 때 삐져서 구석에 웅크리고 있으면 할아버지께서는 ‘구석 할마이-할머니-가 잡아 간다’고 장난을 치시곤 했습니다. 또 옛 우리 신화, 설화에서 큰 역할을 하는 마고할미가 있는가 하면, 태어날 때는 삼신할미의 점지를 받아야 했고, 죽으면 저승사자가 데려가고, 무당들은 큰 인물의 귀신을 받아들여 신통력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세계 여러 곳에, 숱하게 많은 잡신 사상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가 우뚝 솟은 것은 바로 전체를 꿰뚫어 틀거리가 제대로 만들어 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 거리는 단지 모양새로써 뿐만이 아니라 재미와 흥미를 드높였다고 봅니다.

커피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리스, 로마 잡신 얘기를 꺼낸 것은, 마치 그리스, 로마 잡신 이야기가 틀거리를 이루고 그것이 흥미와 재미를 드높였듯이, 커피를 즐기게 된 과정이 바로 문화의 틀거리를 이루고 그것이 커피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드높이게 된 것과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요즘은 커피를 즐긴다 하는 왠만한 사람도 커피의 맛과 향, 질에 대해서 한 두 마디 씩은 다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받아들이기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즐기는 자리로 옮겨왔다고 봐야겠지요.)

그렇다면 동양의 차나 우리나라의 차는 과연 커피 만큼 맛이 안 될까요? 왜 그런 재미가 없을까요?
먼저 동양의 차는 상당히 정적이라고 볼 수 있고 이 정적인 면이 요즘 현대 생활과 거리감이 생기게 되는 까닭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저는 서양의 커피는 서양화 같고, 동양의 차는 동양화(수묵화?)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딱히 서양화와 동양화라고 값매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견주자면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커피는 좀 더 강렬한 색채와 자잘한 표현과 빈틈없는 색칠로 재미를 주는가 하면, 차는 가끔은 그린 듯 안 그린 듯한 채색과 군데군데 비어있는 여백, 하지만 깊이 보다보면 우러나오는 재미, 그리고 생각의 틈[여지]이 있습니다.

서양 커피를 두고는 이래서 좋다, 이래서 안 좋다 하는 연구들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동양 차는 인기가 높지 않은 만큼 그런 것이 덜 알려지고 그러다 보니 연구하는 이도 적고 그러니 더욱 숨겨진 부분이 많은 듯합니다. 동양 차 역시도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그런 약리 작용이 큽니다. 동양 차 역시도 어디서 난 차인지, 어떻게 다룬[법제] 것인지, 언제 딴 것인지, 어떤 차 갈래인지에 따라 맛이 다르고 몸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고 약리 작용 또한 다릅니다.
오히려 그냥 마실거리로서가 아니라 약이라는 점에서는 커피보다도 그 효용이 넓고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안타깝게도 알려진 바가 적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나 서양 커피보다 뛰어난 동양 차가 왜 서양 커피에 밀릴까요?
그것이 바로 이야기거리를 못 만들고 재미거리를 뒷받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차-흔히 보는 ‘현미녹차’ 같은 것은 ‘대용 차’라고 하지 ‘차’에 끼이지 못합니다. 마치 제대로 된 커피를 찾는 이들에게 ‘인스턴트 커피’는 ‘커피’가 아니듯이…-를 처음 접하는 이들은 흔히 (진짜배기)’차’라고 하면 ‘다도’를 떠올립니다.
뭔가 자세를 잡고 앉아서 어떤 절차와 예절을 따르고 차를 내리는 특별한 비법이나 방식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흔히 말하는 ‘다도’라고 하는 것은 차를 즐기는 수많은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 그것이 결코 정석도, 표준도 아닙니다.
커피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쉽게 차를 내려 마실 수 있지만,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차를 아는 사람과 함께 마시면 나름의 맛과 재를 느낄 수 있는 것 뿐입니다.

커피가 사실 ‘커피’라고 하기에도 뭣한, 좀 심하게 말하면 가짜 커피 ‘인스턴트 커피’, 흔히 말하는 ‘다방 커피’, ‘봉지 커피’에서 시작했듯, 차 역시도 흉내만 낸 차, 가짜 차 같은 것도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어떻던지 간에 널리, 많이 즐기다 보면 그 가운데서 제 맛, 제 값어치를 찾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대중화된 차와 좀 더 나은 차 문화가 서로 끌며 밀며 상승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 봅니다.
여튼 온갖가지로 즐기다 보면 좀더 나은, 좀더 제대로인 것을 찾게 될테고 그렇게 마당을 넓혀 가는 것이 이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차를 하시는 분들은 나름 고집이 있고 자존심이 있는 분들이라 이런 것을 싫어하는 편입니다. 헌데 모르긴 몰라도 제대로 된 커피를 하시는 분들이 보기에는 아마도 인스턴트 커피가 먼저 사람을 입맛을 길들이고 퍼져 나가는 것도 무척 못마땅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는 커피 역시도 그 세력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동양 차 역시도 제대로 된 동양 차의 맛을 지키고 개발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참말로 ‘어쩔 수 없이’입니다. 이는 결코 올바르다 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 제대로 된 고갱이가 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곁다리, 짜가들도 많을 수 밖에 없더라는 현실론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산이 높기 위해서는 그 봉우리만 우뚝 설 수는 없고 많은 곁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수많은 자락에 하많은 흙들을 딛어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 바탕 위에서 차의 효용과 효능이 더 많이, 더 깊이 연구된다면 단지 차가 널리 퍼지는 것 뿐만 아니라 마니아를 만들어 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확실히 서양 커피는 기를 치솟게 하고 정(情)을 치솟게 하는 현대 생활의 리듬에 맞는 면이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너무 들뜨게 되는 생활 리듬을 차분하게 해 주는 차도 큰 매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서양 커피는 동양화 같고 동양 차는 동양 수묵화 같습니다.
서양 커피는 기가 솟구치는 어린이 같고 동양 차는 원숙한 어른 같습니다.

기를 치받아 올리고자 할 때는 커피를 마시고, 기를 가라앉히고자 할 때는 차를 마십니다.(명상은 단지 결과를 통해서 만이 아니라 가부좌를 틀고 손을 모으고 앉는 그 과정을 통해서 이미 결과를 반쯤은 얻는 것입니다.

  • 어차피 저는 커피 전문가도 아니고 차 고수도 아닙니다. 논리야 저 나름이지만 논리를 폄에 있어 비약이 있거나, 근거가 약하거나, 잘 이해가 안 되는 데가 있다면 귀띔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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