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말글살이를 해야 하는 까닭

댓글 한 개

얘기 들어가기 앞서, 잠깐 하나만 여쭤 봅시다.
우리말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실제 있었던 얘기…
어떤 할머니가 서울에 가서 버스를 타고 ‘비닐하우스’ 앞에 내려달라고 했더랍니다.
기사가 ‘어디에 있는 비닐하우스요?’ 해도 그냥 ‘비닐하우스 앞’이라고만… 딸이 거기로 마중을 나올 거라고…
그 때는 서울 곳곳에 비닐하우스촌들이 꽤 있었고 지금처럼 전화도 흔치 않던 때라 기사와 한참을 실랑이를 했는데 다행히도 기사가 좋은 분이라 끝까지 이리저리 알아보고 경찰 도움까지 받아서 찾아낸 그 곳은… (서울 수유리에 있는)’아카데미하우스’였다고…

우리 사는 모습을 보면 철이 되면 으레히 하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한복을 안 입다가 명절 때가 되면 한복을 챙겨 입고, 평소에는 신경 안 쓰다가 때가 되면 순국선열에 대해 침을 튀기고, 평소에는 농촌에 관심도 없고 그보다 더 비싼 것들도 잘 소비하다가 김장철만 되면 간만에 찔끔 오른 배추값, 고추 값을 가지고 금치니 뭐니 하며 열 올리고…(그보다 더 비싼 빵, 커피는 잘도 마시더만…)
그런 것 가운데 우리글자(한글)와 우리말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들온말, 서양말 잘만 써 대다가 한글날 즈음만 되면 온통 ‘훈민정음’과 ‘세종큰임금’을 칭송하고, 스스로는 한번도 그런 적 없는 양 서양말을 쓰고 딴나라 글자를 써대는 세태를 꼬집기 바쁩니다.(그러면서 ‘한글’에 대해 떠올리는 건 천편일률 ‘나랏 말싸미 어쩌구 저쩌구…’ 왜? 배운 게 그것 밖에 없고 아는 게 그거 밖에 없으니까… ^^;;)

이쯤에서 앞서 했던 물음에 답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우리말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솔직히 아마도 ‘세종대왕’을 먼저 떠올리신 분들 계실 것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세종큰임금께서는 글자를 만들었지 말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한글날만 되면 서양 글자 쓰는 걸 탓하는 건 물론이고, 들온말, 서양말 하는 것까지도 ‘세종큰임금’을 끌어들여 꾸짖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그만큼 큰 목소리에 견줘 관심이 없다는 거지요.
사실 ‘훈민정음’ 얘기를 하면 뭔 거창한 이론들이 많이 따라 나옵니다만, 쉽게 말해서 ‘말'(그리고 ‘글’이나 ‘글자’도)은 생각을 서로 나누려는 뜻이 가장 큰 뜻입니다.
우리가 ‘훈민정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칭송하는 가장 큰 까닭도 쉽게 배우고 쉽게 쓸 수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제가 우리 글자와 우리말(저는 이것을 뭉쳐서 ‘한말글’-우리 글자는 ‘한글’, 우리 말은 ‘한말’-이라고 부릅니다.) 얘기를 하면서 그것이 우리 것이니 아껴야 한다는 맹목적인 칭송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글자만 봐서, 우리가 써 오던 글자가 많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자’는 아시다시피 너무 어렵습니다. 심지어 그 동네 사람들조차 너무 어려워 어떻게든 버려볼 궁리를 했고 그래서 요즘은 로마자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중국에서는 ‘평음’이라고 합니다.)
그 밖에 ‘이두’도 있고 ‘구결’도 있고… 여튼 조금이라도 쉽게 적어 보려 꽤 애를 썼지만 ‘훈민정음’만 한 게 없습니다.
‘말’로써 보자면, 조금 다른데…
사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에는 한자말도 꽤 있고 들온말[외래어], 딴겨레말[외국어]도 이미 꽤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잊혀져 가는 맨우리말보다 그런 말이 더 뜻이 쉬이 와 닿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되도록이면 우리 글자, 우리 말을 아껴 쓰자고 하면서도 실제 말글살이에서는 설령 들온말이 좀 섞이더라도 쉬운말을 쓰자고 주장하는 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말’의 가장 큰 쓰임새는 생각을 서로 나누고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가장 좋은 말은, 못 배운 사람이나 머리가 좀 모자라는 사람조차도 이해할 수 있는 말이 가장 좋은 말일 것입니다.
어떤 무리들이 끼리들만 쓰는 ‘곁말'[흔히 ‘은어’] 만큼이나 나쁜 것이 어떤 계층이나 배움 정도에 따라 무리들끼리만 쓰는 말입니다.
그런 말은 다른 무리 말고는 따돌리는 말이고 서로 격차를 두려는 행위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괜히 쉽게 말해도 될 말에 서양말이나 한자말 넣어 쓰는 건 ‘내가 그대들보다 뛰어나거나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흔히 범죄자나 혹은 새 세대끼리 쓰는 곁말은 나쁘다 하면서도, 실제로 우리는 한자말이나 서양말을 통해 이런 짓을 자주 하곤 합니다.(심지어 저 역시도 어떤 까닭으로 일부러 그렇게 쓰기도 합니다.)

가끔 공공장소에 가서 여러가지 알림판을 보다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Caution’과 ‘주의’ 가운데 어느 말이 더 많은 사람이 알아 들을까요?
‘Danger’와 ‘위험’ 가운데 어느 말이 더 많은 사람이 알아 볼까요?
그 뿐만 아니라 이 나라 행정을 보면 많은 지자체들이 MOU(업무협정양해각서-이건 바꿔도 뭔 말인지 모르겠…ㅡ.ㅡ)를 맺고, TF(특별전담조직)를 만들고 서류를 ‘게첨’하고 요금을 ‘징구’하고 있습니다.(사실 이미 ‘국어기본법’이란 것이 있음에도 앞서 법을 지켜야 할 정부 조직부터가 도무지 지킬 마음이 없는 모양입니다.)
특히나 위험표지 같은 것을 서양말이나 한자말을 써서 못 알아 듣고 피해를 보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그 주체들이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만약 위급시 안내방송을 딴겨레말을 먼저 쓴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항의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딴겨레말글로 써 놓은 위험 혹은 경고 글귀는 여전히 많고 항의하는 사람도 적습니다.

말글은 쉬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말과 한글이 가진 제 값어치이기도 하고 말글의 제 값어치이기도 합니다.
쉬운 말글을 쓰는 것은 가끔 우리의 권리를 지켜주기도 하고 우리의 목숨을 지켜주기도 하며 사람들이 좀더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쉬운말글은민주주의입니다

세종큰임금께서 만드신 건 ‘말’이 아니라 ‘글자’라는 아주 쉬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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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기자조차도,
세종큰임금께서 만드신 건 ‘글자’지 ‘말’이 아니라는 그 단순한 사실을 모르나 보다. ㅡ.ㅡ

<[한겨레] 갑분싸, 고답이…세종대왕님도 ‘별다줄’ 하셨을 걸요>

#안말글 #훈민정음 #한글 #세종 #개나소나 #아는체(이건 낚시^^;)

– ‘#아는체’가 왜 낚시냐 하면, “한글, 우리말, 세종큰임금 얘기하면서 ‘아는체’가 아니라 ‘알은체’가 맞다*는 둥 하는 딴지를 거는 사람이 꼭 있거든요… ^^;

우리말 가락[성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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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말에는 ‘가락’이 있습니다.(흔히 우리는 지나 말을 그대로 들여와서 ‘성조’라고 합니다.)
근데 이 ‘말가락’이란 건 거진 모든 말에 다 있고 당연히 우리말에도 있습니다. 지금 그 얘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

타이 말에는 같은 소리값을 가진 말이 꽤 있어 가락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말이 꽤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말에도 그런 말이 좀 있습니다.
다만 차이라면, 소리값이 같은 낱말이 별로 없는 말글에서는 말가락을 그리 내세우지 않는데 견줘, 같은 소리값이 많은 말글에서는 말가락을 내세울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계실 지나말-한족말-이 바로 그렇습니다.(그에 견줘, 아마도 가장 단순한 말가락 또는 말가락이 없다고 할 만한 말로는 이탈리아말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진 모든 말이 앞을 낮췄다가 뒤를 높이고 끝을 내려서 마무리하면 된다고 하니…^^ 여튼…)
우리말에서 ‘한국’을 높였다가 툭 떨어뜨리는 값으로 소리내는데, 만약 낮은 데서 높여 소리내면 어색해서 딴 나라 사람 흉내를 내는 것 같을 것입니다.
또 다른 보기로 ‘말’을 약간 높여서 소리를 빼면 짐승을 일컫는 것이고, 낮추면서 소리내면 뜻을 가진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예, 압니다. 다르게 배우셨지요? 뭔가 더 궁금하시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있으시면 얼마든지 물어봐 주십시오. ^^ 지금 여기서 그 얘기를 다 풀 수 없으므로…)
또, 요즘은 잘 안 쓰기도 하지만, ‘저’를 약간 높여 소리내면 나를 높인 말이 되고, 낮췄다가 살짝 높이면 그 사람, 한자말로는 본인을 뜻합니다. 이게 한자말의 영향과 서로 나눠쓰는 데에 불편함 때문에 요즘은 잘 안 쓰는 말이 되어 버렸지요.(아 물론 조금 다르게 소리나는, 젓가락을 뜻하는 말도 있습니다. ^^)
특히 이 말은, 둘 다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보니 함께 쓰는 일이 많고, 글로 적으면 살짝 헛갈리기도 쉽다 보니 더더욱 함께 쓰는 데에 불편해서, 갈음해서 쓸 한자말이 있는 쪽이 더욱 안 쓰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하지만 가짐꼴 같이 모양이 바뀐 꼴로는 여전히 많이 쓰고 있지요. 즉, ‘저’ 꼴로는 잘 안 쓰지만 ‘제’ 콜로는 여전히 꽤 많이 쓰고 있습니다.)

자, 어떻습니까? 배운 것에만 기대지 말고 고루 그리고 두루 살펴 보았을때 과연 우리말에 말가락[성조]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역사나 사회, 정치 뿐만이 아니라, 문화에서 가장 큰 축인 말글에서도 우리 스스로 서는 힘을 키우고(바로 세우고!) 얼을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어느 놈들 때문에)힘이 없지, 문화가 없는 겨레입니까? 얼이 없는 겨레입니까??

‪#‎한말글‬ ‪#‎말글‬ ‪#‎언어‬ ‪#‎가락‬ ‪#‎말가락‬ #‎성조‬ #‎문화‬ ‪#‎얼‬ 우리말[한말] 한마당

말가락[성조] 때문에 헛갈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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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동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찬물을 받아왔어요?” (예, 동무끼리도 가끔 높임말을 씁니다. 그리고 들린 대로 적었습니다. ^^)
김이 펄펄 나는 게 보이는데 무슨 소리지?
“아뇨. 뜨거운 물인데요…”
동무가, “아뇨, 찬물이냐고요…”(들린 대로…)
나, (멍 하니 있다가)”뜨거운 물이라니까요…”
동무, “아니,… 차 잎을 넣은 물이냐고요…”

아하~!!!
찻물이나 찬물이나 비슷하게 소리나는 것 같지만,
차를 우린 물은 높다가 뚝 떨어지는 가락이고, 차가운 물은 약간 높다가 약간 떨어지는 가락입니다.

사대주의에 쩔은 딴겨레말 떠받들고 우리말 죽이는 국립국어원 과 얼빠진 나라말글 학자들이 우리말을 이렇게나 죽여 놨습니다. (일제 핑계 대지 맙시다.)

우리말[한말] 한마당

글자로써 한글과 말로써 한말[우리말, 배달말, 겨레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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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우수하네 어쩌네 하면서 정작 글에서는 (‘글자’로써 ‘한글’과 ‘말’로써 ‘우리말’-‘한말’, ‘배달말’ 혹은 ‘겨레말’ 같이 여러가지로 씁니다만…)’우리말’ 얘기를 할 뿐만 아니라, 가끔은 ‘말’과 ‘글’조차 헛갈려 가며 글을 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사 사람이 그러는 것은, 그들이 전문가가 아니니 잘못 알 수도 있고 또렷치 않게 알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른바 ‘전문가’라 할 만한 이나 제대로 된 알거리를 전해야 하는 이들까지도 그렇듯 자주 헛갈려서 얘기를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그것은, ‘우리 글자’를 이르는 이름이 있는 것에 견줘, ‘우리 말’을 일컫는 이름은 딱히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바로 ‘언어’에 대한 뜻매김 때문에 헛갈리는 것도 있을 것이라 봅니다.(사실, ‘우 리 말’을 일컫는 이름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한글’에 견줘 ‘한말’이란 말도 있고, 우리 말은 한글이 있기 훨씬 앞서부터 있던 것이라 ‘배달말’, ‘겨레말’ 같이 부르는 이름도 있습니다. 다만, 한자말이나 떠받들면서 정작 우리말에는 별 눈길을 주지 않는 나라말글학자들이, 굳이 별로 이뻐 보이지도 않는 우리말에 이름이 없는 것에 그리 마음 쓰지 않기 때문에 널리 쓰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시다시피 한자말 ‘언어’는 두 글자 모두 ‘말씀’이라 풀고, ‘말씀’이라는 것은 ‘말’을 높이는 말입니다.
하지만 쓰임새로 보면, ‘언어’는 가끔은 ‘말’만을 일컬을 때도 있고 때로는 ‘말’과 ‘글자’, 그리고 ‘글자’에 덧붙여 ‘글’까지도 아울러 얘기하기도 합니다.(말과 글을 뭉뚱그려 ‘글’이라 하겠습니다.)
보기를 들어 한자말로 ‘한국어’라 하면, 그냥 ‘한국말’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뭉뚱그려서 ‘말’을 바탕으로 해서 ‘글’까지를 얘기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또렷히 하려고 ‘언어’를 ‘말글’이라 풉니다.
그러면 자연히 ‘한국어’는 ‘한말글’이 됩니다.(‘한국어’를 ‘한국 말글’이라 풀 수도 있지만, 우리가 그냥 ‘나라’라고 하면 ‘우리 나라’를 얘기하고 ‘국사’하면 우리 역사를 얘기하듯이 굳이 우리가 스스로 것을 ‘한국 말글’이라 할 까닭까지는 없다 봅니다.)
이렇게 ‘한국어’를 ‘한말글‘ 이라 하고 보면, 우리가 쓰는 말 만을 얘기할 때는 ‘한말’-앞서 말씀 드렸듯이 ‘배달말’, ‘겨레말’ 같이 쓰는 이도 있습니다.-이라 하면 되고, ‘우리 글’까지도 아울러 이를 때는 ‘한말글’이라 하면 뜻도 또렷하고 헛갈릴 일도 없습니다.(그리고 ‘우리 글자’를 말할 때는 해오던 대로 ‘한글’이라 하면 되고요…)
그리고 그 참에, 이름도 없이 이렇게 저렇게 이르던 ‘우리 말’에도 버젓한 이름을 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아울러, ‘한말’이라는 이름은, 한글이 있기 훨씬 앞서부터 우리 말이 있었다는 점에서 반드시 옳은 이름은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 글자 ‘한글’에 견줘 쓰기도 좋거니와 함께 붙여서 ‘우리 말글’을 ‘한말글’이라 할 수 있고 입에도 쉬이 익어서 저는 그리 쓰고 있습니다만,… 여러분들은 어떤 말이 마음에 드시는지요…^^

우리말[한말] 한마당/ 한글날을 한말글날로 쇠기/ 한말글 투로 올바로 말하고 쓰기/ 우리말 살려 쓰기

뜻매김도 못 하는, 허세 가득한, 이른바 전문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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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말을 한다고 세종큰님금께서 화를 낼 자격은 없다.
왜???
세종큰님금께서 만든 것은 ‘말’이 아니라 ‘훈민정음’이라는 ‘글자’이기 때문에!!!
그러니 한글날에 엉터리 말을 쓴다고, 엄한 세종큰님금을 빌어 꾸짖는 따위 글은 쓰지 마시라!
그게 아니면, ‘말’과 ‘글자’나 좀 구분하면서 글을 쓰던가!

도대체 뜻매김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전문가 인 양 행세하고, 저만 잘난 척 하는 건지…

* 덧. 이런 얘기 하면 오히려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될 여사 사람이 지레 부끄러워 하는데,…
여사 사람은 모를 수 있고 헛갈릴 수 있다.
여사사람은 모르거나 틀리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다만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일 뿐이다.

우리말[한말] 한마당 / 한글날을 한말글날로 쇠기

우리말이 가진 좋은 점 – 말은 넋이요 글은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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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누리사랑방[온라인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글과 그림이랍니다.
‘노란 빛’을 나타내는 데에 우리말이 여러가지 표현을 쓰는 것을 두고 쓴 글인데요…
‘누리끼리’, ‘노릇노릇’ 같은 말들을 들어 놓고는 끝말미에는 ‘놀라운 한글’이라고 했네요.
우리가, 심지어 왠만큼 알 만한 사람도 그렇고 가끔은 말글을 두고 제법 아는 것이 많을 것 같은 이들조차도 ‘우리말’과 ‘우리글’을 헛갈리거나 나누지 못하는 이들이 꽤 있습니다.(가끔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뜻을 담아 입으로 내는 소리는 ‘말’이라 하고 그것을 기호로 적은 것을 ‘글'(글자)이라 합니다.
‘노랗다’, ‘누렇다’, ‘누리끼리’ 같은 것은 비록 여기서는 글자로 적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말이 가진 좋은 점입니다.(글자인 한글을 다만 그것을 적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얘기를 하다 말고 ‘한글의 우수성’이라니요…
위에서, ‘가끔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은, 말과 글자 차이를 알 만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할 때는 차마 우리말이 가진 좋은 점을 인정해 주기는 싫고, 한글은 누구나 받들어 마지 않으니 마지못해 한글이 좋은 점으로 묶어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자주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말은 넋이요 글자는 몸입니다. 말은 고갱이고 글(글자)은 그것을 담는 그릇입니다.
우리말을 바로보지 않고서 한글을 얘기하는 것은 마치 ‘호랑이 박제’를 두고 ‘호랑이’라 우기능 것과 같다 봅니다.

한국의 노란색 명칭, 누리끼리부터 노릇노릇까지 “놀라운 한글”

[윤혜영 기자] 한국어는 참으로 놀라운 언어임에 분명하다.

영어의 ‘Yellow’는 우리 말로 번역하면 ‘노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노랑’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이를 바탕으로 꾸며진 그림 한 장이 화제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한국의 노란색 명칭’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그림을 보면 각종 노란색의 진하기에 따라 그에 대응하는 한글표현이 적혀 있다.

가장 연한 노랑부터 진한 순서로 ‘노리끼리-노르스름-연노랑-누런-샛노랑-노랑-노릇노릇-진노랑-쩐노랑’ 순으로 배치돼 있어 그 다양함(?)이 놀라움을 자아낸다.

사실 이는 ‘노랑’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파랑 등의 단어도 다양하게 표현 가능하다.

이에 네티즌들은 “역시 한글의 우수성”, “혀 짧은 소리까지도 표현 가능하니 놀라울 따름”, “한국인만이 뜻을 완전히 알아들을 수 있는 한글의 다양성”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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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온말은 우리말이 아니라 빌려쓰는 딴겨레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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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어떤 분이 ‘다음지식’에 ‘들온말'[외래어]을 두고 올린 글에 단 댓글입니다.
낱말 뜻매김하고 얽힌 것이라 보기에 따라 여러가지 풀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밝힙니다.

지금 쓰고 있는 ‘한국말’ 규정에는 ‘민우리말'[고유어], ‘한자말'[한자어], ‘들온말'[외래어]가 있는데(이 밖에 우리말이 아닌 것으로 ‘딴겨레말'[외국어]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표준말’ 규정 만큼이나 잘못된 것입니다.
말이란 것이 본디 갈래를 나누기 흐릿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보기를 들어 민우리말도 딴나라말에서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뿌리를 모르고 어림만 할 뿐이지만…) 특히 ‘한자말’ 가운데는 옛 지나[중국]에서 쓰던 한자가 들어와서 쓰던 말도 있고, 일본에서 들어온 한자말도 있으며 심지어 옛날 우리가 번듯한 글자가 없을 때에 양반들이 만들어쓰던 한자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엉터리 나라말글학자들이 이 한자말을 우리말에 넣으려고 우리가 쓰기만 하면 우리말이라 하고 보니 이제는 우리가 조금만 쓰기만 하면 어떤 말이라도 다 들온말[외래어]라는 이름으로 우리말로 치고 있습니다.
보기를 들어, ‘데스크’는 비록 한자말이지만 ‘책상’이라는 옛날부터 쓰던 말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우리말이 되었습니다.(그리고 심지어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우리가 쓰지도 않는 한자말이나 일본에서 들어온 한자말까지 사전에 실어 한자말을 늘려 놨습니다.)
이에 온전히 우리말로 뿌리 내리지 않은 말은 그냥, 우리가 쓰고 있기는 하지만 ‘딴겨레말'[외국어]을 빌려 쓴다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느슨한 규정으로는 누구라도 조금만 쓰기만 하면 다 우리말이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들온말에는 그에 앞서 쓰던 말이 있기도 하지만 없기도 합니다. 보기를 든 ‘버스’나 ‘택시’같은 것이 그 보기일 것입니다.(‘비행기’도 우리가 만든 말이 아니라 한자말이 들어와 그냥 쓰인 것으로 이도 정확히는 ‘들온말’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뉴스’같은 들온말은 우리말로 갈음하자면 ‘새 소식’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들온말[외래어]에는 그에 걸맞은 우리말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쓰지 않으면 우선은 모두 ‘딴겨레말'[외국어]이 되겠지요. 그리고 지금 규정으로는 우리가 쓰는, 밖에서 들어온 말을 ‘들온말'[외래어]라 하고 있습니다만. 넓게 보자면 ‘민우말'[고유어]가 아니라면 다 들온말[외래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입으로만 기리는 한글과 눈길 못 받는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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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아시나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독립신문과 독립문은 결코 이 나라 독립을 바라던 이들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물론 상해임시정부에서 내던 ‘독립신문’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독립’은 중국(그때는 청나라)으로부터 벗어나서 일본에 붙자 뜻으로, 또렷하게 말하자면 친일단체였고 친일신문이었습니다.(1898년 8월 20일자 독립신문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에 올 예정인데, 그는 세계적 정치가이고, 대한제국의 독립 사업에 대공이 있는 사람이므로 정부와 인민은 각별히 후대하기를 바란다는 사설을 실었다. – 위키백과)
독립문 또한 독립협회가 만든 것으로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뒤에 세웠는데 건널[현판]에는 이완용이 글씨를 쓰고 그 아래에는 대한제국 황실 무늬인 오얏꽃을 넣었습니다.
(독립문하고 얽힌 얘기는 http://wp.me/p12vFi-3Ou1zp 도 봐 주시압.)

제가 독립협회와 독립문 얘기를 하는 것은, 아직도 독립협회하고 독립신문이 독립운동에 힘쓴 것으로 아는 이가 많다는 것 때문입니다.(독립과 광복을 두고는 http://wp.me/p12vFi-9FRKWN 를 봐 주시압.)
뿐만 아니라, 아직도 이런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보기를 들어, 삼일절만 되면 너도나도 독립만세를 외치는데, 이 가운데는 옛날 일제에 붙어먹던 숭일부역무리들도 있습니다. 그들도 겉으로는 독립만세를 외치는 거지요.
또한 그런 일이 바로 우리 말글을 두고도 있는데, 한자를 떠받들고 우리말을 죽이는 사대주의 무리들도 한글 만세를 외치는 거지요.
그러면서 마치 자기들이 대단한 애국자인 양, 한글을 사랑하는 양 수선을 떱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나라 나라말글학계에는 그런 자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년에 하루, 한글날이란 것이 있어 한글은 그나마 하루 만이라도 눈길을 받는데, ‘우리말'(한말, 어떤 이는 배달말, 겨레말이라고 하기도…)은 어쩌나요?
우리말은 누가 눈길을 주고 누가 빛내 줄지요.
우리말은 마치, 옛날 독립운동을 하고도 딴나라 땅에 묻혀 있거나 외진 데에 묻혀 사람들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민초들 같습니다.

우리 말과 한글날 – 우리말이 살아야 한글이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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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한글날 – 우리말이 살아야 한글이 살아납니다.>

어김없이 한글날이 돌아오고, 그 동안 온갖 들온말[외래어]을 써 대던 언론들도 앞다투어 뭇사람들 말글살이를 꾸짖습니다.
그리고 방금, 인도네시아 찌아찌아겨레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던 세종학당이 모두 물러나왔다는 소식을 봤습니다.
‘한글’ 얘기만 나오면, 과학에 맞느니 우수하느니 하는 한글인데 왜 밖에서는 그리 인정받지 못 할까요?
그리고 한글이 우수한 것은 왜 거진 딴나라 학자들 말을 근거로 드는 걸까요? 우리는 딴나라 학자들만큼 우리 글자인 한글을 모르는 걸까요?
프랑스가 제 나라 말글을 지키고 빛내려 얼마나 힘을 쓰는지, 영국이 영어를 널리 퍼뜨리고 빛을 내려고 얼마나 힘을 쓰는지는 우리는 모르는 걸까요?
우리가 한글날을 쉬는 날로 만들어서 기리고, 한글이 아무리 우수하다고 말로만 떠든 들 그것을 밝혀내지 못하고 그것은 이루어내지 못하면 공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철수 목판그림, 백성의 소리, 하늘의 소리, 1992, http://www.mokpan.com

우리가 이토록 한글을 칭찬하면서도 우리 말글이, 아니 한글 만이라도 빛을 보지 못하는 것에는 몇 가지 큰 흠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말글을 어렵게 쓰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 앞에서 편하게 얘기하던 사람도, 남 앞에 세우거나 글을 쓰게 하면 온갖 어려운 말투와 배배 꼬인 말투를 마구 씁니다.
게다가 행정에 쓰이는 말투나 법률 말투는 또 얼마나 어렵던지요.
어려운 낱말과 말투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없애려는 ‘쉬운 영어 쓰기 운동'(Plain English Campaign)처럼, 우리도 쉬운 한말글 쓰기 운동을 통해 말글이 어려워서 곤란을 겪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는, 우리말글 잣대가 너무 어렵고, 뭇사람들 말글살이를 옭아매고 있습니다.
아무리 온갖 짐승 가운데 왕이라 한듯, 철창 안에 갇히고 쇠사슬에 묶인 호랑이를 누구 두려워 하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우리말글이 온갖 잣대에 묶여 있으니 이것을 풀고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 말과 글을 늘상 쓰는 우리에게조차 우리말글 잣대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게 제대로 된 일일까요?
말글 잣대가 쉬워야 우리는 물론이고 다른나라 사람도 쉬이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는, 우리말글 교육에서도, 다만 시험을 보기 위한, 이론에 치우친 나라말 공부만 시키고 있습니다.
넷째로는, 우리말글(한말글)이 가진 좋은 점을 조금도 살리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제가 우리 말글을 없애려고 망쳐놓은 한글과 우리말 잣대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일제가 우리 말글을 없애려 망쳐놓은 한글로는 지금 우리가 쓰는 말소리조차 제대로 다 적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럴 듯한 우리말사전, 말뿌리사전, 사투리사전도 제대로 없습니다.
우리 글자 표준도 제대로 만들지 못해, 세벌식 글쇠를 버리고 두벌식을 아직 쓰고 있으며, 첨단기기에서 한글 표준화 작업은 그나마 중국에 첫손[선수]을 뺏길 판입니다.
우리 문학작품을 바깥에 알릴 변변한 기구 하나 없고, 딴겨레말을 우리말로 제대로 옮겨줄 기구 하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종큰임금께서 훈민정음을 만든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가지 뜻이 있을 수 있겠지만, 백성들이 편한 말글살이를 하고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겪지 않게 하려는 뜻이 크다 봅니다.
그런데,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지 오백육십해가 훨씬 지났지만, 한글은 오히려 훈민정음 때보다 더 꺾이고 우리말은 여전히 서로 뜻이 통하기 어렵고 온갖 들온말로 어지럽습니다.
옛날 뭇백성들이 관청 문서를 알아보기 어려웠던 것처럼 지금도 행정 말투는 여전히 우리가 흔히 쓰는 말투하고 다르고, 법률 말투는 일제 때 말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꽤 여러 차례 바뀐다고 바뀌었는데도…)
그리고 우리 말과 우리 글자를 빛내려는 이들이 가끔 있기는 하지만, 나라말글에서는 우리 말과 글자가 가진 장점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글자가 말을 제대로 드러내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처음 훈민정음을 만들 때 세종큰임금과 그 학자들이 겪던 턱[반대]을 지금도 고스란히 겪고 있습니다. 무려 5백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한글날만 되면 다들 한글을 칭찬하는 데도, 한글이 우수하다면서 그렇게 칭찬하는 데도 이처럼 옛 것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못한 것은 바로 글자의 뿌리, 바탕이 되는 ‘말’을 바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은 그 겨레가 가진 얼을 비추는 거울이자,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또 ‘글자’가 줄기라면 ‘말’은 뿌리입니다.(그런 뜻에서, 한글날을, 우리말과 한글을 함께 기리는 한말글날로 할 것을 제안해 봅니다.)
권위스런 말투를 쓰는 사회는 권위에 찌들어 있다는 것이고, 험한 말투를 쓰는 사회는 그 만큼 사람들이 살기가 팍팍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 사람이 쓰는 말투와 저 사람이 쓰는 말투가 다르다는 것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는 뜻일 테고(말투가 그렇다는 것이지 사투리를 말함이 아닙니다.), 편하게 말할 때 말투와 글을 쓰거나 남 앞에서 말할 때 말투가 다르다는 것은 마음가짐에 겉치레가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한글날이 되어 세종큰임금의 뜻을 기리고 한글을 칭찬하는 것은 좋지만, 그 한글이 가진 장점을 우리 스스로 키우지 못하고, 또 그 뿌리, 바탕이 되는 말을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입으로만 하는 공염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는 바야흐로, 한글이 가진 장점을 키우고 또 나아가 말을 바로 세움으로써 뭇사람들 말글살이를 편하게 하고, 말을 통해 사회도 바꾸고, 나아가 우리 말글이 이 땅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애써야 할 때라고 봅니다.

* 편집자 분께 드리는 말씀 : 이 글 가운데 좀 낯설 수도 있는 낱말이나 말투도 있습니다만, 그런 낱말에는 꺽쇠를 쳐서 풀어놓았으니 뜻을 헤아리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아울러 맞춤법에 맞지 않는 말도 있을 수 있으나 주로 일부러 그렇게 쓴 것이니 함부로 고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 덧붙임. 이 글은, 한글날을 맞아 안철수 선본 아래 ‘정책 네트워크 “내일”‘쪽에 보낸 글을 옮겨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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