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스런 생각, 우리는 조선 때를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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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안방극에서, 집에서 대신 일을 하는 사람을 부리는 것을 보면 마음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제 아는 친척 가운데서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안방극에서 보던 것 정도는 아니었지만서도…)
그들은 집에서 부리는 종이 아니라 일을 해 주고 돈을 받기로 서로 약속[계약]을 한 사람인데, 왜 마치 조선 때에 종을 부리듯이 하고 또 안방극에서는 그걸 더욱 과장해서 그릴까요?(안방극에서처럼 그렇게 막 부리는 일이 많기 때문일까요?)
그리고 또 하나 편치 않은 꼴이 있는데, 요즘은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만, 일을 마치고 들어온 남편 옷을 아내가 받아 걸어주는 것입니다.
안도움[내조]을 그리 표현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실제로도 그런 사람이 많아서일까요? 남편은 손이 없습니까, 팔이 부러졌습니까?
이것도 혹 옛 조선 때 같은 권위스런 생각이 배어있어서는 아닐까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여전히 조선 때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나라 정치를 봐도 그렇고…(도둑년 닭년, 네 얘기야!)

겨레얼과 겨레문화 살리기 모둠/ 사대주의 깨고 겨레얼 되찾기 모둠/ 얼 차고 줏대있는 겨레로 살자/ 얼 차리고 줏대있게 살자

* 얼숲에 올린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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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함께 하고 싶다면 쉬운 말을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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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게모르게 얼마나 권위에 젖고 틀에 박혀 살고 있냐 하면,…
심지어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들 조차도
조금도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 판에 박힌 말투와
공문서처럼 딱딱한 말투와
지배계급이 쓰는 ‪권위‬에 쩔은 말투와
알아듣도 못할 겉멋만 잔뜩 든 말투를 쓴다.
함께 하겠다는 이들 조차!!!

이건,
나는 위에 있는 그대들은 아래에 있으니 내 말을 들으라는 ‪계급주의‬
나는 뛰어나고 그대들은 그저 그런 사람들이라는 ‪우월주의‬
나는 똑똑하고 그대들은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나만 따라 오면 된다고 하는 ‪권위주의‬를 드러낸 것이라 본다.

덧붙여, 말에 느낌이 담긴다는 것,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아주 쉬운 진실을 가끔 잊는다.
함께 가고 싶다면 말을 쉽고 편하게 하라!!!
(나조차 달리 바꿀 말이 안 떠올라 어려운 낱말을 쓴 것은 좀 헤아려 주시라…^^;;)

예의를 차리되 틀[형식]을 버려라!

말글은힘이다

* 얼숲에 올린 본디 글 보기

말이 살고 쉬운 말글살이를 하려면 형식주의를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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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우리말을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형식주의-이것도 크게보면 ‘권위주의’ 한 갈래지요…-에 찌든 나랏말학자들이 온갖 법칙을 복잡하게 만들었기에 그렇다는 것은 여러 글을 통해 적었습니다.

방금 땅이름을 말하면서, 부산에 있는 ‘동래’를 딴나라 사람들이 ‘통라이’라 소리낸다는 글을 봤습니다.
로마자를 쓰는 겨레나 그렇지 않은 겨레를 통털어 ‘tongrae’를 ‘동래’라고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특히 ‘래’ 소리값은 차라리 ‘re’가 가깝지 ‘rae’를 ‘래’로 읽는 이는 거진 없을 것입니다.(아마도 거진 ‘라에’로 읽지 않을까요? 그리고 여기서 rae가 한 덩어리임을 나타낼 수 있다면 ‘라에’를 빨리 소리내어 ‘래’와 비슷하게 나타낼 수는 있을 것입니다만…)

이는 아마도 ‘로마자표기법’ 때문인 것 같은데, ‘로마자표기법’이란 것이 우리끼리 하는 약속일 뿐이라는 데에 탈이 있다고 봅니다.
‘애’가 소리값으로는 ‘e’에 가까운데 우리 글 자모에 얽매이다 보니 굳이 ‘ae’라 적게 되는 것이라 봅니다.(사실 이것 자체가 탈은 아니나, 심지어 로마자를 쓰는 겨레조차도 이걸 아무도 ‘애’로 읽지는 않는다는 데에 탈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가장 두드러지는 홑자가 딴겨레말에는 소리값이 별로 없는 ‘으’와 ‘어’ 그리고 ‘의’같은 소리값을 적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옛날 ‘신의’라는 일터이름이 있어 그걸 옮기는데, 저는 차라리 우리말에 가깝게 ‘sinyi’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의’를 살리다 보니 ‘eui’라 적게 됩니다.
이 ‘eui’를 보고 ‘의’라고 읽는 이가 누가 있을까요?(심지어 우리나라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글자를 딴겨레사람이 본다면, 이건 마치 우리가 베트남 글자를 보고 느끼는 어쩔 줄 몰라하는 마음과 같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쓰는 말글에서 법칙을 어느 한두 사람이 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편한 말글살이를 하려면 말글법칙에서 형식주의, 권위주의를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법칙으로 두고 나머지는 자유로이 말글살이를 하면서 풀리도록 놔 두어야 할 것입니다.(아직도 사람들 머리속 생각조차 손아귀에 거머쥐고 싶어하는 이가 많은 것을 보면 앞으로 얼마나 지나야 이런 세상이 이루어질까 싶기도 합니다만…)
그래야 우리말이 더욱 좋아지고 빛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우리 글자인 한글은 저절로 빛이 날 것입니다.

우리말[한말] 한마당, 쉬운 한말글 쓰기, 우리말 살려 쓰기, 우리말과 우리글을 기리는 ‘한말글날’로 하기

[펌]똥을 똥이라 못하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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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쓰는 말에도 여러가지 켜[층]이 있습니다.  무리켜[계층]가 있기도 하고 높낮이켜[계급]가 있기도 합니다.
뭇사람들이 흔히 쓰는 입말을 쌍스럽다[저속하다]고 하고 그네들이 쓰는 딴겨레말투나 베베 꼰 말투를 고급스럽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똥’ 같은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똥’은 방송에서 쓰면 안 되는 말입니다. 대신 ‘분'(糞)은 괜찮습니다. ‘개’도 쓰면 안되고 ‘견'(犬)이나 ‘도그'(dog)는 괜찮습니다.
이것은 다만 말버릇에 따른 것이 아니라 말글살이를 이끄는 이들이 딴겨레말글을 받들거나 얼빠진 자들이라는 것에서 비롯됩니다.(안타깝게도 우리말글 정책을 내어놓는 국립국어원마저 한자말글을 떠받드는 이들이 꿰차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말글을 살려쓰고 입말을 살려쓰는 것이 바로 말글 속에 깃든 계급주의와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이루는 길이라 보는 것입니다.
아래 글은, 얼숲[페이스북]에서 서범석 님이 쓰신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똥’을 ‘똥’이라고 못 하는 사람들

우리 몸에는 ‘똥’, ‘오줌’, ‘똥구멍’ 같은 게 있다. 이런 말을 한(漢)자로는 ‘대변(大便)’, ‘소변(小便)’, ‘항문(肛門)’이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두 나라 표현을 쓰고 살면서도 우리 말 표현으로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문제다. 누구든지 태어나면서부터 기저귀를 차야하고, 부모들이 오줌똥을 갈아내며 똥구멍도 깨끗이 닦아줘야 했던 지난날이 있었다. 그와 같이 성인이 되어서는 대부분 우리말이 있는데도 중국글자와 서양말을 섞어서 쓰며 사는가!
고작 우리말로 표현 할 때는 욕을 할 때나 천하게 쓰일 때 뿐이다. 어쩌다가 우리말이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되어 나그네한테 아랫목을 빼앗기는 꼴이 되었는가!
문제는 그렇게 유식한 말을 써서 자기 권위와 품위를 나타내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그 유식한 말들을 그 나라 글로 쓸 수도 있어야 한다. 물론 말은 그렇게 했어도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이야 많지 않겠지만, 예사롭게 지나칠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2세들한테도 우리말을 가르치면서 다양한 어휘를 다 가르쳐야 한다.
깊은 학문을 할수록 유식한 말도 겸해야 하겠다. 그런데 어찌하여 ‘똥’ 하면 유치하게 들리는가! 나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다. 대략 반세기쯤 지난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 때에도 ‘똥 퍼낸다’는 말보다 ‘인분 퍼낸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분(人糞)’ 하면 유식하게 들리고, ‘오줌똥’ 하면 유치하게 들리는 것처럼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는 얼빠진 생각을 버려야겠다. 누가 만든 말인데 우리말은 유치하고 중국글자는 유식한가!
우리가 문법을 배우면서 ‘홀소리, 닿소리, 이름씨, 움직씨, 어찌씨, 토씨, 그림씨, 느낌씨…’와 ‘모음, 자음, 명사, 동사, 부사, 조사, 형용사, 감탄사…’ 이렇게 두 가지 표현을 배웠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우리말은 까마득하게 잊고 유식한 한자식 표현만 쓰면서 사는 세상에 살고 있다. 심지어 외국인을 위한 한글 교과서에도 가장 기본이 되는 ‘닿소리와 홀소리’도 ‘모음과 자음’으로 적혀 있다. 우리 2세들이나 외국인들한테 ‘홀소리’를 ‘모음(母音)’이라고 가르쳐야 하는가?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한 번쯤 생각 해 보고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질문이나 토론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도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가 ‘똥’ 이야기를 계속하자. ‘똥’ 이야기를 무엇 때문에 이렇게 장황하게 하는지는 아래와 같다. 우리 몸에는 직∙간접으로 구멍이 뚫려 있다. 가령 ‘눈구멍, 콧구멍, 입구멍, 귓구멍, 배꼽구멍, 오줌구멍, 똥구멍’, 이처럼 구멍이 하는 몫은 각각 다르다. 문제는 사람이 죽으면 몸 안에서부터 썩기 시작한다. 그런데 썩기도 전에 먼저 나오는 게 ‘똥’이다. 그 이유는 위로 들어가서 아래로 나오는 구멍이 가장 가까이 뚫려 있는 구멍이기에 그렇다. 그렇게 상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오기 시작 하는 것은, 똥이 나오는 똥구멍 근육질이 약하기 때문이다. 똥구멍 근육질이 튼튼한 사람은 장례를 치를 때까지도 똥이 안 나온다 한다. 중요한 것은 똥구멍이 튼튼한 사람은 온 몸이 튼튼하다 한다.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평소부터 똥구멍(온몸)을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준비한다. 똥구멍을 튼튼하게 하려면 똥구멍 이야기를 자주 해야 하기 때문에 말하기를 꺼려하고 묻기도 주저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이 ‘똥’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읽으시면 고맙겠다. 원치 않는 분들은 그만 읽으셔도 된다.
‘똥구멍 좁히기(항문수축肛門收縮)’라는 운동이 우리 몸에 얼마나 좋은지 연구발표가 나온 뒤로, 많은 사람들이 큰 효과를 보면서 기쁨으로 살고 있다. 그러기에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토록 좋은 운동을 오랫동안 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게 아쉽다 하겠다. 혹, 모르시는 분들을 위하여 똥구멍 좁히는 운동을 소개한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똥구멍을 한번 오므렸다 펴 보시라. 그렇게 똥구멍을 좁혔다 폈다 하는 게 똥구멍 운동이다. 양기가 강한 분들은 곧바로 성기까지 움직이게 되면서 자극이 올 것이다. 속도를 빨리 해도 좋고 천천히 해도 상관없다. 어떤 연구가는 날마다 횟수를 정해서 300번~500번 이상? 하라고 하지만, 그 횟수는 많이 할수록 좋으니,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이 운동이 좋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숫자를 셀 때 말고는 아무 때나 할 수 있다. 이 운동을 무턱대고 하다보면 몇 번을 했는지 얼마나 오래 했는지 구분을 못하고 저절로 잊기가 쉽다. 그래서 이 운동을 할 때는 ‘꼭’ 숫자를 세면서 하는 게 좋다. 그렇게 숫자를 세면서 내가 바라는 건강 목표가 무엇인지, 앞으로 건강한 몸과 마음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기쁜 마음으로 운동을 하게 된다. 다른 일을 할 때와는 달리, 건강해지는 앞날을 환하게 내다보며 지루한 생각을 잊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노라면, 똥구멍 근처가 튼튼한 근육질로 바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도 맑아지고 온 몸이 튼튼하게 되어가는 것이다. 해가 바뀔수록 놀라보게 달라질 것이다. 이따금 손으로 똥구멍 근처를 만져 보면 생각보다 빠른 시일 안에 튼튼한 근육을 만지게 될 것이다. 똥구멍 좁히는 운동을 오래오래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느끼는 게 있을 것이다. 남자나 여자를 구분하지 않고 아무 때나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다른 운동은 시간을 내서 해야 하지만 이 똥구멍 운동은 생각 날 때마다 어디서든지 할 수 있다. 걸어 갈 때든지 앉아 있을 때든지 직장에서 일할 때든지 잠자기 전에 누워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옆 사람이 알 수 없는 운동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수록 요실금(尿失禁)이라는 질병으로 속옷을 자주 적신다는 말은 흔하게 듣는다. 그러한 분들일수록 똥구멍 좁히는 운동을 부지런히 하면 거짓말처럼 속옷을 자주 갈아입지 않아도 되는 좋은 성과를 거둘 것이다. 특별히 남자들한테는 오줌 나오는 근처까지 근육질이 튼튼하게 발달하여 깜짝 놀라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며 머지않아 행복한 비명(?) 소리도 자주 듣게 될 것이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사람들한테 똥구멍 좁히는 운동을 소개했다.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있었지만, 처음 듣는 분들은 반가운 소식이라고 솔깃하게 듣는 분들이 많았다. ‘먼저 해 보았더니 이렇게 좋더라’ 하는 경험을 통하여 ‘똥’ 이야기가 나온 김에 ‘똥구멍’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바쁘게 살면서 글로 옮기려면 많은 시간을 바쳐야한다. 혹, 우스갯소리로 가볍게 읽고 지나칠 수도 있겠으나 나도 비싼 밥 먹고 허튼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제부터는 유식 병은 물러가고 조상들이 물려준 우리말을 살려 쓰므로 해서 병든 겨레를 살리고 나아가 우리말을 통하여 아직도 인식이 덜 되어있는 외국사람들 한테까지 우수한 우리글을 온 누리에 널리 알릴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이렇듯이 ‘똥’과 같이 천대하는 우리 말 때문에 유식한 척하는 병든 잡탕말을 섞어서 우리말과 겨레가 알게 모르게 병들어가고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해서라도 하나씩 하나씩 가려서 우리말과 글을 살리는 줏대를 세워야겠다.

쉬운 우리말을 두고 어려운 들온말을 쓰는 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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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우리말을 두고 어려운 들온말을 쓰는 심보는 ‘사대주의’일까요, ‘권위주의’일까요…?(둘 다 일까요?^^)
온통 겉멋부려 들온말을 쓰면서 ‘한글날’을 얘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부터 우리말을 아끼고 쓰면서 ‘한글이 우수’하다는 말을 해야겠지요…
‘우리말’은 우리 것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넋이 고스란이 들어있기에 소중한 것이라 봅니다.

* 퍼 온 곳 : http://www.ibu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492

집중호우, 폭우, 침수…
장마철입니다. 비가 많이 내리게 되죠. 언론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기에 접어들었다.” 이런 말도 자주 나옵니다. “집중호우에 도로와 가옥이 침수되고….” 큰비, 장대비라 해도 될 것을 ‘집중호우’ ‘호우’ ‘폭우’라고만 하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은 주장합니다. 우리말을 쓰게 되면 말이 길어지고 뜻 전달이 분명하지 않아서 한자말을 쓰는 것이라고 말이죠. ‘큰비에 길과 집이 물에 잠겨’라고 하면 말이 길어졌나요? 뜻을 알아먹기 어렵나요? 오히려 짧아지고 낱말을 보는 순간 뜻을 새길 수 있게 됩니다. 우리말 우리글이라 하면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유치원생이라도 그 말을 알아먹을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말글이 되는 것 아닐까요?

장마 그치면 이제 또 폭염, 폭서, 혹서, 피서 따위 말이 활개를 칩니다. 가마솥더위, 찜통더위, 불볕더위…. 얼마나 더운가요? 느낌이 팍팍 오지 않습니까? 올 여름부터라도 분명한 느낌이 팍팍 오는 우리말을 씁시다.

공복 시 복용하시오!
약국이니 병원 자주 드나들어 좋을 거 없다고 합니다. 여름을 많이 타는 저로서는 배앓이 따위로 하는 수 없이 약국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이러저러한 증상을 설명하고 나면 약사가 약을 지어 줍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죠. “공복 시 복용하십시오.” 또는 “식전에(식후에) 복용하십시오.”

무슨 말인지는 알아먹을 만합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다시 되묻습니다. “빈속에 먹으라고요?” “밥 먹기 전에(밥 먹고 난 뒤) 먹으란 말이죠?” 그러면 고개를 끄덕입니다. 왜 이런 말을 쓰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우리 스스로 이런 말들을 멀리 하고 우리말을 살려 쓰려고 조금만 애쓰면 없어지리라 믿습니다.

이밖에도 약국에서 자주 쓰는 말을 살펴볼까요? “외출했다가 귀가 시엔 필히 손을 세척해야 합니다.” “장복할 경우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일차적으로 속을 우선 치료한 다음에 약을 복용해야 합니다.”

이걸 쉽게 고쳐 쓰면 이렇습니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꼭 손을 씻어야 합니다.” “오래 먹으면(드시면) 부작용을 가져 올(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먼저 속을 치료하고(고치고) 약을 먹어야(드셔야) 합니다.”

쉬운 우리말을 쓰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 민주스런 말, 권위스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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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있고 권력있고 제 무리를 가지고 지식을 가진 자들은 어려운 말을 좋아합니다. 왜 일까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은 뭇사람들과는 다른 ‘뛰어난 이’라는 것을 은근히 뽐내고 싶은 것입니다.
이 나라는 세종임금께서 한글을 만드신 때부터 중국을 받들고 권력을 받들던 자들이 이에 맞섰습니다.
그리고 일제는 우리말을 없애려 하였고 광복이 된 뒤로는 사대주의자들이 앞장서서 우리말, 우리글을 업신여기고 한자를 받들고 급기야 영어를 받들고 있습니다.
쉬운 보기로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어야 할 법조문에 어려운 한자말과 일본말투가 가득한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까닭으로 가진 자들은 쉬운 말을 쓰는 것을 매우 격이 낮고 볼품없다고 업신여깁니다.
뭇사람들은 알아듣기 어려운 말과 글을 씀으로써 그것이 또다른 권력이 되어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버릇이 사회운동을 하시는 분들 안에도 있습니다.
이에는 말을 권력으로 써먹겠다는 생각은 없겠으나 어려운 말투를 씀으로써 권위를 덧대려는, 스스로도 모르는 버릇이 있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는 뭇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음으로써 세상을 바꾸고자 하나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쉬운 말과 쉬운 글을 쓰고 그래서 말과 글을 가진 자들로부터 뺏아옴으로써 어렵지 않게 그들이 가진 힘을 꺾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쉬운 우리말을 쓰는 것이 바로 누리[세상]를 바로잡는 지름길인 까닭입니다.

배움이 전혀 없는 무지랭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민주주의에 맞고 가장 좋은 말입니다.

  • 덧글.
    심지어 지금 우리나라 나랏말 정책을 만드시는 분들조차도 한자말을 받들고 있습니다.
    혹시 그거 아십니까? 옛날 일제 때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온갖 애를 썼던 한글학회는 지금도 여전히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해 힘들어 하며 겉돌이 신세로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떤 분들은 우리나라 한글정책을 한글학회가 세우고 있다고 잘못 알고 가끔 한글학회에 나랏말 정책을 두고 꾸짖는다는 사실을…
    정작 나랏말 정책을 세워야 할 국립국어원은 한자말이나 열심히 줏어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 글씨그림 : (c)kijo. http://kijet.egloos.com/4116278

‘말’도 독립, 민주 해야 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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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가진-지식, 권리 같은- 자들은 뜻이 쉽게 통하면 자신들 위치를 잃을까 두려워 합니다.
말이 쉬워지면 누구나 제 생각을 펴고 나눌 것이라 (밑에 두고)다스리기 어려워지고, 글이 쉬워지면 앎[지식]이 널리 퍼지고 그로써 이미 가진 권리[기득권]가 힘을 잃을 것이요, 또 널리 도움[혜택]을 받을 것이라 가진 자가 거느리던 세력이 약해질 것이며 글 뜻을 풀어주는 것으로 권력을 삼는 자신들이 가진 지식이 필요없게 되어 버려질까 두려워 합니다.
권력 가진 이들이 정보를 나누고 퍼지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과 갈은 도리[이치]라고 봅니다.

결국은 그런-말과 글을 가지고 남 위에 서려는- 자들과 그런 얼개[시스템]를 허무는 것이 함께 가야겠지만, 사회 얼개에 손을 댈 힘이 없는 뭇사람들로서는 ‘말’과 ‘글’을 그들로부터 빼앗아와야 하는 것입니다.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사람들에게 주었듯 어려운 글과 말을 빼앗아 쉬운 글과 말로 바꾸면 굳이 그들은 필요없어 질 것이고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보면, 말과 글로써 가진 자들이 젠체하는 흉내를 따라하고 있습니다.
괜히 많이 배운 척, 고상한 척, 잘난 척 어려운 말과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무지랭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왠지 품위가 떨어지는 듯하여 괜히 어려운 말과 우리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들온말, 한자말을 마구 씁니다.
그리고 말투 또한 잔뜩 젠체하여 어려운 표현이나 우리말법이 아닌 들온말투를 쓰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영어 발음을 ‘어륀지’로 한다거나 역사 시험을 영어로 본다는 말을 꾸짖으면서도 알게모르게 우리도 그 짓에 장단을 맞추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앞서 얘기했지만, 가진 것이 없는 뭇사람들로써는 가진 자들이 이것저것 다 차지하는 사회 얼개를 허물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말과 글을 쉽게, 편하게 하여 말과 글이 가진 힘을 뺏아온다면 가진 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많은 것들이 저절로 굴러들어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말글살이’가 우리나라 광복(‘독립’과 ‘광복’이란 말을 두고 쓴 글, ‘독립’과 ‘광복’을 봐 주시압)과 민주화를 더욱 굳게 하는 실마리가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