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에 대하여 – 특히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댓글 남기기

우리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이 삶이 끝나고 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걸까?
만약 지금 삶이 뒤에 있을 삶에 영향을 준다면…?

‘삶’과 ‘죽음’을 두고는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나 여기서는 좀 단순하게 이 삶과 죽음과 그리고 그 뒤에 있을 그 무엇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종종 질문이 나오니 쭉 달아 읽지 마시고 질문 즈음에서 잠깐 짬을 내서 생각해 보고 정리해 보고 나서 다음을 읽으면 더 좋겠습니다.)

이 삶이 끝나고 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걸까요?
이것을 살펴보자면 먼저 우리 삶을 좀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 삶이란 어떤 모습입니까?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의 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기억’이라고 하는 것을 빼고 나면 우리가 과거라는 걸 알 수도 없고 심지어 현재가 있다는 것 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여기서 부터 ‘무슨 개소리야?’ 하시는 분이라면 다시 한번 찬찬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기를 들어, 소리는 파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혹 가락[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아는 분 가운데 그런 분이 있다면 ‘똑 같기만 한 높이의 소리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한번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떨림이 없이 똑 같기만 한 소리는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문과 쪽 사고를 하시는 분께는 좀 어렵나요?)
소리는 앞 뒤 높낮이 차이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떨림 속에서…)
우리 삶에서 ‘현재'(혹은 ‘지금 찰라’)라고 하는 것과 견줄 수 있는 (시간의)기억이 없다면 결코 과거는 물론이거니와 ‘현재’가 있는 것조차도 알 수 없습니다.(‘기억’은 또한 ‘시간’이라는 관념과 함께 합니다.)
어떤 분은 기록(글자나 영상으로)해 두면 되지 않겠는가 하겠지만, 그 기록이 과거의 것이라는 것조차 기억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는 알 수 없습니다.
여튼 이렇게 찰라와 같은 ‘현재’라는 것은 ‘기억’-‘시간’이라는 관념-이라는 것 위에서 여러가지 인식이 나오게 됩니다.
‘지금 찰라’와 다른 ‘과거 찰라’, 1초전, 한 시간 전, 하루 전, 한 해 전,…
이 기억은 우리 ‘기억’ 속에 다 남아있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 ‘기억’ 덕분에 ‘시간’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이것은 기절하거나 잠이 들기 전까지는 거의 쭉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잠이 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것입니다.(물론 더 깊이 들어가면 이것 또한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존재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므로 여기서는 줄이겠습니다.)

여튼 우리는(사람은) 시각의 이어짐, 찰라의 이어짐을 통해 시간-과거, 현재-을 인식하고, 기억을 통해 우리는 잠들기 전과 깨어난 후의 동일성을 인식합니다. 우리가 과거와 현재라는 이 시간 속에서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사실 기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술을 마시고 기억이 끊어진다 해도 어쨋든 (‘내’가 존재한다는 가정 아래서는)술에 취하기 전과 술에 취하고 난 뒤 기억이 끊어진 때와 그리고 나중에 술에서 깨어 힘들어 하는 나 사이에 연속성을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렇게 짐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제 낮과 어제 밤 꿈과, 혹은 어제 밤에 꾼 꿈이 생각이 안 난다면 꿈은 (기억에서)없는 채로 다시 오늘 낮은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더 깊이는 들어가지 않기로 하자고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삶 뒤에 기억이 끊어진다고 해서 다음 삶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제 낮의 기억과 어제 밤의 기억은 끊어져 있지만 오늘 깨어난 뒤에는 어제 낮의 ‘나’와 어제 밤 꿈에서의 ‘나’와 그리고 다시 오늘 ‘나’를 서로 같이 봅니다.(주로 ‘아무개’라는 이름도 연속성을 가지긴 하지만 사실은 이름으로써가 아니라 그냥 ‘나라는 것’으로써 연속성을 가지며 이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혹시 꿈 속에서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로서 있어 본 적은 없습니까?
혹 스스로가 그런 꿈을 꾼 기억이 없다면 주위에 물어 보십시오. 가끔 그런 꿈의 기억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꿈을 꾸어 본 적이 있습니다.
꿈 속에서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로 있다 해도 대개는 잠깐 이상하게 생각할 뿐 더 이상 놀라지는 않습니다. ‘있다는 것’-존재함-에 너무 깊이 사로 잡혀서 무엇으로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아마 그것에 크게 신경을 쓴다면 아마 이른바 악몽이 될 것이고 놀라 깨어나 버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낮에 ‘사람’으로 있었던 ‘나’는, 어제 밤 꿈에서는 다른 것과 나를 동일시함으로써 그냥 별일 없이 있[존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깨어서는, ‘어제 밤 별난 꿈을 꾸었네’하며 다시 ‘사람’으로 있[존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죽음’은 어떨까요?
삶과 죽음이 몸[육체]이 이어지지 않고 기억이 이어지지 않는다 해서 과연 ‘죽음’은 없는 것일까요?
오늘 깨어난 뒤에서야 ‘어제는 꿈을 꾸었고 아마도 ‘나’는 꿈 밖에서 꿈을 꾸고 있었겠지’라고 짐작해서 말하겠지만, 과연 어제 밤 꿈을 꿀 때 진짜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꿈속에 있는 것이 진짜 ‘나’였을까요? 꿈 밖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진짜 ‘나’였을까요? 지금 살고 있는 나, 깨어있는 ‘나라는 것’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어져 있었으리라 짐작하게 됩니다.
그럼 이 삶과 그 다음의 죽음은 어떨까요? 기억으로 이어져 있지는 않지만 딱 잘라 없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그것이 사실인지 아닐지를 모를 뿐, 있다는 증거는 있을 수 있어도 없다는 증거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없다’는 증거는 실은 ‘모자람’-혹은 ‘빔’-의 증거일 뿐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우주 공간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할 때는 정말로 완전히 없는 것이 아니라 행성이나 이런 것이 없다-즉 빔, 모자람-는 뜻일 뿐입니다.)

제가 보기에 삶과 죽음의 연속성은 이런 식으로 이어집니다. 가끔 잘못 이해하듯이 몸이나 기억이나 혹은 ‘영’ 또는 ‘혼’이라는 것의 존재로써 이어진다기 보다는(그런 것은 ‘비유’라고 봅니다.) 그냥 ‘동일시‘로 나타난다고 봅니다. ‘동일시’가 있으면 같은 존재로 보게 되고 ‘동일시’가 없으면 다른 존재로 보게 됩니다.
술에 취하기 전에 멀쩡하게 깨어있을 때의 ‘나라는 것’과 동일시 하던 존재가, 술에 취해서는 사회에 불만이 많고 전봇대하고도 싸우며 길 가에서 적당히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눠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나라는 것’과 동일시하게 되는 것처럼요…
술이 깨고 난 다음에야 그 두 존재가 결국 같은 존재라고 인식하지만 술에 (완전히)취했을 때는 그 둘을 결코 같은 존재로 인식하지 않습니다.(사실 몸으로 이어져 있는 것 말고는 같은 존재라고 말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감히 그 무서운 상사에게 덤비는 짓도 하지 않겠지요. ^^;;)
그 두 존재를 결국 같은 존재라고 인정한다면, 살아 있을 때의 존재와 죽은 뒤의 존재 사이에도 어떤 연속성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정말로 연속성이 있는지는 더 깊은 수준에서 얘기해야 합니다만…)
그리고 꿈이라는 경험과 술에 취하는 경험에서 보듯이 그 상태의 정신 상태는 그 앞 상태에서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아주 기분이 나쁘거나 무섭거나 한 채로 잠에 들면 꿈자리가 뒤숭숭하거나 무서운 꿈을 꿀 가능성이 큽니다. 마찬가지로 아주 무섭거나 불길한 꿈을 꾸다가 깨어서는 그 날 기분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그 반대로 아주 기분 좋은 채로 잠에 들면 꿈도 즐겁거나 편안할 가능성이 크겠고요…
술에 취한 상태 역시도 마찬가지로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뭔가 마음에 쌓인 것이 많다면 술에 취해서 온갖 주사와 행패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겠지요.
죽음과 다시 태어남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자살’이라는 것을 무척 좋지 않게 보는 것이, 어쨋든 ‘자살’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아주 심한 절망이나 공포 속에서 죽게 될 것입니다. ‘삶’과 ‘죽음’과 ‘다시 태어남’이 어떻게든 이어져 있다면, 자살에서 느끼는 좋지 않은 상태가 그 뒤 ‘죽음’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것은 다시 ‘다시 태어남’에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물론 전쟁 같은 타의에 의한 죽음 역시도 비슷할 테고요…)

꿈 속에서 가위에 눌리거나 무서운 꿈을 꾸고 싶지 않다면 적어도 깨어있을 때의 삶을 ‘스스로’ 우울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것은 다음 날 깨어난 뒤의 기분까지 좋지 않게 만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죽음 뒤의 삶을 고통 속에서 살고 그러고도 다시 그 뒤의 삶까지 힘들게 살고 싶지 않다면 지금 삶을 ‘스스로’ 괴롭게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Advertisements

쉬실 수 있기를…

댓글 남기기

앉을 수 있는 데 서 있지 않고,
누울 수 있는 데 앉아 있지 않고,
잠 잘 수 있는 데 깨어있지 않기를…

생각 한 자락/ 생각 한 자락 – 생활 속 작은 깨달음

생각

댓글 남기기

꿈 속에 꿈,
생각 속에 생각,…

잠긴 글: 잠

댓글을 보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십시오.

이 콘텐츠는 비밀번호로 보호되어 있습니다. 보려면 아래에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잠…

댓글 남기기

잠 속에서 일어나서

자면서 걷고

자면서 일하고

자면서 생각하고

잠 속에서

다시 잠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