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커피와 동양 차 – 이야기거리와 잔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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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에서 커피가 큰 인기입니다. 심지어 절에서도 차 보다는 커피를 내온다고 할 정도로…
커피는 과연 어떤 매력이 있어 이렇게 널리 퍼지게 되었을까요?

먼저 우리 나라에 커피가 널리 퍼지게 된 과정을 살펴보자면 대충 이렇습니다.(물론 제 생각입니다.)
숭늉을 마시던 버릇이 있던 차에 간편한 인스턴트커피가 널리 퍼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때는 커피를 즐긴다기 보다는 그냥 뭐라도 마실 거리를 찾는 것이고 단 설탕 맛을 즐기는 것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사실 인스턴트커피는 진짜 커피 쪽에서 보자면 -거의 모든 인스턴트 먹거리가 그렇듯-그냥 흉내일 뿐 커피의 제 값어치는 결코 미치지 못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외국 여행을 하면서 커피를 맛 보게 되고 또 가끔은 외국 커피를 들여오거나 찾아서 마시는 매니아들이 생기게 됩니다. 매니아들이나 외국에서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시던 사람에게는 인스턴트 커피가 성에 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좀 더 좋은, 제대로 된 혹은 진짜 커피 맛에 가까운 커피 맛을 찾게 되고 또 몇몇 사람들은 스스로 커피를 내려서 마시게 됩니다.
손수 커피를 내려서 마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꽤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그렇게 내려 마시다 보면 좀 더 좋은, 좀 더 색다른 맛을 찾아서 여러가지 기구를 사거나 손수 볶아 보게도 됩니다.(흔히 여느 취미생활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그냥 결과를 즐기는 데에만 만족하다가 점점 그 과정을 즐기게 되면서 엄청난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과정을 즐기다 보면, 어떻게 갈고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그 과정 차체가 앞서의 인스턴트를 찾던 때의 귀찮음이 더이상 귀찮음이 아니라 재미가 되게 됩니다.
처음부터(커피 맛을 제대로 모를 때부터) 내려서 마시라고 했으면 귀찮아서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을 테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는 커피를 다루는 그 과정이 크나큰 재미요 즐거움이고 맛과 향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잠깐 딴 얘기를 하자면, 얼마 전까지는 뻑하면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가끔은 좋은 말이다 싶으면 마구 갖다 붙이는 버릇 때문에 좀 엉뚱하게 쓰이는 일도 있었지만, 우리가 흔히 쓰던 말로 쉽게 갈음하자면 ‘이야기거리를 만드는 것’일 겁니다.
저는 이 ‘이야기 거리를 만드는 일’에 가장 좋은 보기가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다시피 그리스, 로마에는 수많은 신이 있습니다. 말이 좋아 ‘신’이지 거기 나오는 존재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도 있지만 그냥 ‘귀신’, ‘잡신’ 들도 많습니다.
어떤 이는 그리스 로마의 신을 두고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이라고 젊잖게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거기에 나오는 ‘신’ 가운데는 말이 ‘신’이지 때로는 사람보다 더 찌질하고 밴댕이 소갈딱지-뻑하면 복수!-를 하고 또 ‘짐승에 가까운’, ‘짐승스러운’ 귀신, 잡신들도 많습니다.
이 땅별 위에 다신교를 믿고 다신 사상(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다신 사상은 좋게 말해서 다신 사상이지 오히려 ‘잡신 사상’. 물론 이 때의 ‘잡-‘은 ‘온갖’, ‘허다한’이란 뜻이지 나쁜 뜻은 결코 아닙니다. ‘잡상인’도 딱히 특정한 품목이 아니라 잡다한 물건을 파는 상인’이란 뜻인데 이게 어찌하다 ‘잡스러운 사람’을 뜻하는 느낌이 되어 버렸는지… ㅡ.ㅡ)을 가진 겨레나 그런 문화를 가진 곳은 숱하게 많은 데 어찌 하여 그리스, 로마의 잡신 사상만은 높게 처져서 그냥 ‘잡신’, 여느 ‘귀신’이 ‘신’과 같은 높이로 올라가고 그래서 세계 곳곳으로 퍼지게 되었을까요?(사실 이렇게 널리 퍼진 잡신 사상이 그리스 로마 잡신 이야기 뿐만은 아니고, 딴 보기를 들자면 인도의 잡신 이야기도 꽤 널리 퍼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잡신 사상’ 혹은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사상이라고 하면 우리도 결코 빠지지 않습니다.
위로는 옥황상제로 부터 가까이로는 집 터를 지키주는 귀신이 있고 집(채)을 지켜주는 귀신, 또 부엌을 지키는 신, 아궁이(불)를 지키는 신이 있는가 하면 하다 못해 부지깽이, 빗자루에도 귀신이 들고 제가 어릴 때 삐져서 구석에 웅크리고 있으면 할아버지께서는 ‘구석 할마이-할머니-가 잡아 간다’고 장난을 치시곤 했습니다. 또 옛 우리 신화, 설화에서 큰 역할을 하는 마고할미가 있는가 하면, 태어날 때는 삼신할미의 점지를 받아야 했고, 죽으면 저승사자가 데려가고, 무당들은 큰 인물의 귀신을 받아들여 신통력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세계 여러 곳에, 숱하게 많은 잡신 사상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가 우뚝 솟은 것은 바로 전체를 꿰뚫어 틀거리가 제대로 만들어 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 거리는 단지 모양새로써 뿐만이 아니라 재미와 흥미를 드높였다고 봅니다.

커피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리스, 로마 잡신 얘기를 꺼낸 것은, 마치 그리스, 로마 잡신 이야기가 틀거리를 이루고 그것이 흥미와 재미를 드높였듯이, 커피를 즐기게 된 과정이 바로 문화의 틀거리를 이루고 그것이 커피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드높이게 된 것과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요즘은 커피를 즐긴다 하는 왠만한 사람도 커피의 맛과 향, 질에 대해서 한 두 마디 씩은 다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받아들이기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즐기는 자리로 옮겨왔다고 봐야겠지요.)

그렇다면 동양의 차나 우리나라의 차는 과연 커피 만큼 맛이 안 될까요? 왜 그런 재미가 없을까요?
먼저 동양의 차는 상당히 정적이라고 볼 수 있고 이 정적인 면이 요즘 현대 생활과 거리감이 생기게 되는 까닭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저는 서양의 커피는 서양화 같고, 동양의 차는 동양화(수묵화?)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딱히 서양화와 동양화라고 값매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견주자면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커피는 좀 더 강렬한 색채와 자잘한 표현과 빈틈없는 색칠로 재미를 주는가 하면, 차는 가끔은 그린 듯 안 그린 듯한 채색과 군데군데 비어있는 여백, 하지만 깊이 보다보면 우러나오는 재미, 그리고 생각의 틈[여지]이 있습니다.

서양 커피를 두고는 이래서 좋다, 이래서 안 좋다 하는 연구들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동양 차는 인기가 높지 않은 만큼 그런 것이 덜 알려지고 그러다 보니 연구하는 이도 적고 그러니 더욱 숨겨진 부분이 많은 듯합니다. 동양 차 역시도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그런 약리 작용이 큽니다. 동양 차 역시도 어디서 난 차인지, 어떻게 다룬[법제] 것인지, 언제 딴 것인지, 어떤 차 갈래인지에 따라 맛이 다르고 몸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고 약리 작용 또한 다릅니다.
오히려 그냥 마실거리로서가 아니라 약이라는 점에서는 커피보다도 그 효용이 넓고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안타깝게도 알려진 바가 적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나 서양 커피보다 뛰어난 동양 차가 왜 서양 커피에 밀릴까요?
그것이 바로 이야기거리를 못 만들고 재미거리를 뒷받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차-흔히 보는 ‘현미녹차’ 같은 것은 ‘대용 차’라고 하지 ‘차’에 끼이지 못합니다. 마치 제대로 된 커피를 찾는 이들에게 ‘인스턴트 커피’는 ‘커피’가 아니듯이…-를 처음 접하는 이들은 흔히 (진짜배기)’차’라고 하면 ‘다도’를 떠올립니다.
뭔가 자세를 잡고 앉아서 어떤 절차와 예절을 따르고 차를 내리는 특별한 비법이나 방식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흔히 말하는 ‘다도’라고 하는 것은 차를 즐기는 수많은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 그것이 결코 정석도, 표준도 아닙니다.
커피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쉽게 차를 내려 마실 수 있지만,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차를 아는 사람과 함께 마시면 나름의 맛과 재를 느낄 수 있는 것 뿐입니다.

커피가 사실 ‘커피’라고 하기에도 뭣한, 좀 심하게 말하면 가짜 커피 ‘인스턴트 커피’, 흔히 말하는 ‘다방 커피’, ‘봉지 커피’에서 시작했듯, 차 역시도 흉내만 낸 차, 가짜 차 같은 것도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어떻던지 간에 널리, 많이 즐기다 보면 그 가운데서 제 맛, 제 값어치를 찾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대중화된 차와 좀 더 나은 차 문화가 서로 끌며 밀며 상승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 봅니다.
여튼 온갖가지로 즐기다 보면 좀더 나은, 좀더 제대로인 것을 찾게 될테고 그렇게 마당을 넓혀 가는 것이 이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차를 하시는 분들은 나름 고집이 있고 자존심이 있는 분들이라 이런 것을 싫어하는 편입니다. 헌데 모르긴 몰라도 제대로 된 커피를 하시는 분들이 보기에는 아마도 인스턴트 커피가 먼저 사람을 입맛을 길들이고 퍼져 나가는 것도 무척 못마땅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는 커피 역시도 그 세력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동양 차 역시도 제대로 된 동양 차의 맛을 지키고 개발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참말로 ‘어쩔 수 없이’입니다. 이는 결코 올바르다 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 제대로 된 고갱이가 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곁다리, 짜가들도 많을 수 밖에 없더라는 현실론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산이 높기 위해서는 그 봉우리만 우뚝 설 수는 없고 많은 곁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수많은 자락에 하많은 흙들을 딛어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 바탕 위에서 차의 효용과 효능이 더 많이, 더 깊이 연구된다면 단지 차가 널리 퍼지는 것 뿐만 아니라 마니아를 만들어 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확실히 서양 커피는 기를 치솟게 하고 정(情)을 치솟게 하는 현대 생활의 리듬에 맞는 면이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너무 들뜨게 되는 생활 리듬을 차분하게 해 주는 차도 큰 매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서양 커피는 동양화 같고 동양 차는 동양 수묵화 같습니다.
서양 커피는 기가 솟구치는 어린이 같고 동양 차는 원숙한 어른 같습니다.

기를 치받아 올리고자 할 때는 커피를 마시고, 기를 가라앉히고자 할 때는 차를 마십니다.(명상은 단지 결과를 통해서 만이 아니라 가부좌를 틀고 손을 모으고 앉는 그 과정을 통해서 이미 결과를 반쯤은 얻는 것입니다.

  • 어차피 저는 커피 전문가도 아니고 차 고수도 아닙니다. 논리야 저 나름이지만 논리를 폄에 있어 비약이 있거나, 근거가 약하거나, 잘 이해가 안 되는 데가 있다면 귀띔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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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커피 – 문화가 사람에게 스미는 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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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확실히 커피가 대세로 자리잡은 모양입니다. 심지어 절에 계신 스님도 커피를 내준다는 말도 있으니…^^
저는 제 동무들과 만나면 ‘차’를 가끔 마시는데, 과연 문화라는 측면에서 ‘차’와 ‘커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서양 것이다 보니 좀 더 있어 보이고 한 것도 커피를 더 널리 마시게 된 까닭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커피’라는 ‘문화’가 널리 퍼질 수 있었던 데에는 충분히 그럴 만한,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까닭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먼저 우리에게 있어 ‘차’와 ‘커피’를 한번 견줘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차’라 하면 아마도 ‘다도’부터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물론 제가 제 동무들과 차를 마실 때는 결코 그렇게 마시지 않습니다. 그냥 술 마시듯이, 커피 마시듯이 마십니다.)
차의 ‘밍밍함’과 함께 이런 절차가 차를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큰 까닭이 된다고 봅니다.

그에 견줘 ‘커피’는, 우선 우리는 가짜 커피(이른바 인스턴트 커피)를 통해 ‘커피’라는 이름-알맹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어릴 때 먹던 ‘소시지’와 진짜 ‘소시지’가 결코 같지 않듯이 커피 맛과 향을 낸 것과 진짜 우려낸 커피는 같다고 하기 어려운 것처럼…-을 익혀 왔고 요즘은 이런 저런 통로를 통해서 우려낸 진짜배기 커피를 맛 볼 기회가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커피의 참맛을 느끼고 찾을 가능성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저만 해도 옛날에는 커피-물론 그 때는 인스턴트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았고 가끔은 배탈까지도 나고 그랬습니다만, 요즘은 쓰거나 맛이 색다른 커피도 제 나름의 맛을 느끼곤 합니다.(제 나름의 맛을 느낀다는 뜻이지 그렇다고 품평을 할 만큼은 못 됩니다만,…)
그리고 커피를 마시다 보면 커피콩에 따라, 볶는 법에 따라, 물을 내리는 방법에 따라서 서로 다른 맛을 낸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나 역시도 한번 내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여러가지 기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볶는 법이나 생산지까지 따지게 되고… 그렇게 관심을 넓히고 깊게 만들어 가게 됩니다.

이것을 ‘차’에 맞춰 보면, ‘다도’같은 턱도 없는 절차 같은 데에 얽매이지 않고, 마치 ‘인스턴트 커피’ 같은 엉터리 차도 좀 있고, 중국처럼 아무 때나 마시는 것으로 느끼다 보면 엉터리 차와 진짜배기 차의 차이를 느끼기 시작할 테고 그러다 보면 차 종류에 따라, 생산지에 따라, 우리는 방법에 따라 서로 다른 맛이 나고 심지어는 차마다 몸에 미치는 약리 작용이 서로 다르다는 것까지 알다보면 차를 물처럼, 약처럼도 마시게 될 것입니다.
결국은, 차를 너무 정통을 지키고 질을 지키려고만 하기 보다는 널리 마시다 보면 차를 느끼는 문화도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커피도 마찬가지지만, 그것이 몸에 안 맞거나 입에 안 맞는 사람을 빼고는 차를 마시다 보면 차 역시도 내 취향도 있고 나름의 맛과 향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확실히 ‘커피’는 ‘차’에 견줘서는 젊은 사람 쪽이 더 좋아 할 만한 강렬함(?)이 있지만, ‘차’는 마치 동양화 같은 여백과 은은함이 있습니다.(가끔은 차에 따라 나름의 강렬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만,…)

딴겨레말글 솜씨가 아니라 두려움이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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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딴 나라에 머물다 보면, 정작 내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은, 형편없는 내 딴겨레 말글 솜씨가 아니라, 이른 바 교육자란 작자들이 내게 심어 준 ‘두려움’이라는 허깨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쩌다 때를 만나 딴 나라 사람과 얘기할라 치면 땀이 나고 몸이 굳고 알던 낱말이나 표현조차 안 떠오르기도 하지만 얘길 나누다 보면 엉터리 딴겨레 말글 솜씨로도 30분 쯤 수다를 떠는 것은 그리 큰 일도 아니었다.(게다가 여행하면서 만난 딴 나라 여행자들 가운데서는 내가 딴 겨레 말글을 잘 하지 못 한다는 것을 너그러이 받아들여 주거나 쉬운 표현으로 말해 주는 이도 많다.)
네게 딴겨레 말글을 가르친 선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오히려 어줍잖게 아는 딴겨레 말글 솜씨는 더 위험하거나 이것이 옳은 말일까를 지레 걱정하게 만들어 오히려 제 솜씨를 다 쓸 수 없게 만들더라.(어줍잖은 솜씨보다 얼굴에 깐 철판이 훨씬 도움이 되더라.)
그러니 영어 가르친다면서 겁부터 주는 놈이 있거든 따귀부터 한 내 올리고 시작할 일이다. ^^

딴겨레말글 두려움

덧붙임. 그보다는 차라리 영어에 미쳐 애 쓰는 것에 반에 반 만 우리말을 제대로 하고 제대로 듣고 올바르게 말하는 데에 들인다면 우리 나라가 훨씬 좋은 나라가 되지 않았을런지,…

* 덧붙임 2. 그리고 마침내는 우리 문화 가운데 가장 큰 줄기인 우리 말글에 대한 열등감, 그로부터 우리 문화에 대한 열등감, 나아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으로 이어지는 것이 가장 크고 깊은 탈이라 봅니다.

이름 때문에 생긴 일… 그리고 우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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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19금” 이야기. 딴 데서는 이렇게만 해도 다 용서 되더라… 심지어 온 가족이 보는 바보상자에서도…]

<이름 때문에 생긴 일…>

제 사촌 가운데 이름이 ‘성기’인 이가 있습니다.(여러분도 딱 들으니 뭔가가 떠오르지요?)
예, 그것 때문에 탈이 생긴 얘기입니다.
어릴 때도 그것 때문에 놀림을 좀 받았다는데,…
사실 어릴 때는 어떻게든 갖다 붙여서 놀립니다.(심지어 어떤 이는 ‘주’씨 성에 다만 두세번째 이름자가 지읒으로 시작한다는 것 때문에 별로 비슷하지도 않은 ‘주전자’란 별명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친하자고 혹은 놀리자고 어떻게든 갖다 붙이는 데에는 뺄 재간이 없는 겁니다.)
하지만 애가 크고 보니, 아버지 이름이 ‘거시기’라고 좀 놀림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름을 잘도 바꿔 주겠다, 그 참에 바꿨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경상도에서는 제 사촌 이름은 높았다 낮아지는 소리새이고 남자 거시기는 낮다가 살짝 높아지는 소리새로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이게 경상도 소리 가락이 약해지다 보니 두드러져 들리는 것입니다.
다른 보기로, 우리는 요즘 종종,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구’ 다음에 ‘열’이라고 합니다.
‘십’이란 소리새가 여자 거시기 이르는 말하고 비슷하다는 거지요.
소리가락도 살짝 다를 뿐만 아니라 경상도 사람이 아니어도 ‘십’과 ‘씹’은 버젓이 다른데도 말이지요.(아, 물론… 요즘 말 뽄새가 좀 세지긴 했지요… 뭐든지 세게 세게…)
그러면서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예 남자 부끄리를 ‘페니스’라고 하지요. ‘페니스’는 예사 이름씨고 ‘자지’는 욕이 되는 세상… ㅜ.ㅜ
게다가 ‘뻑큐’나 가운데 손가락은 잘도 치켜 세우더만요…(아마 옛날 욕몸짓은 푸름이 가운데는 아는 이가 별로 없을 걸요…)
아, 그렇다고 걔들한테 뭐라 그러지 맙시다.
다 우리 세대가 가르쳐 준 거잖아요?(그대는 나는 아닌데 ‘우리’는 맞습니다.) 방송이나 여러 문화 매체를 통해서 말이지요…
어쩌면 요즘 푸름이들 가운데서는, 일본을 통일시킨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마도 ‘왕건’보다 훨씬 친숙한 이들도 있을 껄요?(‘왕건’이 뭐냐고 물으면 ‘왕건더기’라고 답하는 이도 있을 듯…^^)
혹시 요즘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뭘 보고 커는지 모르시는 분도 계신가요? 요즘 애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ㅎㅎㅎ

이렇게 우리말과, 그 밖에도 우리 것을 점점 멀리 하다 보면 어쩌면 저 아버지, 할아버지 보다 옆집 아저씨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날이 오겠지요?

* 얼숲에 올린 글 보기

우리나라 만이 가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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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거리에 나가보면 영어(로마자) 간판이 넘쳐 납니다.
하다못해 위험 표시를 영어로만 해 놓은 것도 있습니다.
영어를 쓰는 딴나라사람에게는 어쩌면 좀 편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딴 나라에 나가면 그 곳 문화를 느끼고 싶습니다.
그 곳 음식을 맛 보고, 그 곳 정서를 느끼고, 거기 사는 사람들이 먹는 것을 먹고 거기 사람들과 함께 차 타면서 부대끼고…

한국에 온 영어를 쓰는 딴나라 사람들은, 한국에 넘쳐나는 영어 간판을 보고 좋아라 할까요?
글쎄,… 여러분 생각은? ^^

* 어떤 곳에 갔는데 그 곳이 굳이 그 곳에 가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것이거나 이곳 저곳을 얼치기 베낀 것이라면 어떨까요… 마치 옛날 우리나라 관관기념품처럼… 온 나라 어딜 가나 똑 같던…^^;;
제가 ‘경주’를 갈 때는 ‘경주’를 느끼고 싶어서지, 거기서 ‘서울’을 느끼고 싶어서는 결코 아닙니다.(물론 약간 뒤섞일 수는 있겠지만요…)

* 얼숲에 올린 글 보기

문화는 고갱이다. 문화가 없는 요즘 우리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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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등불잔치[등축제]를 하는 것이 진주에서 하는 등불잔치를 베낀 것이고 문화를 홀로 차지하려는 짓이 아니냐는 기사가 떴다. – 그 글 보기(서울에 뿔난 진주… “박원순 시장님, ‘표절’ 등축제 그만!”)
나도 뭔가 남이 해서 잘 된다 싶으면 마구잡이로 베끼는 짓은 하지 말았으면 싶다.
그런데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은 오히려 진주 고을을 탓하고 서울을 싸고 도는 글들이 거진 대부분이다.
어쨋든 그 말들도 일리는 있다.(덧붙이자면, 등불잔치를 누가 홀로 차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남이 베낀다고 뭐라 하기에 앞서 남이 베낄 수 없을 만큼 좀 더 나아져야 한다는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마구잡이로 베끼는 것을 경계하고 서울시가 진주에서 하는 것과 비슷한 잔치를 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것은, 서울은 여러가지 많은 밑천[자산]-인지도, 사람수, 돈,…-을 가졌는데 작은 고을과 앞뒤를 다툰다면 제대로 된 겨룸이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누구나 자기가 하고픈 어떤 장사라도 할 수 있지만, 소상인을 살리기 위해 대기업이 아무 장사나 할 수 없도록 하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요즘 우리가 내세우는 것들이, 남들이 쉽게 베낄 수 있는 것들 밖에 없다는 것이다.
좀 다른 얘기로, 우리가 아무리 ‘엄청난 발전’이라고 주장을 하더라도, ‘기술'(혹은 ‘기능’)에 기댄 것들은 남들이 금방 따라잡을 수 있고 또 베낄 수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과 전통에 따른 문화가 배어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쉽게 베껴서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기술'(미안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잔재주'[기교])은 있지만 ‘문화’는 없다.

* 제 글을 찬찬히 끝까지 읽고서 하는 딴죽은 어떤 것이라도 반깁니다.(아울러 짧게 쓰느라 모든 면을 다 얘기한 것도 아니니 뜻으로 받아들여 주시고 넘겨짚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 우리 겨레 얼이 끊기고 있는 것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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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해끝이 되고 ‘예수 태어난 날’이 되었습니다.
이 맘때면 여기저기에 ‘메리 크리스마스’-게다가, 이 말은 주로 영어로 쓰지요…^^;-에 젊은이들은 각종 모임에, 깜짝잔치까지…

그런데 가만히 보면, 서양 것에 사죽을 못 쓰는 일본사람보다 우리가 더 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본이 서양 것 좋아하는 것은 여러가지로 알 수가 있는데, 그럼에도 그들은 또 어떤 것들은 외곬스럽게 제 것을 지킵니다.
지금도 명절 때면 그 불편한 기모노를 차려입는 걸 마다 하지 않고-요즘 젊은이들은 좀 싫어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종교를 믿는 것도 아니면서 절에는 꼭꼭 가서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지금도 일본 시골에는 전통 집채가 많이 남아 있고요…
물론 더 파보면 그렇지 않은 것도 많겠지만요…

그런데 우리 모습을 견줘 보자면,
옛날 그 많던 옛날 얘기들은 다 잃어버리고 학교에서는 서양 얘기들만 배웁니다.
그 많던 귀신 얘기들도 더 이상 전해지지 않고, 그리스, 로마 신화 얘기만 읽지요.(그리스, 로마 얘기에서는 ‘신’이라 하고 우리 옛 얘기에서는 ‘귀신’이라 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그 흔한 신들도 결국은 우리나라 뭇신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마고, 서왕모 신화는 물론이고 삼신할미조차도 뭇 잡신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서양 귀신과 우리 신을 다르게 보[차별]는 것도 사대주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얽힌 일이 많긴 해도, 불교가 들어와서는 불교 판, 유학이 들어와서는 유학 판, 그러다 서양 기독교가 들어오니 이제는 기독교 판-밤에 서울 밤풍경을 보시라…-입니다.
그 사이에, 역사가 더 오랜 우리 전통 무속은 ‘미신’-우리 사투리로는 ‘쇠삽’-이라면서 온갖 궂은 일을 당했지요.(뭐 따로 떨어져서 보자면 헛된 믿음이기는 매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말이지요…^^)
또, 때마다 쇠던 그 많던 우리 날들은 다 잊고 이제는 서양 날들을 쇠고 있지요.
(아마도 이제는 ‘쥐불놀이’를 아는 이도 많지 않겠지요…? 그나마 요즘도 가끔 하는 민속놀이로는, 윷놀이 쯤?)

그리고, 제가 요즘 눈길을 주고 있는 우리말,…
그 말이 다만 ‘우리’ 말이어서가 아니라 그 속에 우리 얼과 생각이 녹아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는데,
우리 말을 틀리는 것은 아주 가끔씩 창피한 일이고 우리말을 바르게 잘 쓰려는 이는 별로 없습니다.(가끔 있는 이들도 대부분은 띄어쓰기, 맞춤법에 엉터리 표준말-즉 고을말인 사투리를 골라내는 것 같은-을 바루는 것에만 눈길을 줍니다.)
학생들도 엉터리 우리말을 해도 별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뿐더러 그냥 귀여운 허물로 볼 뿐입니다.
그에 견줘, 한자를 틀리거나 영어를 틀리는 것은 값냥[수준]을 다시 보도록 하기도 합니다.

과연 이제는 무엇을 가지고 옛부터 이어져 오던 그 겨레라 하겠습니까.
피? 얼이룸[문화]? 말과 글?…
지금 우리가, 옛날 곰과 호랑이 신화를 믿던 그 겨레라고 무엇으로 밝힐 수 있을까요? 무엇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