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말글은 민주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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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마 웃는 사람도 없겠지만, 옛날에 이런 우스개 있었습니다.

김영삼 씨가 군대에 가서 소대장이 되었다.
소대장이 소대원을 이끌고 나아가다 적군을 발견하고 외쳤다.
“마카 수구리”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 소대원들은 반 쯤이 죽고 말았다.
‘마카 수구리란 전부 엎드리란 뜻’이라고 교육을 시키고 또 전진하던 중 적이 나타나 김영삼 소대장이 외쳤다.
“아까 맹쿠로”(아까처럼…)
그래서 남은 소대원마저 모조리 죽고 말았다는 얘기…

말과 글은 왜 씁니까?
그야 뜻을 전하려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보는 말 가운데는 도무지 뜻을 알 수 없는 말이나 글들이 많습니다.
그냥 요즘 간판이나 젊은이들 말투나 이런 걸 먼저 떠올리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그 전부터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져 왔습니다.
범죄자들이 은어를 쓰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하는 말을 남들이 못 알아 듣게 하고 또 하나는 그런 특이하고 저들만 아는 말글을 씀으로써 소속감을 가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범죄자들 사이에서만 벌어집니까? 혹은 또래 문화를 중시하는 젊은 애들 사이에서만 벌어집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좀 배웠다는 사람들은 그들만 알아듣는 서양말이나 한자말을 써 왔고, 특정 계층이나 집단은 또 그들만 알아듣는 말과 글을 쓰며 우쭐해 해왔습니다.
심지어 아직도 법전이나 행정용어를 보면 무슨 말인지 모를 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혹 여러분은 우리나라 법 가운데 ‘국어기본법’이 있다는 걸 아셨습니까? 아마 모르는 분들 많을 겁니다.
우리말을 지키고 발전시키며 모두가 우리말을 편하게 쓰려는 목적으로 만든 ‘국어기본법’에서조차 말이 어렵습니다.
있어도 지키지 않는 법,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법, 법에 따라 일을 하고 법을 가장 잘 지켜야 할 공무원들조차 신경쓰지 않는 천덕꾸러기 법…

아침에 alarm을 들으며 일어나서 moning coffee를 마시고 회사에 가면 meeting과 P.T(presentation)를 하고 buyer도 만납니다. 길 갈 때는 路肩으로 걸어야 하고 bonus는 월급에 算入되어 들어옵니다. cabinet 施鍵을 풀고 示方書를 꺼내고 他 기관과 MOU를 체결합니다. 틀린 건 改書하고 서류는 확실히 Confirm해야 책임을 免脫할 수 있습니다.
공공장소를 가 봐도 온통 영어, 영어… 옛날에는 한자말로 서민 기 죽이다가 요즘은 온통 영어로 기를 죽입니다.
하다못해 위험 안내, 경고판에도 영어로 써 놓습니다. 영어 못 하는 사람은 그냥 위험에 빠져도 할 수 없다는 듯이…
이것은 법을 어기는 일인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심각한 직무유기입니다. 사람들을 위험에 내버려 두는 직무유기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말글만 쓰자는 건 아닙니다.
쉬운 말글을 써야 합니다.
한자말이나 들어온 말이 너무나 흔히 쓰이다 보면 가끔은 그런 말들이 쉬운 말일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글[언어]은 권력이다!
그렇습니다. 말글에는 권력이 배어 있습니다.
옛날 양반들이 그렇게 죽자사자 훈민정음을 반대했던 것은 누구나 쉽게 말하고 쉽게 글로 표현을 하면 제 권력을 다 누릴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종대왕께서 백성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 덜어주고자 쉬운 글자인 훈민정음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도 합니다.

말글은 권력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쉬운 말글을 두고 굳이 어려운, 낯선 말글을 씁니까?
권력을 가진 이들은 그렇게라도 지킬 권력이라도 있지만, 여러분은 그렇게 해서 지킬 권력이라도 있습니까?
말글이 어려워지면 결국에게 그 해가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무슨 말인지 몰라 의사에게 따져 물을 수도 없고, 무슨 뜻인지 몰라 억울해도 법 앞에서 그냥 당하게 됩니다. 또 그 뜻을 알려면 비싼 돈을 들여 사람을 써야 합니다. 공문서 하나 작성하자고 큰 돈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쉬운 말글은 인권이다.”, “쉬운 말글은 민주주의다.”
말글이 쉬우면 누구나 제 뜻을 펼 것입니다.
억울한 사람도 적어질 것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소외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또 어려운 말글을 쓰지 못하게 되면 거짓말을 하기도 어려워 집니다.

한글날에만 반짝 애국자가 되지 말고 한번 쯤은 깊이 생각해 봤으면 싶습니다.

쉬운 말글은 민주주의입니다

쉬운 말글살이를 해야 하는 까닭

댓글 한 개

얘기 들어가기 앞서, 잠깐 하나만 여쭤 봅시다.
우리말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실제 있었던 얘기…
어떤 할머니가 서울에 가서 버스를 타고 ‘비닐하우스’ 앞에 내려달라고 했더랍니다.
기사가 ‘어디에 있는 비닐하우스요?’ 해도 그냥 ‘비닐하우스 앞’이라고만… 딸이 거기로 마중을 나올 거라고…
그 때는 서울 곳곳에 비닐하우스촌들이 꽤 있었고 지금처럼 전화도 흔치 않던 때라 기사와 한참을 실랑이를 했는데 다행히도 기사가 좋은 분이라 끝까지 이리저리 알아보고 경찰 도움까지 받아서 찾아낸 그 곳은… (서울 수유리에 있는)’아카데미하우스’였다고…

우리 사는 모습을 보면 철이 되면 으레히 하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한복을 안 입다가 명절 때가 되면 한복을 챙겨 입고, 평소에는 신경 안 쓰다가 때가 되면 순국선열에 대해 침을 튀기고, 평소에는 농촌에 관심도 없고 그보다 더 비싼 것들도 잘 소비하다가 김장철만 되면 간만에 찔끔 오른 배추값, 고추 값을 가지고 금치니 뭐니 하며 열 올리고…(그보다 더 비싼 빵, 커피는 잘도 마시더만…)
그런 것 가운데 우리글자(한글)와 우리말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들온말, 서양말 잘만 써 대다가 한글날 즈음만 되면 온통 ‘훈민정음’과 ‘세종큰임금’을 칭송하고, 스스로는 한번도 그런 적 없는 양 서양말을 쓰고 딴나라 글자를 써대는 세태를 꼬집기 바쁩니다.(그러면서 ‘한글’에 대해 떠올리는 건 천편일률 ‘나랏 말싸미 어쩌구 저쩌구…’ 왜? 배운 게 그것 밖에 없고 아는 게 그거 밖에 없으니까… ^^;;)

이쯤에서 앞서 했던 물음에 답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우리말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솔직히 아마도 ‘세종대왕’을 먼저 떠올리신 분들 계실 것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세종큰임금께서는 글자를 만들었지 말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한글날만 되면 서양 글자 쓰는 걸 탓하는 건 물론이고, 들온말, 서양말 하는 것까지도 ‘세종큰임금’을 끌어들여 꾸짖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그만큼 큰 목소리에 견줘 관심이 없다는 거지요.
사실 ‘훈민정음’ 얘기를 하면 뭔 거창한 이론들이 많이 따라 나옵니다만, 쉽게 말해서 ‘말'(그리고 ‘글’이나 ‘글자’도)은 생각을 서로 나누려는 뜻이 가장 큰 뜻입니다.
우리가 ‘훈민정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칭송하는 가장 큰 까닭도 쉽게 배우고 쉽게 쓸 수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제가 우리 글자와 우리말(저는 이것을 뭉쳐서 ‘한말글’-우리 글자는 ‘한글’, 우리 말은 ‘한말’-이라고 부릅니다.) 얘기를 하면서 그것이 우리 것이니 아껴야 한다는 맹목적인 칭송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글자만 봐서, 우리가 써 오던 글자가 많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자’는 아시다시피 너무 어렵습니다. 심지어 그 동네 사람들조차 너무 어려워 어떻게든 버려볼 궁리를 했고 그래서 요즘은 로마자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중국에서는 ‘평음’이라고 합니다.)
그 밖에 ‘이두’도 있고 ‘구결’도 있고… 여튼 조금이라도 쉽게 적어 보려 꽤 애를 썼지만 ‘훈민정음’만 한 게 없습니다.
‘말’로써 보자면, 조금 다른데…
사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에는 한자말도 꽤 있고 들온말[외래어], 딴겨레말[외국어]도 이미 꽤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잊혀져 가는 맨우리말보다 그런 말이 더 뜻이 쉬이 와 닿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되도록이면 우리 글자, 우리 말을 아껴 쓰자고 하면서도 실제 말글살이에서는 설령 들온말이 좀 섞이더라도 쉬운말을 쓰자고 주장하는 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말’의 가장 큰 쓰임새는 생각을 서로 나누고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가장 좋은 말은, 못 배운 사람이나 머리가 좀 모자라는 사람조차도 이해할 수 있는 말이 가장 좋은 말일 것입니다.
어떤 무리들이 끼리들만 쓰는 ‘곁말'[흔히 ‘은어’] 만큼이나 나쁜 것이 어떤 계층이나 배움 정도에 따라 무리들끼리만 쓰는 말입니다.
그런 말은 다른 무리 말고는 따돌리는 말이고 서로 격차를 두려는 행위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괜히 쉽게 말해도 될 말에 서양말이나 한자말 넣어 쓰는 건 ‘내가 그대들보다 뛰어나거나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흔히 범죄자나 혹은 새 세대끼리 쓰는 곁말은 나쁘다 하면서도, 실제로 우리는 한자말이나 서양말을 통해 이런 짓을 자주 하곤 합니다.(심지어 저 역시도 어떤 까닭으로 일부러 그렇게 쓰기도 합니다.)

가끔 공공장소에 가서 여러가지 알림판을 보다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Caution’과 ‘주의’ 가운데 어느 말이 더 많은 사람이 알아 들을까요?
‘Danger’와 ‘위험’ 가운데 어느 말이 더 많은 사람이 알아 볼까요?
그 뿐만 아니라 이 나라 행정을 보면 많은 지자체들이 MOU(업무협정양해각서-이건 바꿔도 뭔 말인지 모르겠…ㅡ.ㅡ)를 맺고, TF(특별전담조직)를 만들고 서류를 ‘게첨’하고 요금을 ‘징구’하고 있습니다.(사실 이미 ‘국어기본법’이란 것이 있음에도 앞서 법을 지켜야 할 정부 조직부터가 도무지 지킬 마음이 없는 모양입니다.)
특히나 위험표지 같은 것을 서양말이나 한자말을 써서 못 알아 듣고 피해를 보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그 주체들이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만약 위급시 안내방송을 딴겨레말을 먼저 쓴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항의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딴겨레말글로 써 놓은 위험 혹은 경고 글귀는 여전히 많고 항의하는 사람도 적습니다.

말글은 쉬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말과 한글이 가진 제 값어치이기도 하고 말글의 제 값어치이기도 합니다.
쉬운 말글을 쓰는 것은 가끔 우리의 권리를 지켜주기도 하고 우리의 목숨을 지켜주기도 하며 사람들이 좀더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쉬운말글은민주주의입니다

편하게 ‘죽음’을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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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배 불러도 때가 되면 배 고플 것이고
잘 자고 일어났어도 때가 되면 또 졸릴 것은 뻔한 일이다.
지금 생생하다 해도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것 또한 뻔한 일인데,
이 뻔한 일을 미리 얘기하길 꺼리는 까닭이 무엇인가!
#죽음을이야기하자
#죽음잔치(#죽음축제)를 만들고 싶다.

같은 말, 다른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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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다음’에 대해 얘기한다.
그대도 ‘사람다움’을 얘기한다.
나는 ‘정의’를 얘기한다.
그대도 ‘정의’를 얘기한다.
나는 ‘양심’을 얘기한다.
그대도 ‘양심을 얘기한다.
나는 ‘바른 길’을 얘기한다.
그대도 ‘바른 길’을 얘기한다.

똑같은 걸 얘기하는데
어찌 이리 말이 다른가!
#뭣이중헌디

‘상식’을 의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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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방안에 식물을 두면 밤새 이산화탄소를 내뿜어서 좋지 않다는 얘기가 떠돈 적이 있었습니다.(식물이 대체로 낮에는 산소를 더 많이 내뿜고 밤에는 이산화탄소를 조금 더 많이 내뿜는다는 얘기)
그런데 그와 비슷한 얘기가 요즘도 떠돌고 있습니다.
방 안 공기를 맑게 하려고 공기정화식물을 방 안에 둔다는 것인데,…
정말 그럴까? 그렇게나 공기정화식물이 효과가 큰 걸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공기정화식물로 방 안 공기를 맑게 하려면 평방미터(가로, 세로 1미터)마다 열에서 백 개 정도의 화분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좀 다른 보기로 이런 것도 있습니다.
옛날에 ‘대나무 북방한계선’이란 걸 배웠는데, 우리나라에서 대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경계가 남해안을 따라 비스듬하게 올라오다가 부산, 울산 쪽에서 조금 더 올라온 그런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중부지방에도 대나무가 있었고 강릉 오죽헌에는 우리가 잘 아는 ‘오죽'(검은 대)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상식은 (맹목적)믿음이 되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상식들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 여러가지 상황이나 조건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빠지거나 잘못 전해지면서 결과만 전해진 까닭입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상식’이 비단 자연과학 쪽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철학이나 사상이나 그 밖에 형이상학 쪽에도 이런 ‘잘못된 상식’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널리 알려진, 거의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는 ‘상식’도 가끔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릇과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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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리에는 그에 걸맞는 그릇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 그릇은 다르게는 ‘감'(흔히 입말로는 ‘깜’이라고도…)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말쌤’ 사전에는 ‘일정한 자격이나 조건을 갖춤.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비단 ‘자격’이나 ‘조건’을 떠나서 즉 자격이나 조건은 갖추더라도 그 자리에 걸맞는 그릇인지는 좀 다른 얘기라고 봅니다.
흔히 선거 철이 되거나 정치적 한 대목에서는 어떤 데에 뛰어난 사람이 어떤 자리에 감으로 오르내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들 가운데 과연 그 자리에 걸맞을까 싶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기를 들면, 요리사업가인 어떤 분이 어느 당 대통령 후보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과 같은 상황인데, 사업가인 ‘도널드 트럼프’가 사업에서는 승승장구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수많은 입길에도 오르내릴 뿐만 아니라 여전히 지금도 대통령 자격이 되는지를 두고 말이 많은 모양입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 또한 얼마 앞서 어느 기업가 대통령을 두었는데 국토는 엉망으로 파헤치고 국고를 탕진하는 것도 모자라 가족들까지 낀 뇌물, 비리 사건으로 지금도 재판을 받고 있으며, 그에 이은 어느 옛 대통령은 그 아버지 후광으로 대통령까지 되었으나 나라 일을 일개 개인에게 맡겨 두었다가 큰 경을 치르고 나라도 혼란에 빠뜨린 일도 있습니다.

또 다른 보기를 들어, “삼국지”에서 뛰어난 영웅은 많지만 지도자로써 걸맞는 사람인지는 좀 다른 얘기입니다.
조자룡이나 관우가 싸움을 잘 한다 해서 그 사람이 지도자로써 알맞은지 또는, 제갈공명이 지략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지도자로써 알맞은지는 전혀 다른 문제인 것과 같습니다.
제공공명은 똑똑하고 지략도 뛰어나고 천문을 읽는 재주까지 있지만 그는 오히려 그래서 참모로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비는 비록 사람이 좀 무르고 정에 얽매이고 매섭게 자르지 못하지만 사람들을 아우르고 생각해 주는 마음이 있어 오히려 지도자로써 알맞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잘 나고 아무리 똑똑해도 그 그릇에 맞게 쓰여야 합니다.
그것은 비단 그 그릇이 크냐 작냐를 떠나서 담는 내용물에 알맞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음식인 찌개는 뜨겁게 끓여놓고 되도록 식는 걸 늦추면서 먹기에 온갖 그릇이 많이 생긴 지금도 여전히 뚝배기 같은 것에 담아 끓여 먹습니다.
사람 자체나 그 사람의 단순 업적이 아니라 그 사람의 그릇, 그 사람의 자질에 따라 써야 합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을 위한 길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쓸 때, 뭐 하나 잘 했다고 다른 일에 덥썩 데려다 써서는 안 됩니다.
연장도 하물며 그렇게 써서는 안 되는데 사람이라면 오죽하겠습니까!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 대룡마을을 보고 온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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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글은 제 예술과 얽힌 취향과도 얽힌 얘기라 굳이 여러분께 제 느낌을 강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 느낌에는 그랬다는 것이고, 예술가 마을이 예술가 마을 다우려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기 위한 글입니다.
보통 무조건 좋은 얘기만 할 때는 굳이 이런 변명을 안 해도 되는데, 글 내용이 그렇다 보니 이런 변명을 대고 있는 것도 좀 그렇다는 느낌이 드네요… ^^;;
여튼 단순히 풍경이나 보러 간 것이 아니고 예술가의 냄새, 예사 시골마을이 예술을 만났을 때 어떠한지, 어떠했으면 좋을지 하는 걸 생각하면서 가 본 뒤 쓴 글이란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장군에서 ‘대룡마을‘은 예술가마을로 꽤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대룡마을’을 갔을 때-몇해 전이라고 생각됩니다.-는 겨울(초겨울?)이라 더 그랬지만 꽤 휑한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예사 시골마을에 좀 도회스러운 예술작품도 낯설기도 했지만 뭔가 주변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는 느낌도 들었고, 이미 예술가들이 꽤 빠져나갔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예술작품들도 더 새로운 건 별로 없어 보였고 있는 것마저 내버려[방치]져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관에서 손을 댄 예술 쪽에 별로 좋은 감정이 없었기에 더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래 머물지 않고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2020년 6월 20일에 장터가 열린다기에 겸사겸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때 받았던 제 느낌이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어쩌다 잠깐 한때 느낌이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다시 갔습니다.
역시나 사람이 좀 복작거리니 그나마 마을이 좀 살아난 느낌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사람이 복작거리는 장터 근처만 그랬고, 여전히 휌하고 낯설고 여러 요소가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휑하다’는 것이 단지 인적이 드물다는 것만 뜻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안 보이더라도 사람 손길이 느껴지면 한적할 지언정 휑해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흩어지고 쓰러져 가는 시골마을을 예술마을이란 명분이 되살려 내기에는 너무 힘겨워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나마 예술가마을이라는 ‘대룡마을’을 채우고 있는 것은 장사하는 가게들이었습니다. 예술가들 혹은 예술가의 숨결은 많이 안 보여도 몇몇 (장사하는)가게들은 여전히 남아 자리를 메워주고 있습니다.
대룡마을이 비록 쓰러져가는 시골마을이기는 했지만 자연풍광이나 여러 요소들은 여전히 예술과 어울릴 만한 매력적인 요소들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더 슬펐습니다.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이나 그 숨결들은 별로 느껴지지 않고 그냥 어거지 예술작품만 몇 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기와를 올린 돌담 같은 것들 조차 어거지로 만들어 놓긴 했으나 그것이 그 마을에 생기를 주지는 못하고 그저 버거운 누낌이었습니다.

시골마을을 다니다 보면 어떤 마을은 정돈되지 않았지만 느낌-자연의 느낌 혹은 옛 느낌 같은-이 있는 경우도 있고, 건물도 새로 짓고 꽤 개발이 되었지만-새마을운동 덕을 본 듯한?- 지저분한 마을도 있습니다.
마을에 숲이 있어 그 마을에 정취를 더하고 역사의 깊이를 더해주는 데가 있는가 하면 어떤 마을은 그런 숲들이 오히려 그 마을을 더 정신사납게 만드는 데도 있습니다.
대룡마을은 자연풍광도 나쁘지 않고-아니 오히려 꽤 좋아보이고… 다만 지금은 그 곁으로 공단이 생기고 있고 고압철선이 여기저기 보여서 마을 풍광을 다 버려놓고 있기는 하지만…- 마을 안 여러 요소들도 잘 가꾸면 참으로 아기자기해 보일 수 있는 요소가 많아 보임에도 뭔가 억지로 분을 잔뜩 바르고 어거지로 판을 벌여 놓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이번에 갈 때는 되도록 옛 선입견에 영향을 안 받으려 기대를 접고 좀 다른 요소들을 보려고 애 쓴 덕분에 1941년에 지어진-昭和 16년에 지어진 것으로 올해로 일흔아홉해 된- 옛 집도 보았고 오래되고 굵은 대추나무도 보고 그 밖에도 아기자기한 요소들을 좀 보았기에 덜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덧붙여 방송이나 블로그 하시는 분들, 아무리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뭔가 재밌었으면 재밌었던 것만 좋았던 것이지 그 마을에 가서 재밌었다고 그 마을 자체가 좋은 건 아닙니다.
방송, 블로그로 밥벌이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좋았던 건 좋았던 것만 칭찬해 주시고 좀더 정확한 정보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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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에….
#종교 말고 #신성, #영성
#법구경
#숨겨진성서 #사탄의탄생 은 그냥 딸려 온 거…
#42장경‘은 어디로 갔나?
‘부처님오신날’에 성당, 회당에 가 보기…(그럼 예수님오신날에는 절에 가 보는 걸로…)

사람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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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딸을 일찍 보내주지 않는다고 사돈집을 나무라면서,
일찍 떠나고 싶어 하는 며느리를 타박한다.
그것도
평생을 살면서 그렇게나 당하며 살았던 같은 처지가…

‘공유경제’, 뜻을 바루어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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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공유경제’보다는 뜻을 바루어 ‘#나눔경제‘, 어떤가요? ^^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공유경제‘는 사실 ‘나눔경제'(sharing economy)!
#더분경제(공유경제;common economy) : 공동 이용을 기본으로 공동 소유 혹은 수익 공동 배분 그리고 공동 의사 결정
#나눔경제 또는 #빌림경제(공동이용경제;공동이용경제;공용경제;sharing economy) : 공동 이용
쉽게 말해서, ‘더분경제'(공유경제)는 함께 소유하거나 딱히 소유권이 없이 그 이익을 함께 나누는 것,
‘나눔경제(공동이용경제)는 소유자가 다른 사람을 위해 함께 쓸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
#한말글 #우리말

덧붙여, 일본에서는 ‘共有経済’라 쓰고 있으나 중국에서는 그 뜻을 바루어 ‘分享經濟'(함께 누리는 경제)라고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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