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커피 – 문화가 사람에게 스미는 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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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확실히 커피가 대세로 자리잡은 모양입니다. 심지어 절에 계신 스님도 커피를 내준다는 말도 있으니…^^
저는 제 동무들과 만나면 ‘차’를 가끔 마시는데, 과연 문화라는 측면에서 ‘차’와 ‘커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서양 것이다 보니 좀 더 있어 보이고 한 것도 커피를 더 널리 마시게 된 까닭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커피’라는 ‘문화’가 널리 퍼질 수 있었던 데에는 충분히 그럴 만한,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까닭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먼저 우리에게 있어 ‘차’와 ‘커피’를 한번 견줘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차’라 하면 아마도 ‘다도’부터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물론 제가 제 동무들과 차를 마실 때는 결코 그렇게 마시지 않습니다. 그냥 술 마시듯이, 커피 마시듯이 마십니다.)
차의 ‘밍밍함’과 함께 이런 절차가 차를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큰 까닭이 된다고 봅니다.

그에 견줘 ‘커피’는, 우선 우리는 가짜 커피(이른바 인스턴트 커피)를 통해 ‘커피’라는 이름-알맹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어릴 때 먹던 ‘소시지’와 진짜 ‘소시지’가 결코 같지 않듯이 커피 맛과 향을 낸 것과 진짜 우려낸 커피는 같다고 하기 어려운 것처럼…-을 익혀 왔고 요즘은 이런 저런 통로를 통해서 우려낸 진짜배기 커피를 맛 볼 기회가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커피의 참맛을 느끼고 찾을 가능성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저만 해도 옛날에는 커피-물론 그 때는 인스턴트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았고 가끔은 배탈까지도 나고 그랬습니다만, 요즘은 쓰거나 맛이 색다른 커피도 제 나름의 맛을 느끼곤 합니다.(제 나름의 맛을 느낀다는 뜻이지 그렇다고 품평을 할 만큼은 못 됩니다만,…)
그리고 커피를 마시다 보면 커피콩에 따라, 볶는 법에 따라, 물을 내리는 방법에 따라서 서로 다른 맛을 낸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나 역시도 한번 내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여러가지 기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볶는 법이나 생산지까지 따지게 되고… 그렇게 관심을 넓히고 깊게 만들어 가게 됩니다.

이것을 ‘차’에 맞춰 보면, ‘다도’같은 턱도 없는 절차 같은 데에 얽매이지 않고, 마치 ‘인스턴트 커피’ 같은 엉터리 차도 좀 있고, 중국처럼 아무 때나 마시는 것으로 느끼다 보면 엉터리 차와 진짜배기 차의 차이를 느끼기 시작할 테고 그러다 보면 차 종류에 따라, 생산지에 따라, 우리는 방법에 따라 서로 다른 맛이 나고 심지어는 차마다 몸에 미치는 약리 작용이 서로 다르다는 것까지 알다보면 차를 물처럼, 약처럼도 마시게 될 것입니다.
결국은, 차를 너무 정통을 지키고 질을 지키려고만 하기 보다는 널리 마시다 보면 차를 느끼는 문화도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커피도 마찬가지지만, 그것이 몸에 안 맞거나 입에 안 맞는 사람을 빼고는 차를 마시다 보면 차 역시도 내 취향도 있고 나름의 맛과 향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확실히 ‘커피’는 ‘차’에 견줘서는 젊은 사람 쪽이 더 좋아 할 만한 강렬함(?)이 있지만, ‘차’는 마치 동양화 같은 여백과 은은함이 있습니다.(가끔은 차에 따라 나름의 강렬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만,…)

딴겨레말글 솜씨가 아니라 두려움이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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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딴 나라에 머물다 보면, 정작 내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은, 형편없는 내 딴겨레 말글 솜씨가 아니라, 이른 바 교육자란 작자들이 내게 심어 준 ‘두려움’이라는 허깨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쩌다 때를 만나 딴 나라 사람과 얘기할라 치면 땀이 나고 몸이 굳고 알던 낱말이나 표현조차 안 떠오르기도 하지만 얘길 나누다 보면 엉터리 딴겨레 말글 솜씨로도 30분 쯤 수다를 떠는 것은 그리 큰 일도 아니었다.(게다가 여행하면서 만난 딴 나라 여행자들 가운데서는 내가 딴 겨레 말글을 잘 하지 못 한다는 것을 너그러이 받아들여 주거나 쉬운 표현으로 말해 주는 이도 많다.)
네게 딴겨레 말글을 가르친 선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오히려 어줍잖게 아는 딴겨레 말글 솜씨는 더 위험하거나 이것이 옳은 말일까를 지레 걱정하게 만들어 오히려 제 솜씨를 다 쓸 수 없게 만들더라.(어줍잖은 솜씨보다 얼굴에 깐 철판이 훨씬 도움이 되더라.)
그러니 영어 가르친다면서 겁부터 주는 놈이 있거든 따귀부터 한 내 올리고 시작할 일이다. ^^

딴겨레말글 두려움

덧붙임. 그보다는 차라리 영어에 미쳐 애 쓰는 것에 반에 반 만 우리말을 제대로 하고 제대로 듣고 올바르게 말하는 데에 들인다면 우리 나라가 훨씬 좋은 나라가 되지 않았을런지,…

* 덧붙임 2. 그리고 마침내는 우리 문화 가운데 가장 큰 줄기인 우리 말글에 대한 열등감, 그로부터 우리 문화에 대한 열등감, 나아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으로 이어지는 것이 가장 크고 깊은 탈이라 봅니다.

이름 때문에 생긴 일… 그리고 우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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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19금” 이야기. 딴 데서는 이렇게만 해도 다 용서 되더라… 심지어 온 가족이 보는 바보상자에서도…]

<이름 때문에 생긴 일…>

제 사촌 가운데 이름이 ‘성기’인 이가 있습니다.(여러분도 딱 들으니 뭔가가 떠오르지요?)
예, 그것 때문에 탈이 생긴 얘기입니다.
어릴 때도 그것 때문에 놀림을 좀 받았다는데,…
사실 어릴 때는 어떻게든 갖다 붙여서 놀립니다.(심지어 어떤 이는 ‘주’씨 성에 다만 두세번째 이름자가 지읒으로 시작한다는 것 때문에 별로 비슷하지도 않은 ‘주전자’란 별명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친하자고 혹은 놀리자고 어떻게든 갖다 붙이는 데에는 뺄 재간이 없는 겁니다.)
하지만 애가 크고 보니, 아버지 이름이 ‘거시기’라고 좀 놀림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름을 잘도 바꿔 주겠다, 그 참에 바꿨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경상도에서는 제 사촌 이름은 높았다 낮아지는 소리새이고 남자 거시기는 낮다가 살짝 높아지는 소리새로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이게 경상도 소리 가락이 약해지다 보니 두드러져 들리는 것입니다.
다른 보기로, 우리는 요즘 종종,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구’ 다음에 ‘열’이라고 합니다.
‘십’이란 소리새가 여자 거시기 이르는 말하고 비슷하다는 거지요.
소리가락도 살짝 다를 뿐만 아니라 경상도 사람이 아니어도 ‘십’과 ‘씹’은 버젓이 다른데도 말이지요.(아, 물론… 요즘 말 뽄새가 좀 세지긴 했지요… 뭐든지 세게 세게…)
그러면서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예 남자 부끄리를 ‘페니스’라고 하지요. ‘페니스’는 예사 이름씨고 ‘자지’는 욕이 되는 세상… ㅜ.ㅜ
게다가 ‘뻑큐’나 가운데 손가락은 잘도 치켜 세우더만요…(아마 옛날 욕몸짓은 푸름이 가운데는 아는 이가 별로 없을 걸요…)
아, 그렇다고 걔들한테 뭐라 그러지 맙시다.
다 우리 세대가 가르쳐 준 거잖아요?(그대는 나는 아닌데 ‘우리’는 맞습니다.) 방송이나 여러 문화 매체를 통해서 말이지요…
어쩌면 요즘 푸름이들 가운데서는, 일본을 통일시킨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마도 ‘왕건’보다 훨씬 친숙한 이들도 있을 껄요?(‘왕건’이 뭐냐고 물으면 ‘왕건더기’라고 답하는 이도 있을 듯…^^)
혹시 요즘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뭘 보고 커는지 모르시는 분도 계신가요? 요즘 애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ㅎㅎㅎ

이렇게 우리말과, 그 밖에도 우리 것을 점점 멀리 하다 보면 어쩌면 저 아버지, 할아버지 보다 옆집 아저씨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날이 오겠지요?

* 얼숲에 올린 글 보기

우리나라 만이 가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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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거리에 나가보면 영어(로마자) 간판이 넘쳐 납니다.
하다못해 위험 표시를 영어로만 해 놓은 것도 있습니다.
영어를 쓰는 딴나라사람에게는 어쩌면 좀 편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딴 나라에 나가면 그 곳 문화를 느끼고 싶습니다.
그 곳 음식을 맛 보고, 그 곳 정서를 느끼고, 거기 사는 사람들이 먹는 것을 먹고 거기 사람들과 함께 차 타면서 부대끼고…

한국에 온 영어를 쓰는 딴나라 사람들은, 한국에 넘쳐나는 영어 간판을 보고 좋아라 할까요?
글쎄,… 여러분 생각은? ^^

* 어떤 곳에 갔는데 그 곳이 굳이 그 곳에 가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것이거나 이곳 저곳을 얼치기 베낀 것이라면 어떨까요… 마치 옛날 우리나라 관관기념품처럼… 온 나라 어딜 가나 똑 같던…^^;;
제가 ‘경주’를 갈 때는 ‘경주’를 느끼고 싶어서지, 거기서 ‘서울’을 느끼고 싶어서는 결코 아닙니다.(물론 약간 뒤섞일 수는 있겠지만요…)

* 얼숲에 올린 글 보기

문화는 고갱이다. 문화가 없는 요즘 우리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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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등불잔치[등축제]를 하는 것이 진주에서 하는 등불잔치를 베낀 것이고 문화를 홀로 차지하려는 짓이 아니냐는 기사가 떴다. – 그 글 보기(서울에 뿔난 진주… “박원순 시장님, ‘표절’ 등축제 그만!”)
나도 뭔가 남이 해서 잘 된다 싶으면 마구잡이로 베끼는 짓은 하지 말았으면 싶다.
그런데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은 오히려 진주 고을을 탓하고 서울을 싸고 도는 글들이 거진 대부분이다.
어쨋든 그 말들도 일리는 있다.(덧붙이자면, 등불잔치를 누가 홀로 차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남이 베낀다고 뭐라 하기에 앞서 남이 베낄 수 없을 만큼 좀 더 나아져야 한다는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마구잡이로 베끼는 것을 경계하고 서울시가 진주에서 하는 것과 비슷한 잔치를 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것은, 서울은 여러가지 많은 밑천[자산]-인지도, 사람수, 돈,…-을 가졌는데 작은 고을과 앞뒤를 다툰다면 제대로 된 겨룸이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누구나 자기가 하고픈 어떤 장사라도 할 수 있지만, 소상인을 살리기 위해 대기업이 아무 장사나 할 수 없도록 하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요즘 우리가 내세우는 것들이, 남들이 쉽게 베낄 수 있는 것들 밖에 없다는 것이다.
좀 다른 얘기로, 우리가 아무리 ‘엄청난 발전’이라고 주장을 하더라도, ‘기술'(혹은 ‘기능’)에 기댄 것들은 남들이 금방 따라잡을 수 있고 또 베낄 수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과 전통에 따른 문화가 배어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쉽게 베껴서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기술'(미안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잔재주'[기교])은 있지만 ‘문화’는 없다.

* 제 글을 찬찬히 끝까지 읽고서 하는 딴죽은 어떤 것이라도 반깁니다.(아울러 짧게 쓰느라 모든 면을 다 얘기한 것도 아니니 뜻으로 받아들여 주시고 넘겨짚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 우리 겨레 얼이 끊기고 있는 것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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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해끝이 되고 ‘예수 태어난 날’이 되었습니다.
이 맘때면 여기저기에 ‘메리 크리스마스’-게다가, 이 말은 주로 영어로 쓰지요…^^;-에 젊은이들은 각종 모임에, 깜짝잔치까지…

그런데 가만히 보면, 서양 것에 사죽을 못 쓰는 일본사람보다 우리가 더 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본이 서양 것 좋아하는 것은 여러가지로 알 수가 있는데, 그럼에도 그들은 또 어떤 것들은 외곬스럽게 제 것을 지킵니다.
지금도 명절 때면 그 불편한 기모노를 차려입는 걸 마다 하지 않고-요즘 젊은이들은 좀 싫어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종교를 믿는 것도 아니면서 절에는 꼭꼭 가서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지금도 일본 시골에는 전통 집채가 많이 남아 있고요…
물론 더 파보면 그렇지 않은 것도 많겠지만요…

그런데 우리 모습을 견줘 보자면,
옛날 그 많던 옛날 얘기들은 다 잃어버리고 학교에서는 서양 얘기들만 배웁니다.
그 많던 귀신 얘기들도 더 이상 전해지지 않고, 그리스, 로마 신화 얘기만 읽지요.(그리스, 로마 얘기에서는 ‘신’이라 하고 우리 옛 얘기에서는 ‘귀신’이라 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그 흔한 신들도 결국은 우리나라 뭇신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마고, 서왕모 신화는 물론이고 삼신할미조차도 뭇 잡신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서양 귀신과 우리 신을 다르게 보[차별]는 것도 사대주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얽힌 일이 많긴 해도, 불교가 들어와서는 불교 판, 유학이 들어와서는 유학 판, 그러다 서양 기독교가 들어오니 이제는 기독교 판-밤에 서울 밤풍경을 보시라…-입니다.
그 사이에, 역사가 더 오랜 우리 전통 무속은 ‘미신’-우리 사투리로는 ‘쇠삽’-이라면서 온갖 궂은 일을 당했지요.(뭐 따로 떨어져서 보자면 헛된 믿음이기는 매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말이지요…^^)
또, 때마다 쇠던 그 많던 우리 날들은 다 잊고 이제는 서양 날들을 쇠고 있지요.
(아마도 이제는 ‘쥐불놀이’를 아는 이도 많지 않겠지요…? 그나마 요즘도 가끔 하는 민속놀이로는, 윷놀이 쯤?)

그리고, 제가 요즘 눈길을 주고 있는 우리말,…
그 말이 다만 ‘우리’ 말이어서가 아니라 그 속에 우리 얼과 생각이 녹아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는데,
우리 말을 틀리는 것은 아주 가끔씩 창피한 일이고 우리말을 바르게 잘 쓰려는 이는 별로 없습니다.(가끔 있는 이들도 대부분은 띄어쓰기, 맞춤법에 엉터리 표준말-즉 고을말인 사투리를 골라내는 것 같은-을 바루는 것에만 눈길을 줍니다.)
학생들도 엉터리 우리말을 해도 별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뿐더러 그냥 귀여운 허물로 볼 뿐입니다.
그에 견줘, 한자를 틀리거나 영어를 틀리는 것은 값냥[수준]을 다시 보도록 하기도 합니다.

과연 이제는 무엇을 가지고 옛부터 이어져 오던 그 겨레라 하겠습니까.
피? 얼이룸[문화]? 말과 글?…
지금 우리가, 옛날 곰과 호랑이 신화를 믿던 그 겨레라고 무엇으로 밝힐 수 있을까요? 무엇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