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영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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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뭐뭐 하기를 원한다’라니…!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뭐뭐 하고 싶다’가 올바른 우리 말투다.
엉터리가 엉터리를 가르치는 것을 ‘교육’이라 부르다니…!
우리 교육을 망치는 것이 바로 ‘우리 스스로’가 아니던가!
엉터리를 엉터리로 가르치고도 바르게 배우고 바르게 자라길 바라나?
차라리 구더기에서 매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 나으리라…

우리말[한말] 한마당

* 얼숲에 올린 글 보기

바른 말글 옮기기[통번역]를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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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일본말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혹 제가 잘못 쓴 데가 있으면 바로잡아 주십시오. 다만, 밑도 없는 딴죽은 마다하겠습니다. 그런 건 일베 누리집에서…^^)
다같이 한자를 쓰는 나라라 하더라도 같은 글자인데도 그대로 옮겨오면 안 되는 말글도 있습니다.
보기를 들어 흔히 알다시피 일본말 ‘大丈夫’는 우리가 쓰는 뜻과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중국말글에서도 ‘汽車’는 열차가 아니라 ‘자동차’를 말하는 것이고, ‘愛人’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누라를 말합니다.
이처럼 같은 한자를 쓰면서도 뜻이 다른 것은 그대로 옮겨올 것이 아니라 그 뜻에 맞게 옮겨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왜!!!
왜 말글을 옮길 때는 일본 한자말이나 중국 한자말은 그대로 옮겨옵니까?
게다가 일본말투나 서양말투 같은 것은 왜 또 그대로 옮겨옵니까?
영어에서 ‘a cup of water’는 ‘한 잔의 물’이 아니라 ‘물 한 잔’이, 중국말 ‘下車’는 우리말로 ‘하차하다’가 아니라 ‘(차에서)내리다’가 더 우리말답게 옮긴 것이란 것은 너무나 또렷한 일입니다.
또 제가 종종 말하는 것 가운데, 일본말에서 ‘축제(祝祭;슈크사이)’-물론 그 뜻으로 ‘祭り(마츠리)’를 더 많이 쓰는 것 같고 그 두 낱말뜻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는 우리말로는 ‘잔치’, 한자말로는 ‘축전(祝典)’이 더 옳은 표현이고 또 그렇게 써 왔습니다.(때마다 하는 얘기지만, 우리는 제사[祭]를 결코 왁자지껄하게 지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못 말하는 ‘축제’에서 제사를 지내는 뜻은 거진 없습니다. 그러니 옛날에 쓰던 한자말처럼 ‘축전’이 옳다 봅니다.)
그런데 왜???
바로 말글을 옮기는 사람들이 우리말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봅니다.
한자는 우리도 쓰는 바이니 한자는 그냥 그대로 갖다옮기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첫머리에서 보다시피, 같은 한자도 뜻이 다르기도 하고 이미 우리가 써오던 말(민우리말이나 한자말)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한자라고 무턱대고 갖고 옵니까?

심지어 어떤 이름난 번역가는 ‘낯설게 하기’란 말로 엉터리 번역투에 핑계를 대기도 합니다.
다른 겨레말글을 우리말글답게 옮겨오지 못한다면 굳이 왜 좋은 번역가가 있어야 합니까? 대충 좋은 사전만 가지면 되고 요즘은 아예 누리터에서 번역기를 돌려도 왠만큼 뜻이 통하는데…

우리 겨레말글 답게 옮겨오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그나마 우리말글을 망가뜨리지 않는 일입니다.
다른 겨레말글을 옮겨오는 것도 이제는 얼 차리고 제대로 해야 합니다.

* 말글 옮기기 얘기를 하면 그 일을 하시는 분들이 나름 자존심도 있고 자부심을 가지신 분들이라 딴죽이 많이 들어옵니다. 밑도 없는 딴죽만 아니라면 무척 반기는 바입니다. 저도 좀 배우게요…^^

* 얼숲에 올린 글 보기

우리 말투까지 바꾸어 놓는 엉터리 말투 : -적,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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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어떤 분께서 ‘한자의 특징이 긴 글을 압축하는 효과에 있다’고 한 것을 두고 단 댓글입니다.

한자가 가진 장점 가운데 큰 것이 뜻을 짧게 압축해서 드러내준다고 합니다.
조금은 맞는 얘기입니다만, 그렇게 치면 상형문자가 더 훌륭한 글자라는 얘기가 됩니다.(이 얘기는 그렇잖아도 제가 얘기하고 싶던 좋은 보기도 있으니 곧 다시 적어 보겠습니다.)
그런데 ‘수학적 방법’이나 ‘논리적인 사람’은 그걸 하도 많이 쓰다보니 그렇지 결코 뜻이 또렷한 말이 아닙니다.(주로 ‘-의’, ‘-적’이 그렇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지금은 그 뜻을 헷갈리는 사람이 없는 것은 그것을 거진 그 뜻으로 항상 써 왔기 때문입니다.
보기를 들어, 젊거나 어린 사람들이 가끔씩 쓰는 ‘즐’은 그 글자만 놓고 보면 뜻을 헤아리기 어렵지만, 그 말을 쓰는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짧으면서 또렷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학적 방법’도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보는 방법’을 뜻하는지, ‘셈법에 따른 방법’을 뜻하는지는 그 문맥을 봐야만 또렷합니다. 흔히 ‘-적’은 영어 ‘-tic’을 옮긴 말로부터 쓰였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옮겨보면 ‘수학스러운’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말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반대논리도 있는데, 뜻이 또렷치 않은 데서부터 여러가지로 풀 수 있거나 혹은 다른 뜻을 담아 푸는 것을 한자가 가진 장점으로 치기도 합니다.
이는 참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거지요…^^

덧붙여서, 쓸데없이 ‘-의’, ‘-적’을 쓰는 버릇은 말투가 달라진 것에도 까닭이 있다 봅니다.
우리가 입말로 얘기를 한다고 했을 때, 위 보기 글월은 무엇을 돋게 얘기하고자 하느냐에 따라 여러가지로 쓸 수 있겠지만, 이렇게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를 제대로 풀려면 한 후보를 세워야 한다’거나 ‘한 후보로 세우는 것이 정치를 잘 푸는 수[길]다’같이도 쓸 수 있겠습니다.
결국, 엉터리 말투가 들어오면서 쓸데없는 말들이 쓰였고 거꾸로는 쓸데없는 말투를 바로잡는 것이 바로 엉터리 말투를 바로잡는 길이기도 하다 봅니다.

낯선 민우리말을 쓰는 것이 더 이상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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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글을 쓰면서 몇 가지 까닭으로 민우리말로 글을 쓸 때가 있습니다.( https://2dreamy.wordpress.com/notice/rule_hanmal/#clarify )
그런데 그런 글에는 가끔 낯설어 하거나 알아먹기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어려운 한자말이나 무슨 뜻인지도 모를 한자말 혹은 비비 꼰 엉터리 들온말투를 쓴 글에 이런 투정을 하는 분은 아직 못 봤습니다.(그래도 저는 뒤에 꺽쇠 치고 흔히 쓰는 말을 밝혀주고 있는데도…)
왜 일까요? 많이 배운 체 쓴 말투에 꼬투리 잡으면 못 배운 티가 난다고 여기는 걸까요?

우리말을 쓰는 것이 더 이상하게 보이는 세상… 참 이상한 일입니다.^^

덧. 모르는 영어 낱말은 말광[사전] 찾아보면서, 낯선 우리말은 왜 찾아보지도 않고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할까요…?

엉터리 말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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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올리신 글에 좋은 보기가 있어 그 보기를 가지고 얘기를 풀어 볼까 합니다. – 그 글 보기
먼저 그 보기 글을 보겠습니다.

이런 사실은 음악과 언어가 원래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보기 글에서 무슨 탈이 있는지 못 알아보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만큼 우리말글이 엉터리 말투에 더럽혀져 있다고 봅니다.
얘기를 하기 쉽도록 되도록 덜 중요한 것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쓸데없이 한자말을 썼습니다.(방금 이 글을 쓰면서 저도 ‘한자말이 쓰였습니다’로 쓸 뻔 했습니다. 이를 두고는 아래에 함께 얘기하겠습니다.)
이 보기글을 고치신 분처럼 ‘불가분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 같이 고칠 수 있습니다.
‘언어’는 우리말로 ‘말글’이라 할 수 있고, ‘입증하다’는 이 글에서는 ‘보여주다’로 고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른바 좀 배웠다는 이들 혹은 딴겨레말을 옮기는 이들이 흔히 저지르는 짓거리가 나옵니다.
바로 말을 베베 꼬아놓는 못된 버릇입니다.
‘관계에 있음을’은 좀 배운 이들이, 제 잘난 척 말을 베베 꼬는 버릇에서 많이 쓰는 말투입니다.
이는 홀가분하게 ‘관계 임을'(사이 임을)이나 더 쉽고 알차게 ‘~라는 것을’ 같이 고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보기글 삼아 고치신 분은 ‘이런 사실은 음악과 언어가 원래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입증한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만, 저는 여기서 좀 더 고치고 싶습니다.
바로 제가 돋게 보는, 엉터리말투, 들온말투하고 우리말투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임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같은 엉터리 말투를 흔히 쓰는 것이 바로 들온말투, 엉터리말투가 가져오는 나쁜 버릇이라 봅니다.
흔히 ‘~임을 ~하다’는 영국말 옮김투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가 엉터리 영국말을 배우면서 영국말투(말차례)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라 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돋은 것은, 우리말은 왠만하면 사람이나 가끔은 다른 살아있는 것이 말글에서 임자가 된다고 봅니다.(즉 사람이나 가끔은 다른 살아있는 것이 아닌 것이 말글에서 어거지로 임자가 되다보면 ‘~되다’, ‘~하게 되다’ 같은 엉터리 말투가 따라나오는 것이라 봅니다. – 다만, 모든 ‘~되다’가 이에 맞는 것은 아닙니다.)
위 보기말에서는 ‘사실’이 무엇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또 다르게는, ‘관계 임이 입증된다’라고 쓰기도 합니다.
이것을 우리말투로 고치자면, 풀이꼴만 바꾸어서는 안 되고 임자꼴을 아예 바꾸어야 합니다.
보기를 들어, ‘이로써 ~임을 알 수 있다’ 같이 고치면 가장 우리말투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말글에서는 똑 부러지는 정답은 없기에 더 알맞은 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말글로 고칠 수 있는 한자말과 엉터리 말투를 우리말투로 고쳐서 이 보기글을 고쳐 보자면,

이로써 노래가락과 말글이 처음부터 뗄레야 뗄 수 없다는 것을 알수 있다.

물론 ‘이로써 …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도만 돼도 좋겠지만, 떼려고 하는 것이 이미 둘 사이라는 것이고, 굳이 ‘사이’를 돋게 해야 할 까닭이 없다면 쓸데없는 말은 안 쓰는 것이 가장 좋다고 봅니다.
즉 여기서는 ‘노래가락과 말글’이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 돋은 것이고, 보기를 들어 ‘그 둘은 떼어놓을 수 없다’고 하면 뗄 수 없는 ‘처지’를 돋우는 것일테고, ‘그 둘은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라고 한다면 뗄 수 없는 ‘엮임'[관계]을 더 돋우는 말투가 될 것입니다.(아주 작은 차이지만, 여기서는 굳이 ‘엮임’보다는 ‘처지’로 보는 것이 매끄럽다 봅니다.)

* 덧붙임. 위에서 제가, ‘한자말을 쓰다’고 해야 할 것을 ‘한자말이 쓰이다’고 한 것도, ‘한자말’은 내가 쓰려했던 것이고 ‘한자말’ 쪽에서 보자면 ‘쓰인’ 것이 맞지만, 산 것이 아닌 ‘한자말’이 임자가 아니라 내가 임자가 되어 ‘한자를 쓰다’가 더 옳바르다 봅니다.

* 덧붙임 2. 더 매끄럽게 고쳐 주실 분이나, 혹 저도 모르게 제가 저지른 실수를 바루어 주실 분은 거리낌 없이 댓글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 덧붙임 3. “이렇게 해야 바로 쓴다”라는 책을 쓴 적도 있는 한효석님께서 얼숲에 아래처럼 댓글을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그 글 보기
[“이런 사실이 ~ 입증한다.”는 문장은 영어식 물주구문입니다.. “이런 사실”이 “입증한다”의 주체가 되는거죠..
그러므로 사람을 주체로 내세워야 문장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아도 우리는 음악과 언어가 한 몸이라는 것(뗄레야 뗄수없다는 것)을 알수 있다.”]

엉터리 말투가 푯대가 되고 있는 것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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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그림뉴욕 땅속기차 알림판은 어느 분이 ‘구글 더하기’에 올리신, 뉴욕 땅속기차 알림판이라 합니다.
먼저, 알맹이를 살펴보면, 영국말로 ‘Surf the train, and you could get wiped out-forever.’라고 되어 있고 아래에 ‘Ride inside. Get there alive.’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겨레말로 옮겨놓았는데, 그 가운데 한국말글로 옮겨놓은 것을 보면, ‘열차 서핑을 하면 만신창이되어 사망할 수 있다.’고 되어 있고 아래에는 ‘차내에 승차하자. 안전하게 도착하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글을, 영국말을 모른다고 치고 한국말을 보고 무슨 뜻인지 아실 분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뉴욕에 꽤 사셨다면 그 곳 돌아가는 걸 잘 알테니 ‘열차 서핑’이 무엇인지, 또 그 글귀가 무얼 말하려는 건지 알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겪은 것이나 보고 들은 것으로 아는 것이지 글을 읽고 헤아려 아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잠시 풀이를 하자면, 열차 문 바깥에 매달려 가는 것은 ‘surf the train’이라 한다고 합니다.(문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닫혀있는 문 밖에 매달리는 것… 그림을 보시면 대충 어림이…^^)
그리고 다른 열차나 벽에 쓸려 나가는 것을, 파도에 휩쓸리는 것에 견줘 ‘wipe out’이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만신창이가 되어’는 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이것을 옮겨온 까닭은, 이 말은 달리 보기 어려울 정도로 엉터리로 옮겨놓은 것이지만-전문 옮기는 이가 옮긴 것인지, 아니면 왠 얼치기가 옮긴 것인지…-, 이런 어거지로 옮기는 일이 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다 못해 우리가 흔히 보는 딴나라 일터에서 낸 길라잡이 같은 것을 보면, 그것이 딴나라 말글을 옮겨놓은 것인 줄 알고 보니 그냥 그러려니 하지, 우리나라 일터가 썼다면 매우 낯설 게 보일 말투가 많습니다.(하다 못해 슬기틀[컴퓨터]을 다루는 이들이 자주 보게 되는 ‘마이크로소프트’일터에서 내놓은 길라잡이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더 큰 흠은, 그것이 마치 푯대처럼 널리 퍼져 왠만한 길라잡이 글은 그렇게 우리말투가 아닌 말투로, 딱딱하게 풀어놓은 것이 큰 흐름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그러니 거꾸로, 귀여운 입말투를 살려 쓴 알림말을 내뱉는 구글 같은 데가 눈길을 끄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이 널리 퍼지면서 도리어 우리말투까지 바꿔놓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르게 보자면, 저런 알림판은 단지 읽을 거리를 주거나 모르던 것을 읽깨워 주는 것을 넘어 몰랐을 때 겪을 수도 있는 해로움을 미리 알려 피할 수 있게 할 량도 있는 것인데,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위험을 내버려두는 것과 같다고도 할 것입니다.
오로지 저 알림판 뿐만 아니라, 우리 곁에도 그림과 영어로만 된 위험 알림판이 가끔 있습니다. 이는 그 그림이 뜻하는 바를 모르고,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위험 속에 내버려 두는 것과 같다 봅니다.
따라서 특히 깨우쳐 알리는 데에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먹을 수 있도록 더 쉽고, 더 또렷한 알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 본디 글 보기

우리말, 우리말투를 살려야 합니다.(글자는 몸이요 말은 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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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글자는 몸이요 말은 넋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글운동을 한다면서 말은 살피지 않는 이들이 꽤 있습니다.(물론 그 중에는 미처 몰라서 그런 분도 계시지만 아예 한글은 뛰어나나 우리말은 모자라서 한자를 써야 한다는 이도 있습니다.)
우리 글을 다듬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 말을 다듬는 것과 함께 가야 할 일입니다.
우리 말을 살피지 않으면서 우리말, 한글을 사랑하자, 다듬자 하는 것은 마치 일제 때 몇몇 계몽운동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독립운동을 께방놓는 핑계가 된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계몽운동이 나쁜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은 여러 독립운동 방법 중 하나라고 봅니다. 그런데 (힘을 쓰지 않는)계몽운동 만이 옳고 힘을 쓰는 다른 방법은 틀렸다고 한다면 이는 독립운동을 께방놓은 일인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글자를 우리 한글로 적고 들온말을 우리말로 바루는 것도 좋지만, 우리 생각, 우리 삶이 들어있는 우리말투를 살려야 합니다.(살리는 것이 반드시 옛것을 되살리는 것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랏말운동을 한다면서 한글쓰기나 맞춤법 규칙, 글법 바루기에 들온낱말을 새 우리 낱말로 바꾸는 것 정도만 하다고 해서야 ‘국어’라는 말을 내걸어놓고 한자말을 쓰고, 엉터리 새 말이나 만들면서 우리말을 죽이는 국립국어원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덧글. 그래서 저는 ‘한글날’을 ‘한말글날’로 바꾸었으면 합니다.(그러면 저절로 ‘우리말’을 두고는 ‘한글’에 견줘 ‘한말’이라고 쓰게 될 것입니다.)

덧글 2. 이 글은 앞으로 이를 두고 더 깊이있는 글을 쓰려고 미리 내어놓는 글입니다. 다른 여러가지 생각을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규칙이 삶을 옭아매서는 안 된다! – ‘짜장면’ 표준말 인정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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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널리 쓰는 ‘짜장면’ 적기와 소리를 두고 ‘짜장면’은 인정하지 않고 ‘자장면’만을 표준말이라 우기던 국립국어원이 드디어 흐름을 받아들여 ‘짜장면’을 표준말로 인정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뒤늦게나마 흐름을 받아들여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아마도 지금 국립국어원장 입김을 좀 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말 정책은 지나친 규칙이 말글살이를 너무 옭아매고 있다고 봅니다.
‘규칙’(법)이란 것은 사람들 간에 서로 생각이 달라 생기는 불편을 줄이기 위한 것인데, 그것이 말글살이를 옥죄고 흐름을 가로막아선다면 그것은 말글살이를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말을 죽이는 일이라고 봅니다.

‘말’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말이 쓰면 쓸수록 더 나아진다(진화론?)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온갖 규칙으로 옭아맨다면 말이 살 수가 없습니다.(그러면서 한자말은 열심히 갈고 닦습니다.ㅡ.ㅡ)
우리 말이 스스로 자라나고 커 갈 수 있도록, 규칙은 말글살이를 북돋아주고 서로 거북하지 않도록 하는 정도만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말이 가진 이점으로 미루어,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말은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덧글.
이번에 새로 보태진 표준말들을 살펴보다 보니, 참으로 우습습니다.
국립국어원이 하는 짓이 늘 그렇다는 걸 알았지만, 심지어 ‘토담’은 표준말인데 ‘흙담’은 그동안 표준말이 아니었네요…
게다가 ‘눈꼬리’, ‘뜨락’, ‘나래’, ‘손주’, ‘어리숙하다’, ‘휭하니’, ‘연신’, ‘끄적거리다’, 바둥바둥’, ‘새초롬하다’, ‘아웅다웅’, ‘야멸차다’, ‘오손도손’, ‘찌뿌둥하다’… 이런 말들이 여즉껏 표준말이 아니었네요… 해도 너무 심합니다.

덧글 두 번째.
국립국어원이 내놓은 글에도 보면 한자말하고 들온말투, 엉터리말투가 수두룩합니다. 국립국어원이 정말로 나랏말 얘기를 하려면 나서서 엉터리말을 퍼뜨리는 이런 꼴부터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우리말 죽이고 한자말 받드는(이게 결국은 영어 받들게 하는 뿌리) 국립국어원은 없어져야 합니다!

‘우리말 안에 한자말이 70%’라는 꾸며낸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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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만 쓰기[한글전용]풀이 1를 말할 때나 우리말로 바꿔 쓰기[국어순화?]를 말할 때 그것이 되기 어려운 밑뿌리로 내놓는 것이 흔히 ‘우리말 안에 70%가 한자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속이 시커먼 거짓말입니다.

우선 아래 글을 한번 읽어 주십시오.
<우리말 70%가 한자말? 일제가 왜곡한 거라네> –
<학자 500명 8년 작업 ‘표준국어대사전’ 中·日서도 안쓰는 말 ‘부지기수’>
<한자 광신도와 금 긋기(1), (2) – 사전에 한자어가 70%라고?>
<일본말 찌꺼기로 가득찬 것이 표준어국어대사전?>
위 두 글에서는 우리말 안에 무려 70%가 한자말이라는 거짓말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선, 정재도 선생 말에 따르면, 일제가 맘먹고 우리말에 한자를 갖다붙인 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날에 우리가 글자가 제대로풀이 2 없을 때 우리가 만들어서 쓴 한자말도 있을 것입니다.(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沓하고 乭 같은 한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국회의원이었던 윤철상 씨가 ‘표준국어대사전’을 파헤친 글에서는, 우리가 쓰지도 않을뿐더러 일본과 중국에서조차 쓰지도 않는 한자를 사전에 실은 데 견줘 정작 우리말은 소홀히 다뤘다는 것입니다.
윤철상 씨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간추린 문제점을 보자면, ‘1) 우리말은 소홀히 다루고 한자 중심으로 사전을 만들면서 쓰이지 않는 한자말을 다수 첨가하여 단어수를 늘렸다. 2) 외래어와 파생된 외국어를 올려놓았다. 3) 일본에서도 잘 쓰이지 않는 일본말까지 표준말로 올려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말 사투리나 입말 같은 것은 표준말이 아니라고 밝히거나 아예 다루지도 않은 말도 많은데 견줘 우리가 쓰지도 않는 한자말까지 다뤘으며 그 말에서 뻗어나간 말을 올려놓아 결국 정작 일부 지역에서만 쓰거나 적게 쓰이는 우리말은 빠지고 한자말과 덧붙이말[파생어]만 실려있습니다. 게다가 중국이나 일본에서 쓴 적이 없는 말까지 한자말로 올려놓아 이래저래 우리말은 줄고 한자말은 늘었다는 것입니다.

국립국어원이 어떤 단체인가 하는 것과 우리말을 죽이려고 어떤 짓들을 해 왔는지, 그리고 ‘표준국어대사전’이 얼마나 엉터리이며 우리말을 죽이고 있는지는 다른 글에서 다룰 것입니다.

* 풀이
1. 흔히 ‘한글만 쓰기’[한글전용]란 말로 뭉뚱그려 쓰지만, ‘한글만 쓰기’에도 여러가지 갈래가 있습니다. 그 안에 글자를 한글로 적는 것도 좋지만 우리말을 살려서 써야 한다는, 이오덕 선생님 같은 분이 내놓으신 ‘우리말 살려쓰기’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우리말 살려쓰기’로 쓰고 싶습니다.
2. 아시다시피 우리 글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말을 글로 적으려고 여러 가지로 애를 썼는데 ‘이두’는 그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 덧붙임
1. ‘우리말 안에 70%가 한자’라는 주장이 조선총독부 사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글이 있어 고리 겁니다. – “우리말 70%가 한자” 주장은 조선총독부 사전에 뿌리

이명박 나라마름이 지닌 우리말 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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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 말씀드리건대, 저는 자주 바뀌는 글법[문법] 규칙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저 스스로는 그렇다는 것이지 글법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글법 규칙은 잠깐 제껴두도록 하겠습니다.

이명박 나라마름(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라는 옛날 적에나 쓸 법한 낱말은 크게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 얽힌 글:‘대통령’과 ‘국회의원’이란 이름을 바꾸자!)이 2011년 3월 18일, 일본 대사관을 찾아가 일본 지진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아래에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맞춤법은 제쳐두더라도 우리말법에 어긋난, 엉터리 글을 썼군요.
제가 알기로 이명박 씨가 우리말을 틀리게 쓴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 알고 있어 한번 찾아봤습니다.

퍼온 곳 : http://blog.ohmynews.com/partisan69/146833
우선 윗 글은 이명박 씨가 대선 시절 쓴 글인가 봅니다. ‘받들어’라고 써야 할 것을 ‘받드러’라고 썼습니다. 그밖에 띄어쓰기나 맞춤법 같은 건 그냥 넘어가겠습니다.(혹시나 싶어서 ‘받드르다’를 찾아보니 그런 말은 없습니다.^^)

퍼온 곳 : http://showbiz.tistory.com/723
이 글도 대선 시절 쓴 글입니다. 이번에도 ‘바치다’라고 해야 할 것을 ‘받치다’라고 했습니다.(다들 잘 아시겠지만, ‘바치다’와 ‘받치다’는 엄연히 전혀 다른 뜻입니다.) 아마도 특별히 ‘ㄷ’받침을 제대로 쓰는 데에 약한 모양입니다.(일본 말에는 받침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걸까요…^^)
이 글에는 잘못된 말버릇이 꽤 있지만 다른 뭇사람들도 흔히 틀리는 것이니 꼬집지는 않겠습니다만, ‘-의’를 쓴 것이나 ‘~된’ 같은 표현은 잘못된 말투라는 것만 밝히고 넘어가겠습니다.

퍼온 곳 :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8/05/06/3115312.html
이번에는 좀 심합니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표현을 썼습니다. ‘큰별께서 고이 잠드소서’…? ‘할아버지께 진지 드소서’ 뭐 이런 식일까요?(혹 일본말에는 이런 말투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을 사랑하시는’도 이미 돌아가신 분께 쓰는 것이니 ‘~을 사랑하셨던’으로 고치던지 해야 옳습니다.(뭐 솔직히 꼬투리를 잡으려면 더 있지만 꼬투리를 잡자는 것은 아니니 이것도 이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일본 대사관에 가서 남겼다는 글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 나랏말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나랏말 학자들이 이것을 보고도 아무 말을 않는다면 그 자들은 가짜 학자입니다.)
이 글은 우선 말 순서부터 엉망이고 앞뒤도 전혀 맞지 않습니다. ‘내가 죽음을 슬퍼한다’는 뜻이라면 ‘우리 국민 모두가’가 빠져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슬퍼하는 것은 우리 국민이므로 ‘우리 국민’이 먼저 나오고 돌아가신 분들’을’ 슬퍼’하’던지, 돌아가신 분들’께’ 슬퍼하는 마음을 ‘(보내)드리’던지 해야 맞습니다. 결국 이 글월은 이리 고쳐도 이상하고 저리 고쳐도 이상한, 아주 흐리멍텅한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흠은 바로 ‘애도 드립니다’입니다. ‘애도’(哀悼)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국어대사전)이란 뜻으로 우리말로는 그냥 ‘슬퍼하다’고 하면 됩니다.
따라서 첫 번째 글월을 우리말투로 적자면, ‘우리 국민들은 돌아가신 분들께 슬픈 마음을 전합니다’, ‘~ 돌아가신 분들과 슬픔을 함께 합니다’ 정도가 좋을 것입니다.
하다못해 ‘애도’라는 한자말을 쓴다고 해도 ‘애도’는 ‘한다’고 하지 ‘드린다’고 하지 않습니다.(무던히도 일본을 높여 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애도를 드리다’라는 표현이 올바른 표현이 되려면 ‘애도를 주다’는 표현이 되어야 하나 ‘애도를 하다’라고는 하지만 ‘애도를 주다’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 겨레는…
그리고 ‘회복되다’도 잘못된 말버릇으로, 여기서는 ‘저절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회복되도록 하는 것이므로 ‘회복하다’로 써야 옳습니다.
(덧붙임: 이 글월을 고치면서 제 모자란 솜씨로 나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고치면 다른 쪽이 이상하고 그것을 고쳐놓으면 다시 처음 고친 것이 이상하고…)

찾아보니 그 밖에도 “3·15 정신으로 이땅에 진정한 민주화와 국가번영을 이루어지기 기원합니다”(2007년 3월 23일 마산 국립3·15민주묘지 방명록), “반드시 경제살리고, 사회통합 이루어 님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살려서, 크게 보답하겠읍니다” (2007년 10월 22일 광주국립 5.18 민주묘지 방명록) 같이 쓴 글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 글월에서는 ‘3·15 정신이 민주화와 국가번영에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인지, ‘3·15 정신으로 민주화와 국가번영을 이루겠다’는 뜻인지 도무지 흐리터분합니다.
두 번째 글에서도 ‘사회 통합을 이룸으로써 희생정신을 되살리겠다’는 뜻인지 ‘경제 살리고 사회 통합을 이루어 희생정신에 보답하겠다’는 뜻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평소 이명박 씨가 영어에 목숨을 거는 듯 하면서도 정작 우리말에는 이렇게 실수가 잦은 것이 그 동안에는 단순한 실수이겠거니 했습니다. 하지만 한 나라 큰일꾼이라는 자리를 생각해 볼 때 미리 그런 준비를 할 새가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참모들이 거의 대부분 손 놓고 있었거나 이명박 씨가 참모들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아니면 그 둘 다이거나…)
아무리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도 이 나라 국민으로 살고 있고 이 나라 마름이라면 이런 정도 애는 써야 할 것이고 하다못해 미리 준비를 해 가는 것이 가장 작은 예의가 될 것입니다.
부디 이명박 씨는 자신을 낮추고 우리말에 관심부터 가지고서 나라 격식을 말하고 외국어 교육을 말했으면 싶습니다.

덧붙임.

http://www.fnn.co.kr/content.asp?aid=6bbe9d26389241df8d905a39a49cb8e4&strParnt_id=70100000000
이 글은 이명박 씨가 2008년 현충원 방명록에 쓴 글이라고 합니다.
이 글도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틀린 것으로 얘기되는 거리인데, 저는 좀 다른 걸 짚어보고 싶습니다.
’-는데’는 ‘말꼬리’[어미]로써 엉터리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뒤 절에서 어떤 일을 설명하거나 묻거나 시키거나 제안하기 위하여 그 대상과 상관되는 상황을 미리 말할 때에 쓰는 연결 어미’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목적, 대상’을 나타내는 ‘도움씨’[조사]가 쓰이는를 쓰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따라서 ‘만드는데’가 아니라 ‘만드는 데에’로 써야 맞다고 봅니다.

덧붙임 두 번째.

위 글은 2011년 6월 6일, 이명박 나라마름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을 찾아 방명록에 남긴 글입니다.(저는 퍼뜩 보고는 우스개꾼 ‘이 한구’씨가 또 사고를 쳤나 했습니다.^^;;)
여전히 준비없이, 생각없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굳이 얘기를 안 해도 아시겠지만, 띄어쓰기를 지키자고 한다면 ‘한 구를 찾을 때까지’로 쓰는 것이 맞겠고, ‘우리는’에서 ‘는’은 안 쓰는 것이 낫겠지요?(‘우리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로 쓰거나 ‘우리, 최선을 다 합시다’로 쓰거나…)
글월이 말이 안 된다는 건 말씀 안 드려도 아실테고요…
일본에서 난 이에게 너무 많은 걸 바란다는 분도 계시지만, 이 땅에 살고 있고 이 땅에서 나라마름 노릇을 하는데 이런 정도도 애를 쓰지 않는다니… 참 가슴이 무너집니다.(거짓 쇼[show] 하실 시간을 조금만 쪼개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닐텐데 말입니다…)
* 이 글을 보고 ‘청와대’ 얼숲 누리쪽[페이지]에 ‘우리말이 어려우면 공짜로 가르쳐 드릴 생각이 있다’고 을 남겼습니다만,… 아직 답변이 없습니다.^^

덧붙임 세번째.
이 글을 쓴 뒤로도 엉터리 말투를 쓴 일이 많을텐데,…
2012년 8월 16일 즈음에는 이런 일도 있었네요.
츠끼야마 아끼히로 나라마름[대통령]이 런던 올림픽 대표 선수단을 청와대로 부른 자리에서 이렇게 말 했다고 합니다.
“국민들 코를 찡긋하게 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쳐 있는 국민들에게 큰 위로가 됐고…”
‘찡긋하다’는 눈이나 코를 살짝 찡그리다는 뜻으로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뜻을 드러낼 때 쓰는 몸짓입니다.
그런데, 국민들이 왜 선수들 때문에 ‘코를 찡긋’했을까요?
이것은 큰 느낌을 주었을 때 쓰는 말투인 ‘코끝이 찡하다’를 말하려고 한 것이라 봅니다.
그럼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국민들 코끝을 찡하게 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 나라에서 큰 마름을 한다는 자가 말을 너무 엉터리로 쓰고 말하는 것 아닙니까? 공부를 좀 하시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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