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살아있는 말가락(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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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時]하고 얽혀 ‘이르다’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때나 곳에 닿다’는 뜻과 ‘어느 때보다 앞서다’는 뜻입니다.(그리고 ‘말하다’는 뜻을 가진 ‘이르다’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다른 꾸미는 말과 함께가 아니라면 그 뜻이 무엇인지 또렷치 않습니다.
그런데 바탕낱말만 가지고도 뜻을 가려 쓸 수가 있습니다.
‘때나 곳에 닿다’ 할 때 ‘이르다’는 중간 높이에서 더 높아졌다가 떨어지는 소리 가락이고, ‘어느 때보다 앞서다’ 할 때 ‘이르다’는 높은 데서 차례로 낮아지면서 나는 소리입니다.(그리고 ‘말하다’는 뜻의 ‘이르다’는 중간 높에서 매우 높아졌다가 떨어지는 소리 가락입니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소리 가락이 있어 말을 가려 쓸 수가 있습니다.
몇몇 고장에서 소리 가락 규칙성이 뒤죽박죽이 되거나 별로 안 가려 쓴다고 해서 있는 것조차 없는 듯이 쓰는 것은 (비록 약해지긴 했지만)우리 말이 가진 성질을 애써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지금도 제주 말과 경상도 일부에 남아있는 아래아 소리값을 17세기에 이미 없어졌다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없는 규칙성도 살려서 우리말을 살려야 할터인데 있는 것조차 없다 치고 연구를 않으니…
우리 스스로 저지르는 우리말 죽이기는 언제까지 이어질런지……

  • 이 글에서 쓴 ‘(말)가락’ 혹은 ‘억양’은 우리가 흔히 아는 한족말 ‘성조’를 갈음하는 우리말이기도 하면서, 한족말 ‘성조’는 주로 소리의 높낮이 만을 이르는 말이지만, 말가락과 억양에는 소리 높낮이 뿐만 아니라 완급 같은 여러가지가 포함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한족말 ‘성조’를 우리말로 옮길 때는 ‘말가락’이나 ‘억양’이라 해야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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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서 가락[억양,성조]은 더없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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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산낙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그것이 무얼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산에서 무슨 낙지가 나는 걸까…?'(‘산[뫼]거머리’가 있단 소리는 들어서 혹시 그런 것과 비슷한 걸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산낙지’를 어떻게 소리 냅니까?
흔히 사람들은 ‘산-‘을 높게 소리냅니다. 그러면 그건 ‘뫼’라는 뜻이 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살아있는 낙지’를 말하려면 ‘산-‘을 바닥을 긁듯 낮춰 소리내야 합니다.
흔히 살아있지만 송장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을 일컬어 ‘산송장’이라 하는데 이 때 ‘산-‘은 낮춰 소리냅니다.
그에 견줘 ‘산마루’할 때 ‘산-‘은 약간 높게 소리냅니다.
다른 보기로, ‘장사’를 첫 낱내(소리마디)에서 높게, 둘째 낱내에서 약간 낮춰 소리내면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을 말하고, 첫 낱내에서 낮다가 둘째 낱내에서 약간 올려 소리내면 힘이 센 사람을 말하며, 첫 낱내에서 더 낮게 바닥을 긁듯 소리내다가 둘째 낱내에서 약간 올려 소리내면 ‘주검을 파묻는다’는 뜻인 한자말이 됩니다.

이렇듯 우리 말에서 ‘소리가락‘[억양]은 무척 중요합니다.
지나[중국] 한족말을 배우다 보면 ‘성조’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말하자면 낱말 하나에 걸맞은 ‘소리가락'[억양]이 아닐까 싶습니다.(그러므로 ‘성조’를 우리말로는 ‘소리가락’ 혹은 낱말 하나에 걸맞은 가락이니 ‘낱말가락’ 같이 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이처럼 중요한 소리가락[억양]을 왜 가르치지 않는 걸까요?
하다못해 나라말글[국어] 가르침이[교사]들 조차도 규칙만 달달 외웠지 우리말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가 많습니다.

말 가락에 따라 말 뜻이 달라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말 가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우리말을 죽이겠다는 뜻 밖에는 안 됩니다.
딴겨레말 떠받들고 우리말 죽이는 국립국어원
우리말[한말] 한마당

* 얼숲에 올린 글 보기

* 덧붙임 1.
얼숲에서 얼숲에서 조민호 님께서 ‘세발낙지’가 발이 세 개인 낙지인 줄 알았다는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 댓글 보기 (아시겠지만, ‘세발낙지’는 ‘가는 발 낙지’라는 뜻입니다. 가늘다는 뜻으로 ‘細’를 말할 때는 약간 높여서 소리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게’도 흔히 말하듯이 낮춰 소리내면 ‘큰 게’라는 뜻이 되고, ‘대나무 게’라는 뜻으로 말하려면 ‘그보다는 약간 높여서 소리내야 합니다.

* 덧붙임 2.
한족말에서 ‘성조’라고 하는 것이 쉽게 말하자면 ‘낱말억양’인데 북한에서는 이걸 ‘소리가락’이라 한다고 해 놨네요. ‘억양’이란 한자말도 (말)’가락’으로 갈음할 수 있겠습니다.

* 덧붙임 3.
다른 보기를 몇 가지 더 들어보겠습니다.
물건을 사고 파는 일을 뜻하는 ‘장사’와 힘이 센 사람을 이르는 ‘장사’와 주검을 묻는 것을 뜻하는 한자말 ‘장사’를 어떻게 구분해서 소리내는지요?
흔히 뜻을 전하려 입으로 내는 소리를 뜻하는 ‘말’과 짐승 한 갈래인 ‘말’
우리는 이것을 단지 낱말 길이로만 배우지만 가락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또, 과일 가운데 하나인 ‘배’와 물 위에 띄워 타는 ‘배’와 사람 장기인 ‘배’와 곱절을 뜻하는 한자말 ‘배’와 잔을 뜻하는 한자말 ‘배’와 절을 뜻하는 한자말 ‘배’와 태, 씨눈을 뜻하는 한자말 ‘배’도 있습니다.
또 장기를 일컫는 ‘눈’과 물기가 얼어 얼음기로 내리는 ‘눈’도 다만 소리 길이로만 배웠지만 사실은 가락으로 더욱 또렷해 지는 말입니다.(약간 높게 소리내면 장기, 위에서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살짝 올리면 하늘에서 내리는 눈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내렸다 올리는 시간 틈 때문에 이걸 긴 소리값으로 친 것 같습니다.)

* 덧붙임 4.
글로 적을 때는 여러가지 기호나 약속을 함께 적을 수 있지만 말에서는 그런 것이 어려운 대신에 서로 구분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수를 쓰게 됩니다.
쉬고 맺고 끊는 것도 그렇고 한족말에서 성조(소리가락) 같은 것도 그렇고 소리의 길고 짧음도 그렇습니다.
우리말 가운데 아직도 여러 고장에서는 소리가락(흔히 ‘억양’이라 하고 ‘성조’하고도 비슷)이 있는데 이것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로지 길고 짧음만 배웠습니다.
심지어 쉬고 맺고 끊는 것조차 어거지 규칙으로 쉼표라는 것으로만 배운 느낌입니다.(요즘은 나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요즘도 바르게 말하기를 가르치는 것 같지는 않으니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쉼표를 찍고 안 찍고하고 얽힘 없이 쉬고 맺고 끊는 걸 잘 해야 말 뜻이 또렷해 집니다.)
그래서 흔히 ‘같은 소리 다른 뜻말'[동음이의어]은 사실 같은 소리가 아니라 그저 비슷한 소리일 뿐인데도 같은 소리말이라 엉터리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그 가운데 아주 가끔 참말로 모든 소리값이 같은 낱말들이 있긴 합니다.)
물론 서울 쪽 분들은 이 소리가락이나 이런 것에서 좀 약한 것 같기는 합니다만, 앞서 썼던 것처럼 다른 고장에서는 글자는 같지만 가락이나 그런 것으로 구분해서 쓰는 말-‘장사’ 같은-도 있고 말 자체가 또렷히 구분되는 말-‘닥’이 아닌 ‘닭’-도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 덧붙임 5.
경상도 말에 남아있는 소리가락[억양]을 한번 즐겨 보시길… – 경상도 사투리 해독법

[옛 낱자를 살리자]우리말 소리가락[성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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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글을 쓰다가 ‘한 사람’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쓴 ‘한’은 ‘사람 하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영어에서 보자면 ‘one’이 아니라 어쩌면 관사 ‘a’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말투에서 살펴보면, 낮게 ‘한’이라 하면 ‘하나’란 뜻이 되지만, 높게 끊어 말하면 ‘낱’이란 뜻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은 적는 수를 잃어버린 우리말 소리가락[성조]하고 얽힌 일이라 봅니다.

또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름’이라는 것이, 어떤 것에 붙은 이름[name]을 말할 때는 약간 높은 데서 뚝 떨어뜨리며 소리를 내는데 견줘, 어떤 것을 일러말하는 이름[naming]을 말할 때는 약간 낮은 데서 시작해서 끝을 살짝 올려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것조차 지금 글자 얼개에서는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알면 알수록 너무나 훌륭한 우리말과 우리글자, 이제는 제대로 살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말[한말] 한마당/ 옛 낱자 되살려 쓰기/ 한글날을 한말글날로 쇠기

* 덧붙임. 방금 다른 데다 댓글을 달다가, ‘name’을 뜻하는 ‘이름’과 달리 ‘naming’, ‘telling’이란 뜻으로 쓸 때는 ‘니름’으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