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은 그저 ‘표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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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겨레말 떠받들고 우리말 죽이는 국립국어원이 정한 표준말 규정은 말글을 씀에 있어 덜 헛갈리게 하려는, 그야말로 ‘표준’일 뿐이라 봅니다.
저는 오히려 그것이, 어떤 분 말씀 마따나 듣고 읽는 이를 생각하는 ‘배려’에 더 가까울 뿐이라 봅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틀리면 벌이라도 받는, 마치 ‘절대 법’처럼 받아들이는 일이 잦은 것 같습니다.
‘복종’하는 것에 너무 길들여진 탓일까요?
아니면 튀면 따돌리던 버릇 때문일까요?

앞서도 가끔 썼지만, 지금은 띄어쓰기를 하고 말뿌리를 밝혀 적기로 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붙여쓰기를 했고 또 소리 나는 대로 적는 수도 있읍니다.
그리고 왜 공문서는 한자말에 일본말 번역투를 써야 하여, 사투리는 우리말 대접도 못 받는 것일까요?
세상 모순을 부르짖는 이 조차도 왜 그런 일에서 그른 것[불합리]을 말하는 이는 적을까요?

말글은 법이나 규칙으로 옭아맬 수는 없는 것이고 옭아매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규칙이 말글에서 나와야지, 말글이 규칙에서 나오면 그 말글은 박제처럼 죽은 말글일 것입니다.
연구하고 가지런히 하되, 옭아매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 말글을 살리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 혹 다른 생각이나 더 나은 생각이 있으시면 거리낌없이 생각을 나눠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말[한말] 한마당/ 우리말글[한말글] 모둠 – 우리말, 한말, 사투리, 글쓰기, 번역, 통역,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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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칙을 죽여야 우리말이 살 수 있습니다.

댓글 2개

‘맑다’를 ‘말ㄱ따’로 소리내고 ‘깨끗이’가 아니라 ‘깨끗히’라 쓰는 것이 옳다는 글을 쓰고 보니, 좀 더 덧붙여야 할 것 같아 다시 덧보탭니다.(그 글 보기)
(그 밖에 자잘한 제 생각은 알리는 말씀깨몽 생각을 봐 주십시오.)

저는 ‘표준말’ 규칙이 없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말글이란 것은 살아있는 것이고 뭇사람들이 쓰고 학자들이 연구하면서 다듬어져야 하는 것이지 마치 왕이 명령하듯이 규칙을 정할 것은 아니라 봅니다.(이미 있는 말글 속 규칙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자들이 ‘가지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이건 실랑이거리가 될 만한 일인데 한마디로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 혹 제 주장이 괴이적다는 분은 거리낌없이 말씀해 주시면 더불어 얘기 나누겠습니다.

한글은 우리말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옷과 같은 것입니다.(옷이 아무리 아름다운들 그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나라는 몸은 얕잡아 보고 옷만 칭찬하네요.^^;)
세종큰임금 때 훈민정음(한글과 같지 않습니다!)을 만들 때 한글이 가진 온갖 성질을 다 담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겹홑자[겹자음]도 있고 지금 우리가 못 보는 여러가지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제를 거치고 그 뒤를 이어 딴겨레말 떠받들고 우리말 죽이는 국립국어원을 거치면서 우리말한글이 가진 좋은 점은 다 죽여놓고 껍데기만 떠받들고 있습니다.(사실은 떠받드는 시늉만… ㅡ.ㅡ)
몇 가지 보기만 든다면, 훈민정음에는 ‘사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말에는 높낮이 가락에 따라 한글로는 같은 낱말이 서로 다른 뜻을 가집니다. 그리고 겹홑자를 두어 여러가지로 썼습니다. 소리값을 나타내기도 했고 다른 뜻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모두를 다 살리자는 것은 아닙니다. ‘쉽게 한다’는 구실을 대어서 없앴지만 말글살이에서까지 쓸 까닭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말과 한글을 풀 때 쓸 수 있도록(마치 기호처럼) 해 두면 우리말이 크게 살아날 텐데 그걸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하다못해 물 위에서 타는 ‘배’과 열매 ‘배’조차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일도 생기고 있습니다. 뿌리푸성귀인 ‘무우’도 ‘무우’에서 ‘무-‘(긴소리값)에서 아예 ‘무’로 절름발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이 규칙이 어렵기라도 합니까?)
또다른 보기로, 제가 얘기했듯이 ‘맑다’를 ‘말ㄱ따’로 소리내면 1. 말뿌리가 살아 있게 되고(말따-말근으로 바뀌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2. 우리말에 따른 한글에 소리내는 원리가 그대로 담겨있고(‘막따’는 말이 바뀜에 따라 원리에서 벗어나지만 ‘말ㄱ따’는 원리를 그대로 가짐) 3. 그래서 한글 장점까지 그대로 살릴 수 있습니다.(우리말 값을 적는 데에 가장 알맞은 한글 틀)

마지막으로 이런 것들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다만 낯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라도 왕이 내린 명령 같은 법칙을 없애고 학자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도록 하고 배울 때는 그런 것이 있다는 것 정도만 가르쳐야 합니다.(견주자면, ‘진화론’을 흔들리지 않는 진리로 알고 있는 이들도 많은 것과 같습니다.)

* 혹 제가 얘기한 것 가운데서는 어떤 말씀이라도, 어떤 물음이라도 거리낌없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말[한말]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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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치레 삶, 겉치레 말글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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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먹을 때, 오른손으로 먹는지 왼손으로 먹는지, 밥그릇을 들고 먹는지 놓고 먹는지, 젖가락을 바로 들었는지 같은게 그리도 중요한가?

말을 쉽고 올바르게 제 뜻을 담아 말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지, 맞춤법 띄어쓰기가 그리 중요한가?(제대로 말할 줄 아는 것보다 더?)

* 맞춤법 얘기가 두어 꼭지 보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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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나라말글 규칙

댓글 한 개

얼핏 보니, 바보상자에서 ‘우리말 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알맹이 가운데 가장 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띄어쓰기 같은 맞춤법(돈을 셀 때 ‘원’을 띄어써야 하나 붙여써야 하나 같은…)과 틀린(?) 사투리와 올바른(?) 표준말을 고르는 것입니다.(결국 우리가 우리말글에서 따지는 것에 거진[대부분]은  ‘규칙’인 것 같습니다.)
띄어쓰기 같은 맞춤법은 헛갈리지 않으려면 되도록 지키는 것이 좋지만 우리말에는 띄어쓰기가 그리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아시겠지만, 우리 말글에서 띄어쓰기를 하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투리는 결코 틀린 말은 아니고 다만 표준으로 정한 표준말에만 들지 못했을 뿐입니다.(도대체 뜻이 흐릿한 ‘표준말’이 무슨 하늘이 내린 법칙이나 되는 양 하는 건 제쳐 두고라도…)
왜 서울말을 표준말이란 말로 옳은 말이 되고(물론 모든 서울말이 다 표준말은 아닙니다만…) 사투리는 단지 표준말에 뽑히지 못했다는 것으로 틀린 말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말에서 규칙이란 다만 좀 더 뜻이 통하기 좋게 하고자 하는 약속일 뿐일 텐데, 어떻게 말을 규칙에 꿰어맞춰서 맞다, 틀리다를 얘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것이, 언제는 왼쪽 걷기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걷기를 하면서 그저 사람들 생각과 몸짓을 옭아맬 생각만 하는 것과 엮여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심지어 과학에서조차 ‘정설’은 많아도 ‘진리’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우리가 흔히 아는 ‘진화론’도 그냥 정설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말에다가 마치 결코 변할 수 없는 진리인 양 규칙을 정해 놓고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틀린 것이고 문화인이 아닌 것처럼 하는지…
더 안타깝고 슬픈 것은, 그런 얽매임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이제는 그런 것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고 그런 것에 궁금증을 일으키는 이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종살이를 오래 하다 보면 종살이가 편해진다 하던가요…

우리말[한말] 한마당/ 사대주의 깨고 겨레얼 되찾기 모둠/ 참된 보수[누리쪽]/ 참된 보수 모둠/ 사대주의

* 덧붙임. 저는, 규칙 나부랭이보다는 말을 더 잘 하고 뜻을 더 또렷하게 쓰도록 하는 데에 더 마음을 쏟아야 하지 않나 싶은데, 우리 나라말 교육에서조차 그런 것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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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잣대는 ‘스핑크스 침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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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말이 그렇지만, 우리말도 말이 먼저 생기고 그 규칙을 따져 말글 잣대를 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표준말 규정’을 보면, 사람들이 말글사는 모습은 보지 않고 그저 규칙에 맞춰놓고 곧이곧대로 거기에 끼워맞추고 있습니다.
우리말은 스핑크스가 내는 수수께끼이고, 우리말말 잣대는 스핑크스가 가진 침대입니까?
말글이 살려면 스핑크스도 죽이고 스핑크스 침대로 불살라 버려야 합니다.

말글살이를 옥죄는 엉터리 표준말 잣대[규칙]와 뭇사람 삶을 옭아매는 나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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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법이,
뭇사람들은 어떻게든 옭아매면서
힘 있고 돈 있는 자는 어떻게든 빠져나가는 것이,

이 나라 말글법이,
뭇사람들 말글살이는 옥죄면서
정작 본보기가 되어야 할 이들은 오히려
온갖 딴겨레말, 권위스런 말들을 마구 쓰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과 너무나 닮았다.

이 나라 법, 규칙은
힘없는 뭇사람들에게는 서리발 같고
힘있는 이에게는 봄바람 같다…

덧. 한자말 떠받드는 이들이 꿰차고 있는 큰나라말 떠받들고 우리말 죽이는 국립국어원을 없애거나 뿌리부터 바꾸지 못한다면 이 나라 말글도 앞날이 어둡다.

살아있는 말을 죽은 틀에 가두어 우리말을 죽이는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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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깨끗하다’ 꾸밈씨[부사]를 어떻게 소리내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물어본 데 1, 물어본 데 2]
널리 물어보니, 어림잡아 3~4할 정도는 아직도 ‘깨끄치’라고 소리내고 있다고 하네요.(나머지는 ‘깨끄시’…)
또 있습니다.
앞서 ‘닭을’을 어떻게 소리내어 읽는 지도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물어본 데 1, 물어본 데 2]
이것도 널리 물어보니, ‘달글’이라 한다는 분이 3~4할 쯤 되고 나머지는 ‘다글’이라 소리낸다고 합니다.
이것을 ‘깨끗하다’ 꾸밈씨하고 엮어 보자면, 읽는 꼴로만 보자면 ‘꼬꼬댁 하고 우는 날짐승’은 ‘닥’이라 쓰는 것이 맞게 됩니다.(‘닥’이라면 ‘다글’이라 소리내야 할 테고, ‘닭’이라면 ‘달글’이라 소리내야 합니다.
이거 참,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다.
이러니 우리말을 어렵다고 하고, 우리말을 어렵게 하는 데 맨 앞에 한자말 떠받드는 국립국어원이 있습니다.
큰나라말 떠받들고 우리말 죽이는 국립국어원이 얼마나 엉터리이고 우리말을 함부로 다루는지를 이런 것을 보고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다들 ‘짜장면’이라 소리내고 있고 그것이 그리 큰 탈이 있는 것도 아닌데(말법에 맞지 않다던지 하는…)도 억지로 ‘자장면’을 우기더니(얼마 전 새 국립국어원장이 되고 나서 ‘짜장면’도 함께 표준말에 올려주었지만…), 정작 이런 말법에 어긋나는 건 새 잣대를 만들어서라도 그냥 섬깁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저는 잣대를 바꾸라고 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말에 죽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말을 죽이겠다는 것과 같습니다.(말글에서 푯대는 길잡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학자들이 할 몫이라 봅니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학자, 전문가들이 참으로 힘을 못 씁니다.)
말법으로 보아 ‘깨끗하다’ 꾸밈씨는 ‘깨끗히’가 옳습니다.(서울 쪽 사람들이 엉터리 말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따지려는 건 아닙니다만…)
그리고 뭇사람들 말버릇으로 보아서는 ‘닭’이 아니라 ‘닥’이 옳게 됩니다.
살아있는 말에 죽은 잣대를 들이대니 이런 탈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한자말 떠받드는 경성제대 출신들이 꿰차고 있는 큰나라말 떠받들고 우리말 죽이는 국립국어원은 정말로 우리말을 제대로 아는 이들로 바뀌어서 우리말을 연구하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하고, 우리말을 죽이는, 법칙으로써 표준말 규정은 (법칙이 아니라)우리말을 바루는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말 사랑방, 우리말 살려 쓰기, 쉬운 우리말 쓰기

‘짜장’은 어쩌다 운좋게 표준말이 되었을까? – 엉터리 표준말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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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이란 말을 아십니까?
어쩌면 이 말을 아신다면 고향이 강원 쪽이 아닐까 싶습니다.(물론 먹는 ‘짜장면’하고는 다른 말입니다.)
이 말은 강원도 영서(대관령 서쪽)와 평북 지역에서 쓰이는 사투리로 ‘참말로’, ‘정말로’ 같은 뜻이랍니다.
그런데 이 말은 표준말로 인정을 받아 엉터리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습니다.
이 말은 대체 어떻게 표준말이 되었을까요?
전라 지역에서 널리 쓰이는 ‘허벌나다’, ‘쪼까’와 경상도 사투리인 ‘억수로’가 더 널리 쓰이는데 말입니다.

전에도 헤아리기 어려운 표준어 규정을 두고 한번 파헤쳐 본 적이 있습니다만…

‘어리숙하다’ 파헤치기!(엉터리 표준어 규정)

표준말 규정에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나름에 까닭을 들어 표준말 규정이 잘못되었음을 짚고 있고요…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르게 보고 싶습니다.
말에서 ‘표준말 규정’이 있는 것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번 얘기하지만 말은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서 끊임없이 변하는 말에 ‘규칙’, ‘규정’, ‘법’을 들이대는 것은 말을 죽이자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어지러움을 줄이고자 한다면 푯대[기준] 정도만 있으면 됩니다.(심지어 이것조차도 긴 시간을 두고는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사람이 만든 잣대는 살아움직이는 말을 따라가야지, 말을 틀에 가두고 마름질해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사투리들은 사투리라고 사전 언저리에도 못 가 보고(실제로 그리 널리 쓰이지 않는 몇몇 사투리는 사투리라고 밝혀 사전에 올라 있습니다.) 다른 어떤 말들은 그리 널리 쓰이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심지어 표준말로 사전에 올라있기도 합니다.(물론 ‘표준말’이란 규정 자체가 엄청나게 멍청한 소리라는 건 많은 분들이 짚어주고 있는 문제고요…)
이제는 말에다가 사람이 만든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다시 돌이켜봐야 합니다.
그리고 말 죽이는 틀을 없애고 사투리에서도 좋은 우리말을 되살려야 우리말이 살아날 것입니다.

‘먹거리’, ‘먹을거리’ 실랑이를 두고… – 우리말 죽이는 틀을 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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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성질 급하신 분은 뒤에서부터…

얼마 전 (한자를 받드는)국립국어원에서 내놓은 ‘새로 보탠 표준말’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 ‘짜장면’ 등 39항목 표준어로 인정/언어 현실 반영하여 표준어 확대 – 국립국어원

그 중에서도 ‘먹을거리’하고 이번에 새로 표준말에 든 ‘먹거리’를 두고 말이 많습니다.
‘먹을거리’가 우리말 만드는 법에 맞다는 쪽과 가끔 말 만드는 법에서 벗어나 먹거리처럼 줄여서 쓴 보기가 있다는 것을 들어 반기는 쪽입니다.(흔히 저처럼 원칙을 먼저 따지는 분들은 ‘먹거리’가 된다면 ‘씹을 거리’는 ‘씹거리’도 되냐고 따집니다. 이 말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진짜 본새[본질]은 전혀 다른 데에 있다고 봅니다.)
저 역시 전에는 ‘먹을거리’가 옳다고 보았으나 우리말에는 정말로 말 만드는 법에서 살짝 벗어나 줄여쓴 보기가 있어 ‘먹거리’도 틀리지 않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정말로 접부채, 덮밥처럼 움직씨 말뿌리만 쓴 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는 이번에 생긴 실랑이가 가지는 진짜 뜻은 정작 다른 데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 말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말은 끊임없이 바뀌는 것이고 때로는 나아지고 때로는 뒷걸음치기도 합니다. 그러다 때로는 사라지기도 합니다.(죽음)
이처럼 말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말을 죽은 잣대로 틀에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이 그렇게 하고 있고 많은 언어학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말을 죽은 틀에 맞추는 것은 살아있는 것을 죽이는 것이고 말을 박제로 만드는 것입니다.(박제가 된 호랑이는 여전히 겉은 호랑이 모습이지만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니며 무서운 것도 아닙니다.)

# 나랏말 잣대는 ‘막음’, ‘꺽음’, ‘죽임’이 아니라 ‘살림’, ‘북돋움’이 되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것에 잣대를 댈 때는 그 잣대가 그 삶을 얽어매거나 옥죄어서는 안 되며 세워주고 북돋워 줘야 합니다.
따라서 ‘표준말’이라는 이상한 말장난을 버리고 푯대, 본보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뜻에서 ‘표준말’이란 말부터 바꾸었으면 좋겠고(‘표준말이란 낱말이 탈이 있는 건 아니나 그동안 ‘표준말’이 우리말을 꺽는 데에 쓰였기 때문입니다.) 나랏말 잣대도 좀 더 느슨해 지고 갈 모[방향]만을 보여주고 테두리만 정해주는 정도로 바뀌었으면 합니다.
지금 ‘표준말’ 규정에서는 규칙에 맞으면 써야 하는 것이고 규칙에 맞지 않으면 쓰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말고 이 말은 이렇게 생겨났고 이것이 더 알맞으므로 되도록 이것을 쓰시라는 본보기를 보여준다면 이런 어지러움이 없을 것입니다.(그런 뜻에서 김재훈 님께서 내놓으신 ‘본보기말’로 바꾸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저는 널리 쓴다는 뜻으로 ‘두루말글’을 밉니다.)

# 말은 낫고 못함은 있어도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 옳그름과 낫고 못함
여기서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무엇을 옳다 하고 무엇을 그르다 합니까? 말을 보기를 들자면, 말 달리는 것을 보고는 ‘빠르다’ 해야 옳고 ‘크다’거나 ‘세다’거나 하면 그른(틀린) 것입니다.
무엇을 낫다 하고 무엇을 못하다 합니까? 아름다운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면 썩 나은 것이고 ‘좋다’고 하면 좀 못한 것입니다.(그른 것은 아닙니다.)
먹거리, 접부채, 덮밥처럼 말 만드는 법에서 살짝 벗어난 말들이 없지 않으나 이것은 그른 것이 아니라 다만 좀 못한 것일 뿐입니다.(지금이라도 누군가가 쓰기 시작한다면 나중에 ‘접을부채’, ‘접은부채’, ‘덮은밥’이란 말이 다시 쓰이지 말란 법도 없을 것입니다.)

# 새로운 때에 새로운 잣대를!
이제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시대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심지어 불과 몇 년 전하고도 너무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머리 속은 여전히 옛날적을 헤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옛날처럼 규칙, 법칙으로 억지로 하려 하지 말고 보여주고 북돋워 주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지금처럼 표준말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 아니라 뿌리가 그러하므로 그것이 더 올바르고 되도록 그렇게 했으면 좋다는 본보기가 되었으면 합니다.(그러므로 표준말에 들었니 못 들었니 잘했니 잘못했니 하지 말고 ‘표준말’이라는 우리말을 죽이는 틀을 깨야 한다는 것입니다.)

* 덧글. 흐름에서 벗어날까 글 속에서는 쓰지 않았습니다만, 우리말을 틀에 쑤셔 넣으려는 이들은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그들이 그렇게 우리말을 틀 속에서 죽어가는 동안 한자말과 다른 들온말들이 우리말을 대신하도록 내버려두었다는 것에서 그런 꿍꿍이가 더욱 또렷해진다 봅니다.그들이 정한 엉터리 족새(흔히 ‘족쇄’로 쓰나 말뿌리가 ‘죡솨’인 우리말이 아닐까도 싶습니다.)에 매일 까닭이 없습니다.

‘짜장면’ 실랑이에 뭇사람들이 열을 낼 까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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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국립한자원’(지들은 ‘국립국어원’이라 합디다. 진짜 나랏말은 별로 신경 안 쓰면서…)에서 내논 ‘짜장면’ 얘기를 좀 하렵니다.

사실 뭇사람들이 한낱 ‘국립한자원’이 발표한 것에 이리 날카로울 까닭이 없습니다.
한낱 단체가, 그것도 우리말을 지키고 키워온 것에 아무 한 일조차 없는 단체가 우리말을 두고 어떤 권리를 가진 것도 아니고, 어떠한 규칙도 말을 따라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국립한자원이 몇 개 낱말을 표준말에 넣었다고 이렇게 유난을 떠는 것은, 거꾸로 그 동안 국립한자원이 우리 말글살이에 얼마나 억지를 부려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봅니다.
국립한자원이 아니라 그 어떤 우리말 단체, 기관도 말글살이를 이래라저래라 억지로 시킬 수 없으며(옛적 권위주의!) 다만 그 뿌리를 밝히고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랏말글살이 정책을 내놓는 기관이라 하더라도, 또 그 기관에서 내놓는 원칙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큰 테두리를 정하고 옳은 모[방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국립한자원이 내놓은 발표는 말글살이하고 얽혀있는 전문가나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에 있는 이들(말하자면 언론인, 가르치는 이들, 기자 같은…)이 주로 주의를 기울여야지 뭇사람들 말글살이까지 이렇게 옥죄어서는 오히려 말글살이를 어렵고 하고 우리말을 죽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라도 뭇사람들이 큰 테두리만 지키면서 편하게 말글살이를 해야 한다고 보고, 그것이 국립한자원이라는 엉터리 기관이 아니라 그 어떤 나랏말 정책기관이라도 원칙을 바로 세우는 정도와 좀 더 나은 말글살이를 보여주는 정도로 그쳐야 한다고 봅니다.
아울러 나랏말 정책기관이 규칙을 내놓는 곳이 아니라 여러가지 생각들을 펼쳐보이고 좀 더 나은 모로 가지런히 하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일을 보면서도 아직도 우리 사회가 위에서는 다짜고짜 시키고 아래에서는 무작정 따르는 옛적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 덧글. 지금도 우리말, 우리글을 두고 많은 얘기들이 있으나 오로지 ‘표준말’이라는 테두리 밖 얘기는 모두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온갖 실랑이거리를 만들고 있다 봅니다.(뿐만 아니라 이는 엉터리라도 꼭 하나를 ‘표준’으로 정해야 직성이 풀리는 권위주의하고도 통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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