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말을 살려쓰는 힘[어휘력] – 한자 교육에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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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자를 떠받드는 이들이 말을 살려쓰는 힘[어휘력덧붙임]을 키우려면 한자를 배워야 한다며 초등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려 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엉터리 같은 논리가 사람들에게도 먹혀들어 그 생각에 함께 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듯 하고요…
한자를 가르쳐야 말을 살려쓰는 힘이 늘어난다는 게 사실일까요?

보기를 들어 얼마 앞서, ‘6.25는 남침인가, 북침인가?’하는 물음에 고등학생들이 거진 ‘북침’이라 답한 것을 두고 어떤 무식한 년 말대로 역사교육이 제대로 안 되어서가 아니라 ‘북침’이란 낱말이 ‘북이 쳐내려왔다’는 뜻으로 알고는 그리 답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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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북침’이 ‘북이 쳐내려 온’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북으로 쳐들어갔다’는 뜻을 안다고 말을 살려쓰는 힘이 느는 것입니까?
단지 ‘한자’와 ‘한자말’만 두고 보면 그것도 말을 살려쓰는 힘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크게 보자면 그것은 말의 뜻을 제대로 아는 것일 뿐, 말을 살려쓰는 힘은 아닙니다!

‘말을 살려쓰는 힘’이라고 한다면 보기를 들어, ‘어서’, ‘빨리’, ‘일찍’, ‘서둘러’ 같은 비슷한 뜻을 가진 말을 그 뜻에 따라 제대로 살려쓰는 것이야말로 진짜 ‘말을 살려쓰는 힘’일 것입니다.
나라말글[국어]을 가르지는 과목에서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이런 표현들이 우리말에는 무척 많습니다.
하다못해 요즘 흔히 엉터리로 쓰는 ‘다르다’나 ‘틀리다’, ‘너무’와 ‘많이’ 같은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사실 ‘틀리다’를 두고는 저는 따로 하고픈 말도 있으나 지금 여기서 말하는 주제는 아니므로 다른 데서 말하고자 합니다.)
이렇듯 가르쳐야 할 우리말, 가르쳐 두면 말을 살려쓰는 힘이 엄청나게 늘어날 수 있는 것들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서 겨우 ‘한자’를 가르치고 한자말 뜻을 알려준다고 해서 그것을 ‘말을 살려쓰는 힘'[어휘력]이라 하다니요!
그리고 이 땅에 우리말글을 연구하는 이가 몇이며 나라말글을 가르치는 선생이 몇이건대 그런 것도 제대로 바로잡지 않고, 또 그런 얘기도 하지 않는 건지요!(혹 말을 않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모르고 있는 건 아닙니까?)

무엇이나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합니다.
엉터리로 하는 것은 종종 안 하니만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한자를 가르치는 일, 정말 꼭 해야 하는 일입니까? 그렇습니까??

딱 잘라 말하건대, 한자는 두고두고 우리말글을 좀 먹을 것이며 우리 얼을 갉아먹을 것입니다.

* 덧붙임. ‘말을 살려쓰는 힘’이란 말이 너무 길어 굳이 줄이고자 한다면 ‘말을 쓰는 힘’이란 뜻으로 ‘말쓸힘’같이 줄여야 합니다. 말마디[어절] 앞을 따서 말을 만드는 것은 (영어에서는 로마글자 특성에 따라 흔히 쓰는 바이지만)우리말을 죽이는 아주 나쁜 버릇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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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없이 살아 볼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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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를 즐겨 쓰는 세상으로 되돌아 가고 싶은 이들에게,

그들만 따로 모아, 한글은 조금도 쓰지 말고 한자만 가지고 살라고 해 보고 싶다.

당신들이 그렇게 떠받드는 한자라는 것, 한글이 없으면 얘기 나누기도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을 머리는 없는 걸까…???

우리말[한말] 한마당

* 그렇게 한자가 뛰어나고 좋거든, 한글없이 한자로 글살이를 해라. 한글 끼워넣지 말고…   “한글이 니 씨다바리가?” ^^;;

얼숲에서, ‘한자교육’을 두고 ‘Yong-kwan Lee’ 님과 나눈 얘기(201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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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숲에서, ‘한자교육’을 두고 ‘Yong-kwan Lee’ 님과 나눈 얘기(20110217)

이른바 ‘한글컨텐츠’(?)를 연구한다는 분이 가지고 계신 생각이 너무나 터무니없어 옮겨놓습니다.

Yong-kwan Lee 어떤 명분으로도 교육을 반대해서는 안됩니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배울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왕성할 때, 그들이 배우는 것이 무엇이든 좋고 유용한 것은 모두 배워야 합니다. 그런일로 화제를 삼고 있는 것 자체가 우습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습니까?

Yong-kwan Lee 한자는 사물을 상형화하는 문자가운데 최고의 문자입니다. 지구상에 그와 같은 문자는 없습니다. 한글이 우수하지만 그것을 대치할 수 없습니다. 물론 한자는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을 한글이 가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물을 개념화하는데 있어서 한글과 한자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그 역량을 발휘합니다. 한자가 정적인데 비해 한글은 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물과 감정의 표현을 드러낼 수 있어서 정적인 한자가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표현하는 놀라운 기적이 곧 한글입니다. 그러나 한자가 나타내는 개념을 단숨에 정리하는 역량을 한글이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어린이의 두뇌와 상상력을 개발시켜주기 위해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우리네 교육의 현실인데, 일부러 그와 같이 역사가 깊고 우수한 문자세계를 배울 수 있는 역량이 뛰어난 시기에 기어이 막아야 한다고 하는 이유를 듣고 싶군요…

Yong-kwan Lee 교육정책에 머무르는 교육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교육은 정책으로 좌지 우지 될 대상으로 머물 수 없습니다. 정책으로 사람을 기른다고 생각하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육을 주장하다보니, 축사 짓듯이 학교에 학생 가둬놓고 사육하는 공교육 현장만 즐비하지 않습니까. 자라나는 두뇌의 사리분별을 위해서 선현의 슬기를 있는대로 다 전해줘도 모자라는 것이 부모가 원하는 교육일 것입니다. 학교에 가둬놓지 않고 보다 자유스러우면서도 교육의 경쟁력을 잃지 않고 있는 선진교육의 사례를 얼마든지 관찰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교육을 숭상하는 나라이므로 대통령이 좌우지 하는 교육부의 수장이나 정당이 좌지우지 하는 교육정책은 국가 와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교육을 일반 산업정책과 같은 수준에 두고 정당이나 인물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니 소신이니 하면서 흔들어 대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의 연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Yong-kwan Lee 말과 글은 소통의 수단에서 다름이 아닐 것입니다. 소통은 나와 다른 개체와의 교류입니다. 나와 다른 것에는 말도 있고, 뜻도 있고, 문자도 있고, 소리도 있습니다. 서로 다르지 않다면 소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가 없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중국과도 북한말과도 영어와 다른 수많은 종류의 언어들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것일 것입니다. 소통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은 어린 시절에 길러 주어야 할 귀중한 자산의 하나일 것입니다. 영양 이 불충분하면 비타민이라도 먹이는 것이 몸에다 하는 투자인데, 하물며 정신에 풍부한 상상력을 길러줄 수 있는 언어적 영양을 일부러 불충분하게 만들자는 주장은 사실 황당한 면이 있습니다. 이 세계의 사회에서 언어끼리 서로 어울리면 그 효과가 훨씬 크게 배가 되는 양상을 보여 줍니다. 예를 들어서, 동남아 국가의 하나인 타일랜드나 캄보디아나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그들의 문자으로 작성한 프로필을 가지고 소셜네트워크에 참여하여 친구가 되려는 제안을 받아 본 적이 좀 있습니다. 그럴 경우, 그들의 글을 알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기 보다는 이런 무지한 경우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상대의 입장을 배려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즉 읽히지 못하는 것은 소용이 없는 것이 될 뿐이지요. 아무리 좋은 프로필이나 생각을 전하고 싶어도 한글만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으로 아프리카사람들에게 한글로 된 설명서를 줄 수 만은 없을 터이며, 소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는 더군다나 매너가 결여된 행동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서로 다른 말이나 글이나 말소리를 익히게 되면 그 만큼의 두뇌를 개발하는 세계가 열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두뇌의 역량에 의한 지식은 자극과 상상력에 의해서 발달이 이뤄집니다. 커나는 자녀들의 두뇌를 일부러 마비시키거나 미숙한 채로 발달을 방치할 수 있는 여지는 없애는 것이 교육의 본질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